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은 배창호 감독이 5일 오후 서울 청담동의 한 커피숍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은 배창호 감독이 5일 오후 서울 청담동의 한 커피숍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정민


1960년대의 '시네키드'가 21세기 예비 감독들을 만났다. 그 '시네키드'는 80년대 '한국의 스필버그'로 칭송받으며 충무로의 대표선수로 활약하다, 홀연히 예술영화 감독을 선언한다. 그 후 2000년대는 디지털과 독립영화를 통해 자신만의 영화세계를 오롯이 펼쳐나가고 있다. 그의 이름은 배창호다.

제13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siyff)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은 배창호 감독을 개막식이 열리기 전인 5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작년 아리랑 TV의 '도시 시리즈' 중 <여행>을 연출한 바 있는 배창호 감독은 여전히 자신의 시나리오 작업에 여념이 없다고 했다. 1982년 <꼬방동네 사람들>로 데뷔해, <깊고 푸른밤> <기쁜 우리 젊은 날> 등 장르를 넘나들며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그의 별명은 '한국의 스필버그'였다.

몇 년 후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지만, 배창호 감독은 디지털 독립영화를 만들 만큼 동시대성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무엇보다 후배들에게 '온고지신'의 의미와 "뚜렷한 가치관을 가질 것"을 당부하는 이 노장 감독의 얼굴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다음은 배창호 감독과 나눈 인터뷰 전문이다.

- 어떤 인연으로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심사위원장직을 맡았나.
"한두 번 사양했다가 금년엔 시간도 나고, 마인하기도 해서 결심을 했다. 어떤 영화들이 출품됐나 파악은 했는데, 영화들은 가급적 영화제 기간 내에 상영관에서 볼 생각이다. 최근에 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은 건 작년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때다."

- '시네키드'로 성장해서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먼저 심사 기준부터 묻지 않을 수 없다. 
"주안점은 참신성이다. 기교나 영화적 지식은 앞으로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 얼마나 자기 시각을 가지고 새롭고 참신하게 만드느냐, 현실사회를 자기만의 체험과 시각, 보편성으로 관찰하느냐가 중요하다. 나도 데뷔 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단편영화를 찍어봤다. 그 즐거움과 열정, 성취감을 잘 알고 있다."

- 현재 영화를 출품한, 그리고 열심히 만들고 있을 까마득한 후배들에게 당부할 게 있다면.
"우리 청소년들의 삶의 조건이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각박해서 그런지, 사실적인 경향에 치우친 느낌이다. 아름다움도 결여돼 보이고. 자기 나름의 정서나 순수함이 결여된 듯 한 느낌도 종종 받는다. 무질서하고 혼돈스러운 이 세상 속에서도 깊숙이 보면 질서와 의미가 있다.  그걸 발견하면 보편성을 가지고 해외 관객들에게까지 호소할 수 있을 것 같다."

- 따님이 고등학생인 걸로 알고 있다. 우리네 각박한 현실 속에서 10~20대들이 예술가로서의 자질을 함양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면. 
"다른 창조 작업도 그렇지만 삶과 사람에 대해 많이 이해해야 한다. 삶의 이해가 크고 넓을수록 다른 사람을 공감시킬 수 있는 영화가 나온다. 그러려면 먼저 자기 삶을 사랑해야 한다. 삶이, 조건이 힘들더라도 초심 속에 깃들어 있는 마음 속 사랑을 유지해야 하고."

제13회 청소년국제영화제는?

배창호 감독이 경쟁부문인 '발칙한 시선 1, 2부'의 심사위원장을 맡은 제13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는 13일까지 CGV성신여대입구(주상영관)과 아리랑시네&미디어센터, 성북천 바람마당(부대행사)에서 진행된다.

상영작품은 작년보다 260편이 늘어나 역대 최다를 기록해, 총 65개국에서 1,235편이 출품됐다. 영화제 측은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가 명실상부 '세계 성장영화의중심' 으로 발돋움하고 있다"고 밝혔다.

개막작은 네덜란드 마크 데 클로에 감독의 <네덜란드에서 가장 힘 센 사나이>로 편부모 가장에서 자란 소년이 아버지에 대한 환상을 품고 출생의 비밀을 알기 위해 노력하는 성장영화다. 특별전으로는 네덜란드 어린이영화와 성장영화, 그리고 일본 성장영화가 마련됐다.

부대행사로 추천 관람 연령에 맞게 영화를 추천받을 수 있는 '관객 맞춤형 상영작 안내'가 시행되고, 전 세계 10여 개국 100명의 학생들이 모여 영화에 대한 꿈과 실기를 배우는 국제청소년영화캠프는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만의 명물이다.

 7일 서울 정릉 국민대학교 국제관에서 열린 ‘제13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개막식에서 공연자 정진혹과 가수 바다가 레드카펫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우 이천희와 그룹 '미쓰에이' 민(20)이 사회를 맡은 이날 개막식은 조직위원인 배우 강수연, 심사워원장 배창호, 영화감독 임권택,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 배우 유지태, 방은진, 홍보대사 김새론 등이 참석했다.

7일 서울 정릉 국민대학교 국제관에서 열린 ‘제13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개막식에서 공연자 정진혹과 가수 바다가 레드카펫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우 이천희와 그룹 '미쓰에이' 민(20)이 사회를 맡은 이날 개막식은 조직위원인 배우 강수연, 심사워원장 배창호, 영화감독 임권택,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 배우 유지태, 방은진, 홍보대사 김새론 등이 참석했다. ⓒ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은 배창호 감독이 5일 오후 서울 청담동의 한 커피숍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배창호 감독은 여전히 '배창호 프로덕션'을 통해 자신만의 색깔을 낼 수 있는 작품을 구상 중에 있다. ⓒ 이정민


'한국의 스필버그', 예술·독립 감독으로 다시 태어나다

- 작년 <여행>도 그렇고 현역으로 동시대성을 가지고 후배 세대와 소통하려는 모습이 일견 감동적이다. 
"예전 세대의 무게와 젊은 세대가 가진 지식, 관찰력을 합하면 그야말로 온고지신이 되는데, 이게 중요하다. 나 같은 세대의 안내도 필요하고, 젊은 세대의 시각도 필요하다는 뜻이다. <여행>도 디지털로 만들었는데 협력 작업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3편으로 나뉘는데, 대학생들의 여행이야기는 교수로 재직했던 건국대 학생들과, 제주도의 결손가정 중학생 이야기는 당시 중3이던 딸과, 중년여성의 일탈여행은 집사람과 같이 썼다. 내가 가진 고정관념도 깨고, 젊은 사람들이 내게 가진 고정관념, 편견도 깰 수 있었다."

-요즘 영화계 현실을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흥행영화는 갈수록 현실하고 괴리되는 느낌이라 아쉽다. 영화는 물론 현실도피 기능이 있지만, 너무 치우쳐서 대기업의 소모품이 되어 가고 있지는 않은지…. 젊은이들이 꿈을 가지고 (영화계에) 들어와도 재능을 대기업의 소모품으로 이용당하는 것도 같고."

- 반면 '한국의 스필버그'란 별명을 얻었던 80년대는 스타가 출연하고도 의미 있는 영화들이 적지 않았다.
"현실에 대해 얘기했고 테마가 있었지. <고래사냥>만 해도 지금으로 따지면 몇 백만을 동원한 흥행작이지만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었다. 최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뽑은 '최고의 청춘영화'로 뽑히기도 했고.

대기업 자본에 의해 소모적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10, 20년 후에도 남는 영화가 많길 바란다. 대중영화 속 문화상품으로서의 가치랄까. 투자자들만 힘을 너무 발휘하니까 그게 안타깝다. 독립영화 쪽에서 감독들의 힘을 더 키울 수 있는데 자금조달도 그렇고 힘드니까."

- <흑수선> 이후 독립자본으로 영화를 찍었는데, 영화 후배들에게 조언을 좀 한다면.
"이건 하나 당부하고 싶다. 영화에 젊음을 바쳐 업을 걸겠다는 이라면, 영화를 하면서 잃게 되는 개인적인 것과 경제적인 어려움을 감내할 만큼 값어치가 있는 건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인생은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 없다. 또 현실에 적응한다고 해서 패배한 삶은 아니다. 단지 가치관을 어디다 두느냐가 중요하다. 영화 대신 가정을 꾸리고 아이 교육 잘 시키는 것도 가치 있는 삶이다. 가치관이 뚜렷하지 않으면 힘든 현실이란 걸 명심해야 한다."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은 배창호 감독이 5일 오후 서울 청담동의 한 커피숍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좀 더 많은 영화를 찍을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감독 배창호는 이제 자신만의 세계를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을 비쳤다. ⓒ 이정민


<꼬방동네 사람들>로 데뷔 때는 두근두근... 할리우드 노장 안 부러워 

- 80~90년대까지 많은 여배우와 활동했다. <러브스토리>이후 함께 작업한 아내를 제외하고 이제껏 '넘버원' 여배우는 누구였나, 또 요즘 배우들 중 누구를 눈여겨보나. 
"<고래사냥2>의 강수연이 떠오른다. 앳될 때였는데 지금은 원숙한 매력을 지녔으니 한 번  다시 해보고 싶다. 요즘 재능 있고 연기 잘 하는 여배우들은 많지만, 원래 재능을 보고 일하기보다 시나리오를 쓴 뒤 적역이다 싶으면 캐스팅하는 편이다. 그래서 노코멘트(웃음)."

- 영화가 사(史)적인 기록물의 성격도 있는데, 앞으로 '배창호' 영화를 더 많이 보고싶다.
"이제는 내 작품이 관객들과의 소통을 얼마나 값어치 있게 하느냐, 내가 삶에 대해 해 줄 말을 얼마나 잘 담아냈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하다. 이렇게 신중하니까 만드는 기회가 쉽게 오진 않는다. 또 영화는 자본이 들어가야 하니까. 다양하게 생각하는 중이다."

- 대기업을 다니다 고교 선배인 이장호 감독의 조감독으로 투신했다는 이력 때문인지 후배들에 대한 조언에 진정성이 묻어난다. 흥행감독에서 예술영화로 방향을 전환하기도 했고.
"그런 나도 데뷔 할 때는 첫 작품 <꼬방동네 사람들>로 인정을 못 받으면 그만두려고 했다. 연이어 성공을 해서 다행이지(웃음). 이후 <황진이>가 터닝포인트였는데 충무로에 이상한 영화를 찍는다고 소문이 확 났다. 길게 정적인 화면만 찍는다고. 지금 보면 아쉬운 부분도 많지만, 그 당시는 그렇게 해 보고 싶었다. 지금까지 18편을 만들었고, 실패한 작품도 있지만 나름대로 선택만큼은 신중하게 했다."

- 우디 알렌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노년까지 활발히 활동하는 할리우드 감독들이 부럽진 않나? 
"그런 부러움은 다 부질없다. 옛날엔 시나리오 작업과 촬영 후까지 이중 검열이 있었다. <꼬방동네 사람들> 수출금지도 1987년에 풀렸고. 그때는 내가 다른 좋은 여건의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하고 생각은 한 적 있지만, 자기 시대와 환경에서 때로는 인내심과 소망을 가지고 자리를 잡는 것이 맞는 거겠지."

- 앞으로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배창호 회고전'도 열릴 법한데.
"회고전이나 영화 상영회에 가면 장·단점이 다 있다. 시대를 떠나 요즘 관객들하고도 소통할 수 있는 영화의 가치를 느끼는 건 좋다. 단점은 추억 속에 잠시 빠졌다 돌아와야 한다는 거다. 왜 옛날 학창 시절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 그때 그 거리의 추억이 확 살아나잖나. 추억은 좋은데 시대가 너무 달라져 있잖나. 언제까지 추억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으니까."

[오마이 프랜드] 안성기? 이명세? 영화와 사람이야말로 나의 동반자

30년 넘게 활약해 온 노장 감독에게 영화 <라디오 스타>의 안성기, 박중훈과 같은 영화동지가 누구냐는 질문은 역시나 우문일 수밖에 없었다. 결혼 이후 1995년작 <러브 스토리>부터 배우와 감독으로 함께 해 온 아내 정유미씨가 아닐까 어설픈 짐작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순수함을 여전히 간직한 이 '만년 영화소년'은 영화만큼이나 그와 역사를 함께 해 온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결론은 우문에 현답이 돌아왔다는 말씀.

"우리 집사람은 최근이고. 상투적인 말이 아니라, 나와 같이 일하는, 일했던 모든 사람들이다. 영화가 나 혼자 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걸, 여러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대중영화감독으로 살며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여행>이 제자들과 딸, 집사람의 도움을 받아 이뤄냈듯이 매 작품 매 작품 나의 조감독, 촬영감독들, 연기자들이 있었던 거다. 그저 어떤 사람은 좀 더 오래 같이 일했고, 집사람은 결혼 후로 오래 지켜봐준 거고.

안성기씨는 13편을 함께 했으니까 얼마나 내가 많이 도움을 받았겠나. 선배로서는 이장호 감독, 후배로는 이명세, 작년에 타계한 곽지균 감독도 있고, 신승수 감독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배창호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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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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