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 내야수 윌슨 발데스의 26일(한국시각) 승리 소식을 첫 화면에 띄워두고 있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 내야수 윌슨 발데스의 26일(한국시각) 승리 소식을 첫 화면에 띄워두고 있다. ⓒ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캡처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야수가 마운드에 올라 승리까지 거머쥔 흔치 않은 경기가 나왔다. 필라델피아 필리스 내야수 윌슨 발데스(33)가 그 주인공이다. 발데스는 2008년 국내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에서 유격수로 47경기 뛴 적이 있어 낯익은 선수다.

발데스는 26일(한국시각) 시티즌스뱅크파크에서 열린 미국프로야구 신시내티 레즈와의 홈경기에서 8번 타자 겸 2루수로 선발 출장해 4-4이던 19회초 팀의 9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발데스는 1이닝을 무안타 무실점으로 막아 찰리 매뉴얼 감독의 기대에 따랐다. 몸에 맞는 공과 폭투가 하나씩 나오긴 했지만 세 타자를 뜬공으로 처리하며 투구 실력을 뽐냈다.

한 회를 깔끔하게 막아낸 발데스는 마운드를 내려오면서 홈구장 팬들에게 우렁찬 박수를 받았다. 발데스는 타석에서도 6타수 3안타로 제 몫을 톡톡히 했다.

발데스가 던진 공은 투수 못지않을 정도로 꽤 빨랐다. 직구 최고구속은 시속 90마일(약 145km)까지 나왔고, 평균구속이 시속 140km쯤 됐다. 타자의 몸에 맞췄지만 커브도 하나 던질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발데스는 메이저리그는 물론 마이너리그에서도 투수로 나온 기록이 없었다. 하지만 빠른 공을 던지고 변화구를 잡는 법을 알고 있어 학창 시절 투수로 나섰을 가능성이 있다. 어깨가 좋은 유격수 출신 야수가 중고교 시절 투수를 함께하는 건 흔한 일이다.

필라델피아는 이어진 19회말 공격에서 라울 이바네스가 끝내기 희생플라이를 때려 한 점을 보태 5-4로 이겼다. 덕분에 발데스는 2004년 메이저리그에 올라온 이래 처음으로 투수가 아님에도 1이닝을 던지고 승리투수가 되는 감격을 누렸다. 발데스는 경기가 끝나고 인터뷰를 하던 도중 동료로부터 크림 세례를 받기도 했는데 승리를 챙긴 기쁨 때문인지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윌슨 발데스는 2008년 KIA 타이거즈에서 내야수로 뛴 적이 있다. KIA는 시즌 중인 5월 27일 발데스를 퇴출했다.

윌슨 발데스는 2008년 KIA 타이거즈에서 내야수로 뛴 적이 있다. KIA는 시즌 중인 5월 27일 발데스를 퇴출했다. ⓒ KIA 타이거즈

메이저리그에서 지명타자를 쓰지 않는 내셔널리그는 투수가 타자로 나서게 된다. 그래서 긴 이닝을 던지는 선발투수는 2~3차례 타석에 들어설 기회가 있다.

하지만 야수가 마운드에 오르는 일은 아메리칸리그를 포함해서도 흔치 않다. 2000년 8월 23일 콜로라도 로키스 포수 브렌트 메인이 1이닝을 던지고 승리투수가 된 이래 메이저리그에서 10년 넘게 나오지 않았을 정도다.

메이저리그는 무승부를 인정하지 않고 '끝장 승부'를 펼치기 때문에 정규이닝인 9회까지 동점이더라도 연장으로 승패가 갈릴 때까지 경기를 치른다. 그래서 이날 경기는 무려 6시간 11분이나 걸렸다.

연장전에 들어가면 투수 소모가 심해 때에 따라 야수가 등판할 수도 있다. 다음날 예고한 선발투수를 제외하고 모든 투수를 투입하면 감독은 어쩔 수 없이 야수를 마운드에 올릴 수밖에 없다.

국내 프로야구도 2008년 무승부를 없애고 끝장 승부를 했다. 하지만 현장 지도자들이 부상 위험이 크고 선수층이 얇다는 이유로 반대하자 1년 만에 무승부를 인정하는 쪽으로 제도를 바꿨다.

끝장 승부는 없지만 국내 프로야구도 가끔 야수가 마운드에 오를 때가 있다. 투수를 다 써버리면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김성근 SK 감독은 2009년 6월 25일 광주 KIA전에서 연장 12회말 3루수 최정을 마운드에 올렸다. 당시 최정은 시속 146km의 강속구를 던졌지만 끝내기 패스트볼로 1점을 내주고 패전투수가 됐다.

야수는 등판하기도 어렵지만 승리투수가 되기는 더 어렵다. 2루수인 발데스가 우연히 마운드에 올라 타자의 수준이 가장 높다는 메이저리그에서 승리투수까지 된 건 그만큼 특별하다. 발데스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갖게 됐다.
2011.05.26 20:00 ⓒ 2011 OhmyNews
발데스 KIA 메이저리그 프로야구 필라델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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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동작구위원장. 전 스포츠2.0 프로야구 담당기자. 잡다한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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