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뿌리깊은 나무>의 김연현(왼쪽)·박상연 작가가 드라마의 최종회를 앞두고 22일 오후 5시 SBS 목동사옥에서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가졌다. 두 작가는 MBC 사극 <선덕여왕>에서 콤비로 이름을 알린 바 있다.

SBS <뿌리깊은 나무>의 김연현(왼쪽)·박상연 작가가 드라마의 최종회를 앞두고 22일 오후 5시 SBS 목동사옥에서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가졌다. 두 작가는 MBC 사극 <선덕여왕>에서 콤비로 이름을 알린 바 있다. ⓒ SBS



<뿌리깊은 나무>가 최종회를 앞두고 있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과정을 그린 이 드라마는 본래 이야기보다 해석이 다양했던 작품이다. 시청자의 해석으로 재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람들은 세종 이도를 보고 이상적인 지도자상을 고민했고, 한글의 유포를 보고 SNS의 활용을 떠올리곤 했다. 이정명 작가의 동명 원작소설이 있는 드라마이나, 실제로 이야기를 만든 작가들의 입장에서는 흥미로운 반응들이 아닐 수 없을 것 같다.

22일 <뿌리깊은 나무>의 마지막 한 회만을 남겨놓고, 같은 날 오후 5시 SBS 목동 사옥에서 이 드라마의 집필을 맡은 김영현·박상연 작가와 기자간담회가 마련됐다. 두 작가는 "드라마가 끝나고 올라오는 기사들을 보곤 했다"며 "이런 저런 의미로 다양하게 해석해줘 너무나 감사했고, 더 자극을 받아 잘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세종 이도 - 엄청난 압박감 있었을 것이라는 고민에서 시작한 캐릭터

 <뿌리깊은 나무> 세종 '이도' 한석규

<뿌리깊은 나무>의 두 작가 김영현·박상연은 드라마 시작 전에 여주의 세종대왕릉에 다녀왔다. 김영현 작가는 "우리가 세종대왕의 가장 큰 업적을 다루게 됐는데 잘 봐달라고 절을 했다"라고 회상했다. 박상연 작가는 세종대왕에 전하고 싶은 말을 묻는 질문에 "공부하면서 여쭤보고 싶은 게 많았다"며 "우리는 상상력으로 채웠지만 무슨 방법으로, 어디서 한글을 창제해 기습적으로 반포했는지 미스테리한 부분 많다"라고 말했다. ⓒ SBS


<뿌리깊은 나무>는 '인자한 성품을 가졌고, 한글을 창제했던 왕'이라는 세종대왕의 이미지 안을 꽉 채워 넣은 거의 최초의 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왕보다 '세종 이도'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다. 이도 캐릭터는 '여러 분야의 훌륭한 업적을 세운 세종대왕이 그 많은 일을 다 하면서 얼마나 강박증이 심했을까'라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김영현 작가는 "역사 기록 중, (집현전 학사) 최만리가 한글 창제에 대한 반대 상소문을 올렸을 때 세종대왕이 혼자 계신 자리에서 어마어마한 욕을 했다고 적혀있다"라며 "고기를 즐기고, 욕을 하거나 남을 골리는 것을 통해 엄청난 압박감에 대한 스트레스를 풀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캐릭터 설정 과정을 설명했다. 박상연 작가 역시 "'세상이 태평성대면 왕 마음은 지옥일 거야'라는 고민으로 세종 내면의 갈등과 트라우마에 천착하게 됐다"라고 덧붙였다.  

왕인 이도는 자연스럽게 현대의 지도자로 해석되기도 했다.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나라 조선에서 사대부들의 글자인 한자가 아닌 백성들을 위한 글자를 만든 세종은 그야말로 혁신적인 인물. 왕의 권위와 체통은 벗어 던지고 신료들과 허심탄회한 토론을 벌이고, 가끔 욱하면 푸지게 욕을 하는 모습을 두고 고 노무현 대통령을 추억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뿌리깊은 나무>를 보고 현 시대를 읽거나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시청자의 반응에 두 작가들도 놀란 모양이었다. 박상연 작가는 "의도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며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가장 극적인 지도자가 고 노무현 대통령이기 때문에 그 분을 떠올리는 것이라는 생각은 했다"라고 답했다. 박 작가는 "극적인 삶을 살다 간 두 분을 꼽으라면 박정희, 노무현 대통령일 텐데 두 분 중에는 노 대통령 쪽에 가까웠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영현 작가는 밀본을 MB로 읽는 등의 정치적 해석에 대해 "사극을 쓰게 되면 정치 이야기를 하게 되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많이 환치시켜 생각하더라"라며 "그런 것이 부담이 되면 우리가 원하는 의도대로 쓸 수 없을 것 같아 부담을 가지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한글 - "당연하게 쓰던 글자,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원작 소설 <뿌리깊은 나무>를 읽으면서 박상연 작가와 많이 했던 이야기가 '글자를 뭘로 볼 것이냐'였습는데, 글자를 권력으로 보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죠."

세종이 한글을 창제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는 <뿌리깊은 나무>의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단연 한글. 김영현 작가는 "한글을 권력이라고 봤을 때, 그걸 만든 사람 세종과 글자를 수용하는 많은 백성과 신하의 대표 강채윤,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사대부 '밀본'이 설정됐다"며 한글을 모든 설정의 축으로 풀었다.

그 중요한 소재를 다루기 위해 두 작가는 한글 공부를 다시 했다. 김영현 작가는 "공부를 하다 보니 세종대왕은 한글이 '소리글자'여야 한다는 확신이 있었으며, 그 안에 동양 철학적 원리를 집어넣는 등 굉장히 정성을 들인 글자라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박상연 작가역시 "우리도 작가지만 한글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살지는 않았는데, 공부를 해보니 우리가 당연하게 쓰고 있는 글자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는 걸 느꼈다"라고 감탄했다.

박 작가는 한글의 우수성을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26자의 글자 알파벳에 빗대며 "현재는 처음 만들었을 때의 28자에서 4자 없어진 24자를 쓰고 있는데, 말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25자 언저리 근처에서 해결될 수 있다는 놀라움을 시청자가 함께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밀본'의 본원 정기준 - "그를 통해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 표현해보려고 했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정기준(윤제문 분)은 말은 백성을 위한다고 하나 실제로는 상위 1% 기득권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지도자에 불과하다. 지배층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그의 물불 안 가리는 '꼼수'는 많은 시청자들의 분노를 야기한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사대부의 논리 하에 한글을 막으려 하는 정기준(윤제문 분)은 두 작가들에게 아쉬운 부분이 많이 남는 캐릭터다. 박상연 작가는 "정기준을 통해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표현해보려고 했다"라고 설명했다. ⓒ SBS


<뿌리깊은 나무>는 크게 세 가지의 세력이 대결구조를 이루는 이야기다. 세종이 왕의 입장에서 백성의 글자를 만든다면, 강채윤은 이를 수용하는 백성의 입장이며, 정기준은 재상의 나라를 세우려 했던 삼봉선생 정도전의 정신을 계승하는 입장에서 왕과 맞섰다. 박상연 작가는 이 대결구도 설정에 대해 "'마방진' 같았다"라고 비유했다. 한쪽을 맞춰 놓으면 한쪽이 어긋나기 때문에 긴장구도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두 작가는 "세종 이도와 정기준의 균형에 대해 부족했던 점이 있었다"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박상연 작가는 "정기준의 반대를 통해 글자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경각심을 주고,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표현해보려고 했다"며 "세종대왕이라는 엄청난 아우라를 가진 인물과 대결에서 정기준이 균형감을 좀 더 맞췄어야 하지 않나 후회된다"라고 말했다. 박 작가는 "10명 중 4명은 정기준 말이 맞는 거 아니냐고 해주길 바랐다"라며 웃었다.

이 지적에 김영현 작가는 "우리 나름대로는 정기준 쪽의 논리를 개발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며 "정기준의 과거 사연이 좀 더 많이 시청자들에게 보였으면 세 인물 간의 대결에서 좀 덜 밀렸을 텐데, 초반에 살인사건이 미스터리로 가면서 이도가 너무 감정이입한 상태에서 정기준이 등장한 것이 문제가 된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뿌리깊은 나무> 최종회는 세종 이도와 정기준의 마지막 토론이 펼쳐질 예정이다. 한글 반포를 앞두고 있는 세종과 한글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세종을 죽여서라도 이를 막겠다는 정기준의 논리가 충돌하는 절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토론은 두 작가들이 <뿌리깊은 나무>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을 것이다. 22일 오후 10시 방송되는 <뿌리깊은 나무> 최종회는 90분으로 특별 편성됐다.

뿌리깊은 나무 새종 정기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