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싹과 초록. 둘 사이는 '종'이 아니라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로 아이들에게 사랑의 위대함을 새기게 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애니메이션 사상 최초로 200만 관객을 돌파했으며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 명필름, 오돌또기


<마당을 나온 암탉>이 200만이라는 경이로운 관객 수를 기록했다.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가 나온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언론에서도 연일 "한국 애니사를 다시 썼다"고 대서특필할 정도로 <마당을 나온 암탉>의 선전은 애니메이션 업계를 달뜨게 하기에 충분했다. 달리 말하면, 손익분기점을 넘는 애니메이션이 한국에서도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까지 이렇게나 지난한 세월이 흘러야만 했다.

하지만 <마당을 나온 암탉>의 선전이 한국 애니메이션의 성공이라 쉽게 풀이되기는 어렵다. 이 작품의 경우, '애니메이션'이라서 아니라 좋은 '가족영화'였다는 점에 방점이 찍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저 연령층으로 하향평준화 된 '반쪽짜리 전체관람가'가 아닌 모든 세대에 의해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가족애니메이션이었던 점, 자연스레 '애니메이션은 어린이들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을 깰 수 있었던 점은 분명히 <마당을 나온 암탉>이 이뤄낸 공이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성공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저변화를 넓히는데 좋은 토양이 될 수 있을까. 앞으로 관건은 '가족영화가 아닌' 애니메이션의 선전이다. 비록 애니메이션이 가족영화로서 적절한 장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가족영화만을 위한 장르는 아니다.

그러니까 <마당을 나온 암탉> 이후가 중요하다. 마침 개봉을 준비하고 있는 두 편의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이 있다. 연상호 감독의 <돼지의 왕>과 이대희 감독의 <파닥파닥>이 그 주인공이다. 

성인 겨냥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파닥파닥> 

 연상호 감독의 성인용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은 올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월드프리미어로 첫 공개되며 11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연상호 감독의 성인용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은 올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월드프리미어로 첫 공개되며 11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 스튜디오다다쇼

<돼지의 왕>은 독립애니메이션에서도 파격적인 행보를 걸어온 연상호 감독의 첫 장편애니메이션이다. 연상호 감독은 산 사람의 가죽을 발기발기 찢는 장면을 생생하게 담은 <지옥: 두 개의 삶>(2006)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아빠 닭'이 생활고로 '아들 닭'을 튀겨 온 <사랑은 단백질>(2008)로 중편에 도전했다. 필모그래피만으로도 부드럽거나 말랑말랑한 성향과는 거리가 멀다. 오랫동안 '애니메이션은 어린이용'이라는 신물 나는 인식에 대놓고 신경질을 내 온 연상호 감독의 <돼지의 왕>은 구역질나는 현실을 까발리는 성인용 애니메이션이다.

<돼지의 왕>은 성인이 된 동창 2명이 철저하게 계급사회였던 중학교 시절을 회상하며 과거와 현실을 오간다. 권력을 가진 '개'와 이에 복종하는 '돼지' 그리고 등장하는 '돼지의 왕'은 한 학급을 통해 우리 사회의 계급과 영웅을 말한다. '2006 한국영화 시나리오마켓'에서 극영화 시나리오 부문 심사위원 추천작으로 선정된 <돼지의 왕>은 무조건 "한국 애니메이션의 문제는 스토리"라고만 지적하는 사람들의 우려가 기우였다는 것을 입증 할 수 있는 성글지 않은 이야기로 짜여 있다. 올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월드프리미어로 첫 공개될 <돼지의 왕>은 11월 3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내년 상반기 개봉을 목표로 하는 이대희 감독의 <파닥파닥>은 물고기를 소재로 한 뮤지컬 애니메이션이다. 그렇다고, 아빠 물고기가 귀여운 아기 흰동가리를 찾아 떠나는 류의 애니메이션을 상상하면 안 된다. 산채로 회가 떠진 채 눈과 입만 끔뻑이고 있던 생선이 주인공인 이 작품은 횟집에 잡혀 온 고등어의 필사의 탈출기를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이대희 감독의 뮤지컬 애니메이션 <파닥파닥>은 횟집에 잡혀 온 고등어의 필사적인 탈출기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내년 상반기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대희 감독의 뮤지컬 애니메이션 <파닥파닥>은 횟집에 잡혀 온 고등어의 필사적인 탈출기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내년 상반기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 이대희스튜디오


이대희 감독은 회사를 오가는 길에 있던 횟집의 물고기들을 보며 이야기를 구상했다. 이후로 물고기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는 것은 물론, 고기잡이배를 직접 타보거나 3개월 정도 횟집에 위장취업을 하면서 작품을 위한 자료를 충실하게 모았다. 인디밴드의 기타리스트 출신이기도 한 이대희 감독은 음악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3D 애니메이션이지만 뮤지컬로 연출한 판타지는 2D로 그려내 현실과의 괴리감을 표현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사례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단순히 200만이라는 관객 수가 아니라, "평소에 애니메이션 안 봤는데 이건 괜찮더라"는 관객의 출현이다. 애니메이션 마니아가 아닌 관객을 끌어들이는 것이 마이너한 문화로만 인식되는 이쪽에게 더 효과적이다. 충분히 여러 관객 층을 상대로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장르임에도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애니메이션. 그 진짜 능력을 증명하는 것은, 지금껏 성공사례가 없다는 위험을 안고도 성인들이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소신껏 배팅한 <돼지의 왕>과 <파닥파닥>이 뚜껑을 여는 이후 부터다.  

마당을 나온 암탉 돼지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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