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어떤 장면보다도 스티븐 달드리의 <빌리 엘리어트>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빌리가 국립무용학교에 합격해서 도시로 떠날 때의 장면이다. 빌리는 자신과 가장 친했던 게이친구의 볼에 입을 맞추고 다정하게 포옹한 후 기다리는 가족과 함께 길을 떠난다. <빌리 엘리어트>는 전체로 봤을 때는 탄광촌에서 자라난 엄마 없는 빌리가 남성들 틈안에서 그들이 협오스럽게 생각하는 여성들의 전유물이라고 여긴 발레를 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 과정안에서 아버지는 아들을 이해하게 될 뿐 아니라, 전에는 협오스럽게 생각되었던 남성의 발레를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어쩌면 <빌리 엘리어트>에는 숨겨진 다양성을 수용하려는 노력을 영화 곳곳에 보여주고 있다. 게이친구가 처음 빌리의 손을 자신의 옷주머니에 넣고 그의 뺨에 키스할 때 빌리는 당황해 하지만 이내 웃음을 지며 친구를 인정해 준다.

그리고 실제로 빌리는 그를 우습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진정한 친구로 곁에 둔다. 빌리 역시 그 친구가 아니였으면 누구에게 그 오랫동안 자신의 속사정을 인정 받았을 수가 있었겠는가. 그래서인지 난 다시 볼 때마다 빌리를 담담히 떠나보내는 게이친구의 마음이 어떠했을지에 대한 것으로 인해 그 영화에서 그 장면에서 눈물이 난다.

 비밀스런 사연들이 흩날리는 공간, 종로의 밤

비밀스런 사연들이 흩날리는 공간, 종로의 밤 ⓒ 빈장원


우리 나라에서 정확히 성적 소수자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그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어느 누구도 쉽게 자신이 그쪽이라고 말할 수 없는 사회적 통념때문이다. 힘들게 자신의 정체성을 말했던 빌리의 친구처럼 고백하는 사람조차 많지는 않을 것이다. 비밀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사람이 그들의 가면을 벗어던지는 공간을 이야기하는 <종로의 기적>은 그래서 굉장히 흥미로운 테마이다.

픽션과 다른 다큐멘터리의 특성상 아직도 영화 속 그거리에서는 가면(모자이크 처리)을 써야만 하는 이들이 존재하지만 그래도 그들의 행동이나 말을 그 어느 곳보다 자연스럽게 보인다. 감독은 그곳을 관찰하면서 영화를 시작하고 그곳을 빠져나오면서 영화를 마무리하는 수미상관의 구조로 영화를 다루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4명의 인물들은 커밍 아웃을 이미 한 존재들이다. 그 사람이 누구가 되었건. 하지만 영화는 정작 듣고 싶었던 그들이 어떻게 그동안 자신의 아픔을 숨겨왔으며 어떠한 방식으로 고통을 받았는지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연출자 이혁상은 자연스레 그들과 친구과 되어 4명의 일상을 그리고 그 속에서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작품을 진행시킨다. 비슷한 소재를 이야기하는 다큐에서 이야기했던 그 어떤 '쇼크'도 <종로의 기적>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지점이 영화가 더욱더 객관성을 확보하는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고인이 된 극중 주인공, 영수

지금은 고인이 된 극중 주인공, 영수 ⓒ 빈장원


하지만 이 영화에서도 관객을 흔들리게 만드는 장면이 없지는 않다. 특히 시골게이의 이야기를 그린 영수의 에피소드가 그렇다. 합창단의 일원으로 긍정적인 삶을 사는 한 소시민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사실은 그의 모습에 그저 웃기만 할 수는 없었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 인근의 대도시에서 공연을 하게 된 영수가 초대한 인물은 그가 그렇게도 좋아했던 고등학교 때 친구다.

친구는 약속시간보다 늦게 공연장에 도착하는데 의외로 제법 장성한 아들과 아내를 대동한 채다. 순간 난 <빌리 엘리어트>에서 등장했던 빌리의 게이친구가 떠올랐다. 빌리는 빌리대로, 친구는 친구대로 오랜 시간을 보내 어른이 되었지만, 혹이라도 그때, 빌리를 좋아했던 감정이 사그라들지 않고 친구의 마음 속에 있지는 않았을까 <빌리 엘리어트> 영화 마지막 장면을 보고 물음표를 던져봤는데, 영수의 모습이 빌리친구와 이상하게 오버랩되었다.

관객이 많지 않은 공연장에서 자신의 공연에 박수해 주는 첫사랑 친구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가족과 함께 공연장을 유유히 떠나가는 뒷모습을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며 피우는 담배는 얼마나 쓰디 썼을까? 현실은 현실이지만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리고 그 뒷모습이 그를 볼 수 있었던 마지막 순간임을 관객이 에피소드 끝 부분에 알게되었을 때쯤. 아마도 그 누구도 흔들리지 않았을 사람은 없었으리라.

 알콩 달콩 사랑을 키워가는 욜 커플

알콩 달콩 사랑을 키워가는 욜 커플 ⓒ 빈장원


'종로'는 대학교 때 무수히도 많이 친구들과 만났던 공간이다. 낙원상가에서 기타를 사고, 종로2가 거리를 배회하며 예술영화를 섭렵했던 내게는 정든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곳 즈음에서 그렇게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비밀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곳을 떠다니고 있는지는 그때는 알지 못하였다.

시인 기형도가 종로의 게이들이 간다는 한 작은 극장에서 숨을 다했을 때 난 그곳이 어딘지 미치도록 궁금했으며 얼마뒤, 기형도 시에 등장하는 시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야 하는 소수자로서의 삶을 살았던 기형도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을 안 뒤 종로는 내게 색다른 공간으로 다시 펼쳐졌었다.

<종로의 기적>에서 한가지 아쉬운 것은 실제로 그들이 양지의 삶을 영위하는 종로의 모습이 잘 들어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종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게이커뮤니티의 모습은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지만 그 포장마차 거리에서, 또 게이바에서 흘러나오는 사람의 냄새나 노래등은 희미하게라도 잘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4명의 주인공에게 '종로'라는 공간 자체를 발견한 것이 '기적'이었을텐데 관객에게는 그 기적의 의미를 발견하기란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게이가 아닌 관객 입장에서도 '종로'라는 지역 자체를 좀 더 다른 공간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지리학적인 특별성을 획득할 수 있었을텐데 그점이 좀 못내 아쉽다. 그래도 숨겨진 이들이 앞으로 나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떳떳히 하고 밝게 살아가는 모습(실제로는 외로움에 부들부들 떨지도 모른겠지만)을 그린 다큐의 존재만으로 <종로의 기적>은 자신의 본분을 다한다. 다만, 이 작품 자체가 일반인들에게 협오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종로의 기적(2010)

감독 / 이혁상
주연 / 소준문, 장병권, 최영수, 정욜
종로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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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전주국제영화제 관객평론가 2008 시네마디지털서울 관객심사단 2009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관객심사단 2010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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