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이하 <하이킥3>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없다. 이에 대해 연출자 김병욱 PD는 "며칠 밤을 새워 촬영하는 강행군이 너무 어린아이와 나이드신 분에게는 무리인 것 같아서"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어린아이는 그렇다 치고, 노인층을 보면 꼭 그 이유만은 아닌 것 같다. <하이킥3>에 노인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 노인층이 차지하는 존재감이 미미하기 때문이라고 하면 섣부른 판단일까.

<하이킥> 전 시리즈에서 할아버지 이순재의 캐릭터가 <하이킥3> 속 안내상과 겹칠 때가 있다. 웃어른의 허위의식을 보여줄 때가 대표적인 예다.

 MBC <하이킥3>에 출연하는 배우 안내상

MBC <하이킥3>에 출연하는 배우 안내상 ⓒ MBC


지난 6일 방송된 <하이킥3> 72회에서 안내상은 사업이 좀 잘 되는 듯하자 식구들을 불러 모아 놓고 일장 연설을 했다. 이름 하야 '안내상의 올바른 판단을 위한 조건'. 어떤 상황에서든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하며, 침착하고 대범하게 행동하면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상황은 내상의 가르침을 무너뜨렸다. 안내상은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 전혀 이성적으로 반응하지 않았으며 길을 찾을 때도 두 청소년보다 당황해 어쩔 줄 몰랐다. 대범함은커녕, 집에서 걸려온 전화에 "사랑한다"고 오열했던 것.

<하이킥3>는 종종 안내상의 위선 혹은 아이러니한 이중성을 폭로해왔다. 입으로는 '88만 원 세대' 진희를 위로하는 척하다가도 상품권 한 장에 눈이 멀어 온 힘을 다해 진희를 밀어뜨린다. 지원에게 온갖 교훈을 남발해놓고 어느 것 하나 지키지 못하기도 했다. 결국 솔직하게 내보인 속내는 가장 속물스럽고 이해 타산적인 결론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아들의 성적 향상을 위해 감당하지도 못할 경품을 내걸었다가 막상 상황이 닥치자 지원의 핑계를 대며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원래 <하이킥> 시리즈에서 큰소리치던 속물은 할아버지 세대의 몫이었다. 그러나 <하이킥3>에서는 이런 모습이 아빠 세대로 넘어왔다. 더구나 한때 운동권의 선봉에 섰다는 안내상이 그 역할을 소화한다는 게 더욱 상징적이다. 이 나라에서 가장 첨예한 의식과 날 선 도덕성을 지녔던 386세대가 어느새 기성세대화 되어가고 있다는 걸 몸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서점가에서 40대는 주로 인문·과학 서적을 구매했다고 한다. <하이킥3>에서 내상이 젊은 세대와 공감할 자세가 되어 있는듯한 모습을 보이듯 말이다. '나오미(not old image)족'이니, '아줌마 혁명'(기자 주-40대가 된 386세대를 일컫는 말. 처음으로 페미니즘과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은 세대로, '정신적 자수성가 세대'라는 자부심을 느끼며 가사 대신 인터넷 등의 공간에서 존재감을 뚜렷이 각인시키며 자아를 실현해간다.)이니 하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이 시대 중년들은 젊은 의식과 감각을 유지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자식을 외고와 자사고에 보내기 위해 가장 열렬히 사교육 현장을 누비고 다니는 사람도 바로 이들이다. 교육 현장을 오로지 대학가는 합숙소로 만들고, 가정을 대학가는 프로젝트 공동체로 만든 것 또한 이들이다. 그리고 자신의 이해를 위해 현재의 대통령에게 거침없이 표를 몰아줬던 사람도 이들이다. 이는 <하이킥3>에서 나타난 안내상의 아이러니한 모습과 연결된다.

<하이킥> 시리즈에서 우리는 이순재와 같은 기성세대를 비웃고 조롱하면 됐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가, 내가 그 자리에 서게 됐다. 안내상을 보고 그저 씁쓸하게 웃을 일이 아니다. 앞에선 온갖 교훈을 일삼다 뒤에선 자기 주머니에 들어올 것을 셈하던 기성세대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세월 탓이라고만 하기에는 배우고 익힌 게 아깝지 않은가.

하이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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