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아웃백을 달리는 선수들

호주 아웃백을 달리는 선수들 ⓒ 유지성


언제나처럼, 대회의 첫출발은 두근거리는 설렘과 긴장이 교차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막연한 두려움이라는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도 상당히 심했다. 더욱이 너무나 낯선 환경과 거리가 주는 압박감과 피로함. 거기에 밤에는 배낭 안에 들어있는 음식을 먹고자 덤비는 쥐새끼들과 낮엔 달려드는 수많은 파리들과의 육탄전은 정신과 육체를 모두 지치게 만들었다.

2011년 5월 10일 오전 8시쯤, 첫 번째 구간의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무지막지한 속도로 산을 치고 올라가는 선수들. 선두권의 역동적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보려 하지만 이내 사라지고 만다. 나의 경우 대회를 나가면 보통 1000장 이상의 사진을 찍는다. 이번 호주 아웃백 레이스도 살아있는 기록을 남기고자 방수 카메라와 일반 카메라 두 개를 준비를 했다. 하지만 짐이 많으면 무게가 늘어나기에 대회 기간 내내 카메라를 버릴 수도 없고 가져가자니 무거워서 많은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드디어 역사적인 출발

드디어 역사적인 출발 ⓒ 유지성



 초반부터 물을 건너고 산을 넘고...

초반부터 물을 건너고 산을 넘고... ⓒ 유지성


대회 첫날은 산악 구간 30km. 뭐 거리가 짧으니 여유를 부렸지만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곳 산의 바위들은 너무나 날카롭기에 조금만 스쳐도 살점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무서웠다. 수많은 바위와 능선을 넘어 오르락내리락. 어느덧 개울도 보이고 적당한 시간에 하루 레이스를 마칠 수 있었다. 그런데 첫날 앞사람들을 따라가니 수시로 길을 잃어 버렸다.

그래서 이후, 사람들보다는 나의 경험과 감각을 믿기로 했다. 그랬더니 길을 잃는 경우가 거의 없어졌다. 그런데 첫날부터 시작된 길 잃어 버리는 문제는 결국 다음날에 여러 참가자들이 무더기로 탈락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길을 찾을 때는 무엇보다 자신의 감각이 중요하다.

둘째 날 또한 산악 구간이다. 대신 거리는 40km로 전날에 비해 늘어났다. 똑같은 10시간의 제한 시간에 코스는 10km가 늘었지만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달려보니 이게 장난이 아니다. 코스는 어제보다 더욱 험하고 길 찾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주황색의 계곡을 벗어나자 이어진 끝없는 오르막과 수풀들. 이곳의 풀들은 그냥 풀이 아니고 죄다 가시가 있는 가시풀이다. 아직도 그때 박혔던 작은 가시들이 다리에서 빠져나오고 있는데 현장에선 어느 정도였는지 대충 짐작이 가실 것이다. 또한 첫날부터 오른쪽 발목을 삐었다. 원래 부실했던 오른쪽 발목이라 테이핑을 했지만 두 번 심하게 접질린 후 여지없이 통증이 몰려오고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첫날부터 부상이라 걱정만 쌓였다.

 험한 산을 오르는 한국 참가자 김경수씨

험한 산을 오르는 한국 참가자 김경수씨 ⓒ 유지성


 상당히 험한 코스의 연속

상당히 험한 코스의 연속 ⓒ 유지성


나는 이번 호주 대회에서처럼 선택과 집중이란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았던 적이 없었다.

첫 번째 선택과 집중은 코스를 달릴 때였다. 나는 오르막에 약하다. 대신 튼튼한 무릎이 있기에 내리막에 엄청 강하다. 같이 내달리면 상대방이 산을 내려올 쯤 나는 이미 반대 능선에 올라있을 정도로 내리막에선 당할 자가 없었다. 그래서 오르막은 철저하게 포기하며 걸어 올라가고 내리막은 전력 질주로 시간을 만회했다.

두 번째 선택과 집중은, 다른 대회 같으면 전체 대회 운영 계획을 세우고 하루하루 어떻게 할 것인가 전략을 세울 텐데, 이번에는 좀 달랐다는 점. 제한시간 안에 못 들어오면 무조건 탈락이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오지에서 10시간 안에 하루 60km를 달린다고 상상을 해보자. 기본적으로 달리기 능력이 없으면 이건 불가능하다. 무조건 힘이 있을 때는 달려야 한다. 달리기 위해서는 잘 먹어야 한다. 그런데 자기의 식량은 제한적이다.

여기서 선택을 했다. 음식을 적절하게 분배해야 하지만 당장 오늘 하루 살아남아야 내일이 있기에 9박 10일의 전략과 전술을 버리고 하루하루에 집중하는 하루살이가 되기로 했다. 일단 보이는 대로 집어 먹고 달리기만 했다. 물론 평상시 대회에 비해 고칼로리 음식도 2.5배 더 준비했다. 배낭은 무거워도 잘 먹어야 끝까지 버틴다는 소신이 있기에 무지막지하게 가져간 것이다. 우리 한국사람 4명의 배낭이 제일 컸다함은 그만큼 많이 먹었다는 소리다.

 끝이 안보이는낮은 언덕들을 넘어가야 한다

끝이 안보이는낮은 언덕들을 넘어가야 한다 ⓒ 유지성


 옆에서 보면 길이 안보일 정도로 숨어있다

옆에서 보면 길이 안보일 정도로 숨어있다 ⓒ 유지성


대회 둘째 날은 마지막에 길을 잃어버려서 헤매다 제한시간을 7분 남기고 골인했다. 거의 마지막엔 길을 찾기 위해 본능적으로 달린 것 같다. 스스로 생각해도 놀랄 정도로 초인적인 힘이 발휘됐다. 사람은 평상시 자신의 힘 중에서 20~30%만 사용한다는데 궁지에 몰리다 보니 숨어있던 힘이 나와서 초인이 되나 보다.

대회 3일째가 제일 고비였다. 첫날 30km, 둘째날 40km이던 코스가 갑자기 60km 이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물론 산악이 아니기에 좀 더 발이 편안할 수 있지만 늘어난 거리와 10시간의 제한시간은 또 다른 초긴장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다친 발목은 2중 3중으로 테이핑을 하니 좀 좋아졌지만, 끝까지 달리기 위해서, 아니 내일 살아남아 달리기 위해서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제한시간 안에 들어와야 한다. 마음이 초조해지니 연신 시계만 바라본다.

출발하고 구불구불 이어진 모래길과 도로를 지나 강이 나타났다.

"헉! 여기를 어떻게 건너지?"

속으로 놀라며 길을 가자니 저 멀리 바위에 한 무리의 선수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곳에 도착해 보니 강을 건너기 위해 보트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프랑스의 세실은 어제 산에서 넘어지고 해서 옷이 찢어진 상태로 넝마처럼 변해 있었다. 아직까지 웃음을 잃지 않는 여유를 보이며 문제없다고 하지만 얼굴은 이미 문제가 있어 보인다.

 고무 보트를 타고 강을 건너기도 했다

고무 보트를 타고 강을 건너기도 했다 ⓒ 유지성


 수풀과 모래로 구성된 코스들

수풀과 모래로 구성된 코스들 ⓒ 유지성


모두를 먼저 보내고 마지막으로 작은 고무 보트를 타고 강을 건너 모래사장과 자갈길을 달리니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만 보이는 초원이 나타났다. 역시나 이어지는 가시풀 숲 속을 헤치며 모래사막을 지나 얼마나 달렸는지도 모르겠다. 중간부터 같이 동행하는 경수 형님과 호흡이 잘 맞아서 함께 달렸다. 장거리 레이스에선 서로 능력이 비슷한 사람끼리 조를 이뤄 앞서거니 뒤서거니 번갈아가며 이끌면서 달리면 피로도 덜하고 많은 힘이 된다.

사막 구간을 벗어나자 일직선으로 뻥 뚫린 비포장 대로가 나타났다. 푹푹 빠지는 모래밭을 헤매다 다져진 좋은 길을 달리니 꿈속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다. 가끔 자동차도 다니고 뭔가 문명 세계와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그때부터 해지고 어두워질 때까지 제한 시간 안에 들어가려 미친 듯이 달렸다. 간신히 캠프에 도착하니 어째 선수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삭신이 쑤시고 힘들었지만 누군가 나를 부르기에 선수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이곳은 낮에 영상 40도, 밤에는 영상 4도까지 내려갔다. 해만 지면 추위가 몰려오는데 모닥불 주위로 몰려 앉은 지친 얼굴의 선수들이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제일 연장자인 뉴질랜드의 조가 이야기한다.

"난 내일부터 안 달려. 너무 힘들어 죽겠어. 누구 또 포기할 사람 있나?"

여기저기서 웅성웅성 떠든다. 모두 이 바닥에서 한가닥하는 베테랑들인데 다들 공통적으로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대략 40% 정도의 선수들이 코스 변경을 요구하거나 거리를 짧게 바꾸고 싶다고 했다. 보통의 대회에서는 있을 수도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첫날부터 코스 찾기도 어렵고 코스 난이도 또한 높고 여러 가지 환경이 상식을 초월하다 보니 인간 한계의 끝이 어딘가를 시험하는 듯했다.

상당히 오랜시간 회의를 마친 선수단과 주최측의 대화가 이어졌다.

사실 어디든 첫 번째 대회는 선수건 주최측이건 모두 힘들다. 검증되지 않은 코스와 룰, 수시로 바뀌는 코스와 일정 등등. 모든 것이 제대로 자리 잡히기에는 최소 2~3회 행사가 진행된 후다. 더욱이 호주 아웃백에서 열리는 첫 번째 대회이기에 더욱 더 그렇다. 왜냐하면 호주 사람들이 가장 불신했고 성공 가능성을 제일 낮게 봤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서 우리는 피와 살이 타는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체크포인트에선 무조건 쉬고 먹는다

체크포인트에선 무조건 쉬고 먹는다 ⓒ 유지성


덧붙이는 글 월간 <아웃도어>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호주 아웃백 마라톤 오지레이스 유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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