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9일 첫방송만에 두자리수 시청률을 기록하여 화제를 모으고 있는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9월 19일 첫방송만에 두자리수 시청률을 기록하여 화제를 모으고 있는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 초록뱀미디어


2052년, 백발노인이 되어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이라는 책을 발간한 이적의 "2011년도 역시 돈. 돈의 해였다"라는 짧은 내레이션을 시작으로 서울 모처에서 유복하게 살고 있었던 안내상, 윤유선 부부가 등장한다. 하지만 하필이면 유선의 생일, 아이스하키 선수인 아들 종석이 중요한 시합이 있던 날이자 미국에 유학 중이던 딸 수정의 귀국 날 이들 가족은 내상 친구의 배신으로 폐차 위기 직전 봉고차에 도망가는 몸이 되었다.

급히 정신을 차리고 자정이 다 되서야 부랴부랴 초코파이로 생일 케이크를 마련하지만, 갑자기 폭죽이 내상의 엉덩이에 꽂히면서 내상은 갑자기 하늘 위로 솟아오르게 된다. 내상이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으로 하늘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 웃음이 안 나올 수는 없지만, 결국 갑작스럽게 거리로 내앉게 된 가족들을 보니 마냥 시트콤 속 주인공이라고 거리를 둘 수는 없을 것 같다.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김병욱 PD 시트콤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중산층에 속해있는 사람들이다. 김병욱 PD의 대표작이 된 '하이킥' 시리즈 역시 이 고정불변의 법칙을 그대로 따랐다. 하지만 이번 <하이킥!-짧은 다리의 역습>(이하 <하이킥3>)의 차이점이 있다면, 김병욱 PD의 오랜 벗과 마찬가지였던 중산층을 제대로 몰락시키고 시작한다는 것이다.

<지붕킥><순풍산부인과>와 달리 몰락한 가장

하이킥 시리즈의 1탄인 <거침없이 하이킥>은 여러 세대가 어울려 사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중산층의 코믹하고도 유쾌한 에피소드를 그려 큰 인기를 끌었다. 거기서 <지붕 뚫고 하이킥>(이하 <지붕킥>)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중산층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었지만, 도시 빈곤층과 88만원 세대를 이야기 한 가운데 끌어들였다. 단순히 웃기기만 한 시트콤에서 심각한 사회 문제를 별 무리 없이 담아낸 블랙 코미디의 경지까지 도달한 것. 여기서 한 가운데로 나아간 <하이킥3>는 아예 전반적으로 애써 피하고 싶으나, 피할 수 없는 보통 서민들의 애환을 그리고자 한다.

<지붕킥>에서 정보석을 통해 담겨진 중년 세대는 비록 무능해 처가살이를 하며 장인어른에게 무시를 받고 살지만 경제적으로는 윤택한 생활을 영위해나가는 전형적인 신사로 그려졌다. 그의 고민거리는 앞으로 장인의 회사를 물려받아야할 사람으로서, 제대로 자신의 입지를 굳히지 못하는 것과, 자신을 닮아서 학업 성적이 좋지 않고 말썽만 피우는 준혁과 해리였다.

아직 아이들이 대학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는데 50세도 채 안 되서 회사에서 정리해고 당할지 모른다는 부담감은 정보석의 또래가 흔히 겪는 것. 하지만 보석은 해가 갈수록 치솟는 자녀들의 등록금 걱정과 노후에 어떻게 살아야할 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주인공이었다. 다만 한 때 회사 내에서 보석의 라이벌로 간주되던 이봉원의 갑작스런 해고에 제3자의 입장에서 마치 내 일처럼 가슴아파한 적은 있었다.

그러나 <하이킥3>의 안내상은 <지붕킥>의 정보석이나 <순풍산부인과>의 박영규는 피할 수 있었던 한 가장으로서의 몰락을 너무나도 처절하게 경험한다. 한 때는 특수효과 제작회사를 운영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건실한 사업가로 떵떵거리면서 살았던 그. 하지만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빚 독촉과 자신만을 바라보면서 숟가락만 물고 있는 가족들이다. 그 때문에 전형적인 마초성격을 가진 내상이 잘 나가는 처남들의 집에 빌붙어 사는 수모를 겪어야만 한다.

박장대소 끝에 남는 씁쓸한 현실

과거 김병욱PD 작품의 중년 남자들은 개인적인 능력 부족으로 부유한 장인에게 얹혀살았지만 이제는 사업 실패로 처남들에게 기대어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내상의 자식들은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는 10대 학생들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경제적 몰락과 더불어 자신들의 꿈을 포기하고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하며 무료하게 살아가는 현실적 고통을 고스란히 체감해야한다.

그 주변 10대, 20대들의 처지도 다를 바 없다. 노량진 고시원에서 9년 동안 9급 공무원을 준비하는 고시생 영욱과 각종 알바와 학자금 대출에 허덕이면서도 취업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대학 졸업반 진희의 장조림 쟁탈전까지, 보통 서민들에게 펼쳐져있는 가혹한 일상이 종합선물세트형식으로 골고루 포진되어 있다.

이상하게 김병욱의 시트콤은 해가 가면 갈수록 밝아지기보다 어두워진다. 물론 시트콤 속 그들의 표정은 언제나 해맑고 의아스러울 정도로 엉뚱하고 재미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보는 이들은 순간적으로 박장대소를 터트리면서도 씁쓸한 무언가를 남겨두게 된다.

노량진 고시생 고영욱이 공무원을 시작했을 때부터 젊은이들 사이에서 '9급 공무원'이 각광받게 되었다. 하지만 9년 뒤 보수 언론과 어른들의 도전정신이 없다는 비판 속에서도 20대 젊은이들 머릿속에 정리해고와 불안정에서 해소될 수 있는 최고의 직장으로 더욱 각광받는 현실이 된 지금. 대한민국 경제의 허리였던 중산층이 몰락하여 서민,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상황에서 김병욱 시트콤 역사상 첫 몰락한 중산층 주인공으로 낙점된 안내상의 운명은 어쩌면 당연한 설정으로 받아지기까지 한다.

과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거센 휘몰이 속에서 자신들의 운명을 맡겨야하는 숙명을 가진 이들이 짧은 다리를 가지고 이 세상을 향해 어떤 역습을 펼쳐나갈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래서 하이킥3는 보기 불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마음이 금세 사라질 정도로 웃기다. 꿈 없이 힘없이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으면서도, 그들을 힘껏 안아주면서 너희들이라도 바라는 대로 잘되길 속삭여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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