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주인공인 영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 포스터

가족이 주인공인 영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 포스터 ⓒ NEW

답답했다. 영화를 보는 동안 그랬던 것이 사실이다. 개봉을 앞둔 민규동 감독의 신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4월 21일 개봉)의 이야기다. 소변을 보기 힘들 정도로 통증이 계속됐다면 진작 병원에 가야 했고, 암 진단을 받고 나서는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생을 위해 사는 것이 맞다.

무조건 희생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담아야 해서일까. 수술을 할 수 없는 말기 암 선고를 받고도 치매에 걸려 정신을 놓은 시어머니를 수발한다. 설상가상 야무진 딸은 잘못된 사랑을 하고 아들은 임신했다는 여자 친구가 만나주지 않는다며 엄마 품에서 운다.

그럼에도 영화 속 착한 어머니는 가족들을 향해 큰 소리 한번 치지 않는다. 인자한 모습으로 품어주는 어머니 상을 재현한다. 아름답게 이별하기 위해 그래야 한다는 의무를 가지고 있는 것만 같다. 눈물이 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그런 영화다. 남편과 아내, 자식이고 부모인 우리가 살며 느끼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희생만 하는 전형적인 엄마의 모습

의사인 남편,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딸과 삼수를 했지만 대학 입학을 앞둔 아들이 있다. 한 마디로 인희(배종옥)는 망나니 남동생 근덕(유준상)이 보는 것처럼 의사 집 사모님이다.

하지만 일상은 다르다. 딸은 늘 바쁘고 대입 시험을 본 아들은 여자 친구에 빠져있다. 의료 사고 이후 새파랗게 젊은 원장 밑에서 월급쟁이 의사 노릇을 하는 남편(김갑수)은 늘 피곤하단다. 아내가 아프다는 말에도 "약국에 가 보라"며 귀찮아한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는 밥을 똥이라며 툭하면 머리채를 휘어잡는다. 그렇지만 인희는 화 한번 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며느리를 한 순간도 자신의 곁에서 떼어놓으려 하지 않는다. 스크린에 몰입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숨이 찰 지경이다. 모든 상황이 엄마를 힘들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치매 시어머니를 돌보느라 지친 인희

치매 시어머니를 돌보느라 지친 인희 ⓒ NEW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로 돌아온 민규동 감독은 이번 작품을 '엄마와 부딪치는 의미 없는 일상들이 커다란 갈등으로 변하고 충돌하지만 결국 소통하고 화해하는 인물들의 콜라주'라고 설명한다.

인희의 말기 암이 바로 소통을 위한 계기가 되는 것이다. 착한 엄마인 인희는 곧 죽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아픈 몸으로 확인하지만 그동안 자신을 힘들게 했던 식구들에게 아무런 원망도 서운함도 내비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들은 더 미안하다. 각자의 삶 속에서 주인공으로 사느라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민규동 감독은 가족 구성원들이 인희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조명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때로는 남보다 못한 원수처럼 느껴지는 평범한 가족에게 찾아온 갑작스런 엄마의 말기 암 판정과 그로 인해 '진짜 가족'이 되어가는 이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답답하고 슬프다 깨닫게 되는 가족의 이야기

 암 선고를 받고 홀로 아픔을 삭희는 인희의 모습

암 선고를 받고 홀로 아픔을 삭희는 인희의 모습 ⓒ NEW


노희경 작가의 동명 드라마를 다시 영화로 만들어낸 민규동 감독은 "가족이라는 소우주를 통해 인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15년 전인 1996년 발표된 드라마였기에 지금의 정서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영화가 말하려는 것은 죽어가는 엄마 앞에서 서서히 변해가는 가족들의 모습이다. 모두가 똑같이 서로에게 무신경 한 채 살아가지만 어느 순간 진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담아낸 것이다. 인희의 죽음 후 서로 대화하고 챙겨주며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는 영화의  마지막은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2005)과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2008)등 인물들의 섬세한 내면을 묘사하는데 탁월한 감각을 나타낸 민규동 감독의 연출력과 방송가의 세계를 다룬 <그들이 사는 세상>(노희경 원작)의 배종옥, 김갑수, 김지영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울지 않고는 볼 수 없는 장면들을 연기하는 인희 역의 배종옥과 음식물 쓰레기까지 주워 먹는 치매 연기를 선보인 김지영은 그들의 인생을 증명하듯 베테랑 연기를 선보인다. 아내의 병을 알고 술 취해 괴로워하는 의사 남편을 연기한 김갑수와 '진짜 진상이다, 짜증난다'고 느낄 정도의 연기를 선보인 유준상의 열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내의 마지막을 함께 보내며 '백만송이장미'를 불러주는 남편

아내의 마지막을 함께 보내며 '백만송이장미'를 불러주는 남편 ⓒ NEW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 한 구석이 짠하고,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는 사실을 다들 인정할 것이다. 식구들을 늘 걱정하며 자식들의 인생을 돌보는 것이 엄마의 인생 전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가족의 중심에는 엄마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그런 엄마를 통해 가족애를 느끼게 하는 영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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