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람>의 한 장면

▲ 영화 <바람>의 한 장면 ⓒ 필름더데이즈


영화 <바람>의 배경은 90년대 중·후반 부산이다. 조금은 별났다면 한번쯤은 겪어 본 학창시절의 이야기다. 영화 <친구>와 비교될 법 한데 시대적으로 10년 이상은 늦다. <친구>의 내러티브가 처절하다면, <바람>의 내러티브는 그 보다는 가볍다. 그리고 유쾌하다.

일면 <친구>와 비슷한 소재와 배경을 두고 있는 영화 <바람>, 굳이 비교를 하자면 영화 <써니>와 비슷한 분위기다. 친구가 '진빼이(진짜)' 들의 이야기라면 바람은 '진빼이'가 되고자 하는 바람을 가진 아이들의 이야기다. 고로 난 <바람>이 <친구>보다 백 배 공감 갔다.

이 영화를 보면서 너무 공감했던 것은 그 시절 겪은 에피소드와 닮은 부분이 너무 많아서다. 시차가 약간은 존재하지만 배우 정우와 2살차임을 감안하면 동시대라고 봐도 무방하다. 당시 내가 했던 고민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고 친구들과 했던 일상들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었다.

영화 <바람>으로 학창생활 돌아보니...

학교가 파하면 커피숍에 모여 앉아 수다를 떨었다. 삐삐를 치고 커피숍 좌석마다 놓인 전화기를 통해 통화를 했다. 광마, 흑우, NT, 각시탈 같은 학교마다 전통을 자랑하는 불량서클이 있었고, 기수와 엄격한 규율이 존재했다. 학교폭력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에 들어가 제법 많은 아이들이 유치장 신세를 졌었다.

학교는 하나의 작은 사회였고 강자와 약자가 존재했다. 교칙이나 사회적인 규범보다는 주먹의 논리가 비교우위였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그마한 사회 속에서 세력들은 규합한다. 중학교를 기점으로 '주먹의 세기'라는 기준을 가지고 저마다 무리를 이룬다. 고등학교에 이르면 주먹의 세기와 아울러 출신과 라인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영화 속 대사 '강석찬은 중학교 때는 별로다가 고등학교 와서 대가리 커진 케이스'처럼 그냥 된 것이 아니고 바래서 된 것이다. 의도적인 행위를 통해 더 세어 보이게 이미지를 관리한다. 조직을 이루게 됨으로 보다 끈끈해지고 보다 견고해진다.

영화 <바람>은 이러한 학창시절 소위 말하는 '건달' 또는 강한 자가 되고자 소위 주먹으로 주류를 이루고자 하는 바람을 가진 아이들의 이야기다. '통(짱)'이 되고싶어 두려움을 감추고 대(기)가 센척하고 무리에 소속되기를 열망한다.

영화 <바람>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

그러나 결국에는 부질없는 것이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그 경계는 허물어진다. 졸업 이후, 진짜 사회가 기다리고 있다. 과외 선생의 말처럼 '포장마차, 노가다'로 압축되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그 이후의 세계는 정말 수능점수 몇 점으로 갈라지는 세계다. 정녕 진짜 '깡패'가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사실 조직폭력배가 된다 한들 주먹의 세기가 우선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 <친구>에서 말하는 '잔인함, 치밀함, 비정함'이 우선하는 가치다. 동생들을 굶기는 보스는 보스로 군림할 수 없으며, 좋은 차, 명품, 유흥비를 지불할 수 있는 보스만이 살아 남는다.

선배들은 후배들과의 '의'는 저버려도 세돈 반짜리 금반지는 챙겼다. 그게 세상이다. 그렇게 졸업할 즈음 '건달이 된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의 투병을 통해 강한 자가 되겠다는 바람은 '좋은 어른'이 되고자 하는 바람으로 옳은 방향을 찾았다.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바람(Wind)'이지만 '바람(Wish)'은 분명 의지에 따라 언제든 방향을 바꿔 불 수 있다. 그게 영화 <바람>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개인의 블로그에도 게제된 글입니다.
영화 바람 W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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