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MF 정다훤

경남 MF 정다훤 ⓒ 한국프로축구연맹

후반전 초반에 보기 드문 장면이 나왔다. 오른쪽 측면으로 공을 몰고가던 미드필더 정다훤이 울산 수비수들에게 막히면서 패스할 타이밍을 놓치자 옆에서 공을 기다리던 루시오가 실망감 깊은 표정을 지으며 등을 돌리고 돌아서버렸다. 그러자 마치 거짓말처럼 정다훤으로부터 뒤늦게 패스가 온 것이었다.

이미 돌아서버린 루시오는 그 순간을 아예 포기해버렸기 때문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나쁘게 보면 같은 팀의 미드필더와 공격수가 지녀야 할 조직력이 모래알처럼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분 후 이 둘은 보란듯이 찰떡 궁합을 자랑하며 멋진 결승골을 만들어냈다.

최진한 감독이 이끌고 있는 경남 FC는 13일 낮 3시 30분부터 창원축구센터 전용경기장에서 벌어진 2011 K-리그 2라운드 울산 현대와의 첫 안방 경기에서 후반전 루시오의 통렬한 결승골을 끝까지 잘 지켜내며 1-0으로 이겼다. 이 바람에 유명 선수들이 보강된 수원 블루윙즈와 나란히 2연승의 휘파람을 불어대고 있는 것이다. 2011년 출발이 아주 좋은 편이다.

MF 정다훤, 설움 딛고 우뚝 서다!

1만 6천여 팬들이 아담한 창원축구센터를 가득 메운 경남 FC의 시즌 첫 홈 경기는 그 관중석의 열기만큼이나 치열한 그라운드 맞대결이 이어졌다. 방문 팀 울산은 지난 6일 대전 시티즌과의 안방 경기에서 1-2로 패한 바 있기 때문에 순순히 물러날 수 없는 입장이었다.

반면에 경남 선수들은 지난 해에 울산에 연거푸 당한 두 차례의 0-1패배로 인한 불편한 기억을 지워버려야 할 때가 왔다고 믿었다. 실제로 그들은 가운데 미드필더 윤빛가람과 김태욱을 중심으로 짜임새 있는 경기력을 자랑하며 울산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39분에 윤빛가람이 오른발로 강하게 찬 공이 비록 울산의 크로스바를 강하게 때리고 나왔지만 그 강도만큼 경남 선수들의 의지는 강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후반전 시작 후 10분만에 결국 큰 일을 내고 말았다.

역습 과정에서 정다훤의 오픈 패스가 타이밍이나 정확성 면에서 훌륭했고 이 공을 받아 몰고 가던 루시오가 울산 벌칙구역 반원 밖에서 왼발로 강하게 찬 공이 골문 왼쪽 톱 코너로 멋지게 빨려들어갔다. 마치 그 골문 바로 뒤에서 응원하고 있던 경남 FC 서포터즈에게 주는 큰 선물로 느껴질 정도였다.

골을 넣은 루시오도 분명히 잘 했지만 2경기 연속 도움주기를 성공시킨 정다훤의 경기력은 보는 이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가 지난 2년 동안 FC 서울의 R(2군)리그 팀에서 소외받았던 인물인가를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경기 시작 10분만에 왼쪽 끝줄 바로 앞에서 울산 수비수 둘을 완벽하게 따돌리며 오른발로 골문 앞 루시오의 머리를 겨냥하여 올리는 띄워주기 실력은 비록 골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매우 날카롭고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55분의 결승골을 이끌어내는 패스도 그 감각이 돋보이는 명장면이었다. 동료 공격수를 믿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빠른 타이밍에 그렇게 효율적인 공간 패스가 나올 리가 없었다. 그 덕분에 루시오는 뒷걸음질을 치고 있던 울산 수비수들을 바라보며 시원스러운 왼발 중거리슛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문지기 김병지가 쓰고 있는 전설의 기록

 경남 GK 김병지

경남 GK 김병지 ⓒ 한국프로축구연맹

경남 FC의 2연승 뒤에는 그 누구보다 든든하면서도 여유가 넘쳐보이는 맏형 문지기 김병지가 있었다. 이번 상대 팀 공격수로 설기현과 김신욱이라는 국가대표 출신의 대형 스트라이커들이 뛰고 있었지만 그의 노련한 대응 자세는 이제 축구를 배우는 어린 선수들이 본받아야 할 교본이었다.

마침 그가 상대한 울산은 20년 전 처음으로 K-리그에 데뷔했던 친정 팀이어서 묘한 감정이 교차하기도 했다. 올해 41살의 적잖은 나이로 통산 537경기 출장 기록을 전설처럼 써 내려가고 있는 김병지의 축구화에는 "내 뒤에 공은 없다"라는 좌우명이 새겨져 있다.

이 좌우명은 그의 트위터(@kimbyungji) 자기 소개의 글로도 쓰이고 있는데, 바로 이 말처럼 올 시즌 초반 두 경기에서는 정말로 자신의 바로 뒤에 있는 골 라인을 넘은 공이 하나도 없도록 만들고 있다.

이 경기 64분에 벌어진 상황을 돌이켜보면 그가 왜 아직도 골문 앞에서 장갑을 끼고 몸을 날려야 하는지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울산의 공격형 미드필더 고창현이 날카로운 드리블 실력을 자랑하며 공을 몰다가 왼쪽으로 돌아들어가는 동료를 겨냥하여 찔러주는 순간에 그 공이 경남 수비수의 다리에 맞고 골문 쪽으로 급하게 방향이 바뀌었다.

누가 봐도 자책골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김병지의 반응 동작은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른바 역동작에 걸려 오른쪽으로 중심이 이동하는 순간이었는데도 왼편으로 몸을 내던지며 공을 완벽하게 잡아낸 것이었다.

그 이후에도 김병지는 누구보다 침착하게 울산의 거센 반격에 침착하게 대응했다. 송종국의 유효 슛도, 교체 선수 이진호의 유효 슛도 각도를 잘 잡고 자리를 잡은 김병지에게는 평범하게 보일 정도였다.

이제 두 팀은 16일 저녁에 리그 컵 대회 첫 라운드를 준비해야 한다. 정규리그 2연승을 달리고 있는 경남 FC는 대구 FC와의 방문 경기가 예정되어 있으며, 2연패의 늪에 빠진 울산은 부산을 호랑이굴로 불러들여 자존심 회복에 나선다.

덧붙이는 글 ※ 2011 K-리그 2라운드 창원 경기 결과, 13일 낮 3시 30분 창원축구센터

★ 경남 FC 1-0 울산 [득점 : 루시오(55분,도움-정다훤)]

◎ 경남 선수들
FW : 윤일록(84분↔이용기), 루시오
MF : 김영우(76분↔이경렬), 김태욱(90+1분↔이혜강), 윤빛가람, 정다훤
DF : 이재명, 박재홍, 루크, 안현식
GK : 김병지

◎ 울산 선수들
FW : 설기현, 김신욱(85분↔이진호)
MF : 문대성(46분↔이재성), 에스티벤, 이호, 고창현
DF : 최재수, 강민수, 곽태휘, 송종국
GK : 정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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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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