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 기록 누리집인 '스탯티즈'는 지난 16일 운영을 중단했다.

한국 프로야구 기록 누리집인 '스탯티즈'는 지난 16일 운영을 중단했다. ⓒ 스탯티즈 누리집 캡처


프로야구팬들이 주말에 날벼락을 맞았다. 한국 프로야구 사설 기록 누리집인 '스탯티즈(statiz)'가 지난 16일 예고 없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스탯티즈를 즐겨 찾던 많은 이들은 포털사이트와 블로그, 카페 등 사이버 공간에서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스탯티즈에 올라간 기록이 문제였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 기록을 제공하는 업체인 '스포츠투아이'의 한 관계자는 지난 15일 <스포츠춘추>와의 인터뷰에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서비스하는 문자중계를 마우스로 '무단 복사'해 엑셀작업을 거쳐 마치 자신이 기록을 하고, 통계를 낸 것처럼 사용하는 곳이 있다"며 "앞으론 '무단 기록 수집'에 대해 적절하고도 강력하게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법적 대응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이 기사를 본 스탯티즈 운영자는 곧바로 스포츠투아이에 사과하고 누리집 운영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는 누리집을 통해 "'무단 기록 수집'에 대한 경고나 법적인 부분까지 부담하면서 운영하기에는 지금 제 열정이 조금 식은 것 같다. 열정이 회복되고 편안히 사이트를 운영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언제든 사이트를 다시 운영할 것"이라며 "KBO나 스포츠투아이에서 팬들에게 기록에 대한 접근을 편하게 해서 스탯티즈의 가치가 없어지더라도 환영한다"는 뜻을 전했다.

이번에 스포츠투아이가 강력한 대응을 하기로 한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스탯티즈 운영자는 올해 프로야구를 소개하는 한 스카우팅 리포트 책에 기록을 제공하고 대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지난해 그 책은 스포츠투아이를 통해 기록을 받았다. KBO의 기록 관리 독점 계약사로 손님을 빼앗긴 격인 스포츠투아이는 이때문에 기록 저작권 침해 여부에 대해 더욱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불똥은 엉뚱하게도 야구팬들에게 튀었다. 스탯티즈가 갑자기 문을 닫으면서 가입 절차 없이 한국 프로야구의 다양한 기록 자료를 참고하고 활용할 수 있는 누리집이 졸지에 사라진 것이다. 스포츠투아이는 기록 관련 누리집을 운영하지 않고 있고 KBO는 기본 기록만 제공하고 있다.

KBO 공식 누리집의 기록 코너는 OPS(출루율+장타율), WHIP(이닝 당 출루 허용 수)와 같은 비교적 최근에 널리 알려진 기록을 반영하고, 일자·경기·상황별 기록을 팬에게 제공하는 등 조금씩 수준이 나아지고 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한 가지 예로 투수가 선발이나 구원으로 나선 경기가 몇 경기인지 나눠서 파악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매우 부실하다. 기록을 조회하는 화면도 구성이 조잡하기 그지없다.

누리집에 졸지에 사라져, 불똥은 야구팬들에게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기록을 다루는 '베이스볼 레퍼런스'는 선수의 기록뿐만 아니라 출신지, 경력까지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기록을 다루는 '베이스볼 레퍼런스'는 선수의 기록뿐만 아니라 출신지, 경력까지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 베이스볼 레퍼런스 누리집 캡처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의 공식 누리집도 우리와 사정이 크게 다르진 않다. 그러나 포털사이트에 자세한 기록이 제공되고 사설 기록 누리집도 있어 야구애호가들이 야구를 즐기는데 큰 문제가 없다. 특히 130년이 넘은 메이저리그의 기록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베이스볼 레퍼런스(baseball-reference)'가 대표적이다.

스포츠투아이와 KBO가 팬을 위한 기록 제공에 두 손을 놓은 사이 스탯티즈는 꾸준히 진화했다. 어수선하던 누리집은 점점 체계적으로 바뀌었고 각종 그래프에 과학적인 분석을 동원한 세이버메트릭스 관련 기록까지 올라왔다. 날이 갈수록 풍성해지는 자료와 높아진 야구 인기로 스탯티즈를 방문하고 기록을 인용하는 이들도 크게 늘었다. 어느덧 스탯티즈는 야구팬 사이에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 '관광 명소'가 됐다.

정규시즌 매년 133경기를 치르는 야구 기록을 정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프로야구는 프로스포츠 가운데 한 시즌 경기 수가 가장 많다. 시즌 중엔 월요일을 빼고 매일 4경기씩 열려 수시로 기록을 반영해야 최신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기록원이 아니면 매우 번거로운 이 작업이 스탯티즈에서는 꾸준히 이뤄졌다. 돈이 목적이 아니라 더욱 기적 같은 일이다.

팬 사이에 스탯티즈를 강하게 옹호하는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많은 건 단순히 기록을 공짜로 즐길 수 있어서만은 아니다. 만약 스포츠투아이가 팬들에게 성실하게 자료를 제공했다면 개인이 빤히 보이는 고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스탯티즈를 만드는 일은 처음부터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스포츠투아이는 의지만 있다면 개인이 주도해 만든 스탯티즈보다 훨씬 더 자세한 기록을 팬에게 제공할 수 있다. 실제로 스포츠투아이는 KBO를 통해 더욱 잘 정리된 기록을 선보일 예정이다. 하지만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스탯티즈 운영자는 누리집에서 "상업적인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라며 "몇 군데서 제안이 왔었고, 호스팅과 프로그램 및 사이트개발에 든 노력과 비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최근에 스카우팅 리포트에도 데이터를 제공했다. 이런 경우에도 기본 데이터의 출처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렸고 연결 고리가 있는 경우라고 판단하여 진행했다"며 "몇몇 출판사에서 더 제안이 왔지만, 더 진행을 하지 않은 것도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를 인정하고 속내를 솔직히 털어놓은 셈이다.

그렇다면 스포츠투아이가 절차의 문제를 잠시 미뤄두고 양보를 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자신들의 주도로 더 체계적인 야구 기록 누리집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스탯티즈와 같은 사설 기록 사이트에 대한 대응을 최대한 자제하는 것이다. 대신 '상업적 이용은 사전에 반드시 협의하고 운영비 등 최소한의 비용을 댈 때만 인정한다'는 약속을 하면 된다.

 한국야구위원회 누리집에 올려진 기록은 부실하고 보기도 불편하다.

한국야구위원회 누리집에 올려진 기록은 부실하고 보기도 불편하다. ⓒ 한국야구위원회 누리집 캡처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 기록은 숫자로 남는다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다. 기록지로 모든 경기 내용이 남고 각각의 상황은 숫자로 남겨진다. 기록으로 야구를 보는 관점은 더욱 다양해진다. 그런 점에서 지금까지 스포츠투아이와 KBO는 야구애호가들의 높아진 눈높이를 외면하는 일종의 직무유기를 했다. 이들이 빚을 갚는다는 심정으로 이번에 스탯티즈의 운영 재개를 돕는다면 팬을 위한 그 이상의 배려가 또 있을까.

스포츠투아이가 한국 프로야구 기록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한 건 헌신한 직원들만의 공이 아니다. 야구장을 찾거나 관심을 보이고 열렬히 환호한 야구팬들도 스포츠투아이의 발전에 간접적으로 힘을 보탠 이들이다. 야구가 인기가 없다면 야구 기록의 상품 가치와 그것을 다루는 회사의 가치도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야구 기록을 다양한 2차 저작물로 만들어 낸 스탯티즈 운영자의 노력은 좀 더 순수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돌아보면 지금의 스포츠투아이 역시 스탯티즈 운영자와 같은 야구 기록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만들어 냈다. 수많은 프로야구팬의 눈이 스포츠투아이의 통 큰 결단에 쏠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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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동작구위원장. 전 스포츠2.0 프로야구 담당기자. 잡다한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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