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라인드>의 포스터 실패하지 않은 스릴러

▲ 영화 <블라인드>의 포스터 실패하지 않은 스릴러 ⓒ 문와쳐

지난 2일 영화 <블라인드>가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언론들은 순제작비 100억 원 전후의 국산 블록버스터들이 즐비한 시기에,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까지 받은 비인기 장르 스릴러 영화가 선전했다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쉽다는 생각이 우선이었다.

개봉 초반 <최종병기 활>과 함께 쌍두마차로 인기몰이를 하던 그 여세에 비해서는 흥행이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참고로 같은 날 개봉한 <최종병기 활>은 9월 2일 현재 관객 470만을 기록 중이다.)

언론들은 "<블라인드>는 애착이 가는 영화다. 배우로서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 전국 200만을 넘는다는 것은 너무나 큰 의미다. 정말 감사하다."라는 김하늘의 멘트까지 인용했지만, 이 역시 마냥 기쁘게만 들리지는 않는다.

어딘지 모르게 짙은 아쉬움이 베어있는 그녀의 발언. 아마도 김하늘은 영화 <블라인드>가 좀 더 선전하리라 예상했을 것이다. 그만큼 영화는 잘 만들어졌고 많은 이들에게 호평을 받지 않았던가.

보는 자와 보이는 자

진실에 다가가는 방법 시각만이 전부는 아니다

▲ 진실에 다가가는 방법 시각만이 전부는 아니다 ⓒ 문와쳐


영화 <블라인드>의 가장 큰 매력은 김하늘이 연기한 '수아'라는 캐릭터이다. 비록 앞을 보지는 못하지만, 눈이 멀기 전 촉망 받는 경찰대생으로서 자신이 듣고 만지고 느낀 것만으로 사건의 정황들을 세밀하게 묘사하여 수사를 이끌어나가는 수아.

영화는 초반에 수아가 시력을 잃게 되는 과정을 굳이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돕는다. 물론 혹자들이 지적하듯이 기섭(유승호)과의 관계를 위한 복선이 작위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어쨌든 영화는 수아의 교통사고를 삽입함으로써 시각 장애인이 된 수아의 사례가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님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결국 관객 자신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관객들은 시각 장애인이 등장하는 그 어떤 작품보다도 수아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하게 된다. 평소 시각 장애인을 나와 다른 존재로 규정하던 이들이 그들의 입장에 서서 적극적으로 역지사지를 경험하는 것이다.

여성 시각장애인으로서의 삶 우리 사회에서는 결코 쉽지 않다

▲ 여성 시각장애인으로서의 삶 우리 사회에서는 결코 쉽지 않다 ⓒ 문와쳐


눈이 보이지 않는 여성 장애인으로서의 삶. 영화는 그들의 삶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힘든지 보여준다. 디자인 서울 운운하며 오히려 시각 장애인을 위한 보도블록들이 사라지는 현실과 '눈이 보이지 않으면 집에서 나오지도 말라'며 되먹지 못할 말을 여사로 내뱉는 사회. 그것은 모든 이가 잠재적이 장애인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간과한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며, 아직까지 '장님'(시각 장애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 ; 네이버 국어사전)이라는 단어가 일상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쌩얼이다.

영화는 이와 관련하여 보이는 자와 보는 자와의 권력관계에 주목한다. 극중에서는 범인과 증인의 관계로 치환되었지만, 수아를 지켜보는 범인의 시선은 곧 장애인을 바라보는 비장애인의 시선과 다를 바 없다. 그것은 결국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을 넘어서 상하 수직적인 권력관계를 요구하는 눈길로서, 우리가 그토록 비판했던 조지오웰의 빅브라더의 시선이며, 푸코가 언급한 바 있는 판옵티콘의 전지전능한 간수의 음험한 욕망인 것이다.

보이는 자와 보는 자 분명한 권력관계

▲ 보이는 자와 보는 자 분명한 권력관계 ⓒ 문와쳐


시각 장애인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 그러나 역설적인 것은 이런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영화 <블라인드>의 수아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는 점이다. 그녀가 기존의 편견을 누른 채, 사건을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모습 자체가 관객들에게 하나의 반전이기 때문이다.

비록 눈은 보이지 않지만 남들보다 더 뛰어난 청각과 후각, 감각으로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는 수아. 결국 그녀는 우리가 보이는 것에 현혹되어 많은 부분을 놓치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속편이 기대되는 영화

영화를 보는 내내 들었던 의문 중의 하나는 <블라인드> 속편의 유무였다. 물론 흥행과 상관없이 그 속편은 지금까지 건론된 적이 없지만, 영화는 속편 등장의 가능성을 충분히 담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력은 잃었지만 사고 전 경찰대생으로서 자신의 남은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훌륭히 사건의 진실에 접근했던 수아와, 항상 투덜대었지만 결국 수아의 진심에 감동하여 그녀를 돕고 경찰이 된 기섭.

어떤가. 벌써부터 그림이 그려지지 않은가. 홈즈 옆에 와트슨이 있었고, 포와로 옆에 헤이스팅스 대위가 있었던 것처럼 수아 옆에서 좀 더 적극적인 조력자로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는 기섭이 모습이. 어쩌면 감독은 속편까지 생각해서 두 주인공들을 경찰과 연결시켰는지도 모른다.

명콤비의 탄생? 속편이 나올 것인가?

▲ 명콤비의 탄생? 속편이 나올 것인가? ⓒ 문와쳐


그러나 사실 영화 <블라인드>의 속편이 기대되는 건 두 등장인물의 앙상블이 주는 재미도 있지만, 영화가 묵묵히 그려내고 있는 시각 장애인의 현실적인 모습과 이를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에 대한  감독의 날카로운 시선 때문이다.

지금까지 장애인을 다룬 많은 작품들이 그들을 연민의 대상으로 혹은 비장애인보다 못한 존재로 그려내었다면, 영화 <블라인드>는 수아를 통해 우리도 그와 같을 수 있음을, 그리고 특정 부분에 있어서는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보다 오히려 뛰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수사를 진행하면서 시각 장애인 수아가 비장애인들이 놓친 것들을 그만의 뛰어난 감각으로 찾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작품은 하나의 반전이 되지 않겠는가.

영화 <블라인드>의 속편을 기대해 본다.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이 좀 더 불식되기를 바라며, 우리 사회가 좀 더 관용적인 사회가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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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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