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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비리 혐의로 해고될 위기에 처한 평범한 가장에서 90년대 잘난 검사와 변호사가 앞 다투어 구명해주는 부산 최고 능력자(?)로 탈바꿈한 한 남자가 있다.

"저, 깡패 아입니다. 저도 공무원 출신입니다"이라고 들먹거릴 만한 과거를 지닌 최익현(최민식 분)이 건달도 아니요, 그렇다고 민간인도 아닌 난공불락 '반달'이 되기까지 과정은 의외로 순탄해(?) 보였다. 남들보다 주먹이 강한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가방끈이 압도적으로 긴 것도 아니다.

단지 어깨에 힘 팍 주고 경주 최씨 충렬공파 35대손이라는 것을 강조했을 뿐인데, 잔인한 조직폭력배 최형배(하정우 분)는 물론 힘 좀 쓰는 검사도 순식간에 한참 아래 손자뻘로 만들어버렸다. 또한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인물들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가득 적힌 수 십 억 짜리 수첩이 진정한 '박쥐' 최익현에게 날개를 달아주기까지 한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한 장면

영화 <범죄와의 전쟁> 한 장면 ⓒ (주) 팔레트픽처스


주먹? 법? 뒤틀어진 욕망이 더 강하다

아마 최익현 같은 사람의 전화 한 마디에 놀아나는 나라인터라 <도가니>와 <부러진 화살>같은 작품이 나올 수도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친 남자들의 폭력만 오가는 사회고발성 영화로 그칠 수 있었던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이하 <범죄와의 전쟁>)에 좀 더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꼰대' 최익현 덕분이다.

먼 친척의 권위를 앞세워 바로 부산 최대 조직 넘버2로 입성하여, 훗날 이 사회가 함부로 건들 수 없는 막강한 지위를 가진 어르신으로 거듭나기까지, 최익현이 가지고 있는 비장의 무기는 오직 '혈연'과 '인맥' 그리고 앞뒤 안 가리는 '생존의 욕구'다.

우연히 적발된 히로뽕을 형배에게 넘기는 순간부터, 끝내 형배를 배신하고 형배의 강력한 라이벌 김판호(조진웅 분)에게 붙었다가, 다시 더 힘있는 검사(곽도원 분)에게 넘어가기까지, 익현은 언제나 '살아야 겠다'는 욕망이 앞섰다.

평생을 함께 하자던 끈끈한 약속도, 남다른 '혈연' 관계도 눈앞에 보이는 이익에 산산조각 낼 정도로 살기 위해서라면 그 누구와도 손잡을 정도로 자기 밖에 모르는 익현이다. 그렇게 갖은 권모술수를 부리며 조직 폭력배에 이어 대한민국 핵심 권력기관의 질서까지 더럽히는 익현에게 화가 난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이래저래 숱한 위기 속에서도 잘 먹고 잘 살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편치 않은 얼굴을 한 그에게서 나쁜 아버지들의 감추고픈 부끄러운 자화상이 여실히 드러나 약간의 연민과 동시에 씁쓸함까지 더한다.

그에게는 3대 독자 아들이 있었고, 먹여 살릴 처자식이 있었다. 또 매제(마동석 분)까지 '자기 사람'이라 챙길 정도로 끔찍한 가족애까지 가지고 있다. 곧 폭력 사주 혐의로 감옥에 갈 위기 속에서도 그저 가족과 아들 걱정이다. 결국 어떻게든 가족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뒤틀어진 욕망이 거친 주먹보다, 법보다 더 세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한 장면

영화 <범죄와의 전쟁> 한 장면 ⓒ (주) 팔레트픽처스


'반달 꼰대'님들, 진짜 행복하신가요?

"나 경주 최씨 충렬공파인데, 나 경찰서장이랑 잘 아는 사이인데, 나 000검사랑 친척인데."

우리 사회를 어지럽혀온 혈연, 지연, 인맥이 '살아있는 꼰대' 익현의 입으로 튀어나오는 순간 <아! 대한민국> 노래 가사처럼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지는 세상. 치밀어 오르는 분노보다 자조 섞인 웃음이 앞선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 거기에다가 진보 진영에서는 대한민국 대표 '꼰대'로 불리는 한 종편 방송사가 <범죄와의 전쟁>에 공동투자를 했다는 소식만으로, "영화 자체가 비호감"이라는 볼멘소리가 어우러져 이 영화가 적나라하게 말하고자하는 '꼰대' 들을 더욱 초라하게 만든다.

현실에서는 비교적 떵떵거리며 잘 살아온 나쁜 아버지가 막대한 부와 권력을 쟁취하게 된 과정을 모르는지 아는지. 그런 아버지가 고맙다는 사회지도층 아들과 그런 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행여나 자신들의 과오가 드러날 까봐 전전긍긍하는 '꼰대'. 그들에게 진정으로 묻고 싶다. 과연 진짜 행복하시나고?

범죄와의 전쟁 최민식 하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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