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당거래> 포스터

영화 <부당거래> 포스터 ⓒ (주) 필름 트레인


"너 오늘부터 범인해라!"

범인이 아닌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면 될까, 안 될까? 정답은 당연히 '안 된다'이다. 그런데 그 답이 정반대라고 말하는 현장이 앵글에 잡힌다. <부당거래>는 그렇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우리가 사는 사회의 구렁텅이 같은 진면목을 그대로 조사(照査)한 영화다.

'범인을 잡지 못하면 만들어라'. 참 타이틀이 그럴 듯하다. 그래서 걸려든 인간이라면 얼마나 억울하고 비통하겠는가.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영화만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나를 슬프게 만든다. 그저 영화는 우리 사회를 들여다 봐 준 것뿐이다. 류승완 감독은 '영화'라는 메스를 통하여 이미 벌어졌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고, 앞으로 벌어질 이 사회의 흉물스런 속살을 드러낸다.

특히 경찰과 검찰의 주변에서 맴도는 가진 자들의 더 가지려는 욕심 때문에 벌어지는 검은 커넥션은 팽팽한 긴장감과 얼버무려진다. 물고 물리는 검·경의 비리는 가히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쥐어뜯으며, '저게 아마 맞을 거야'라고 공감하게 만든다. '저런 이들에게 세금을 바쳐 월급을 주는 건가?'하는 의분을 토하게 하기도 하고 말이다.

현실과 묘하게 닮은 영화, <부당거래>

아동 성폭행 살인사건은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이 사건을 맡은 광역수사대장 최철기(황정민 분)는 아무리 뛰어도 범인을 잡지 못하고, 경찰대 출신인 다른 이가 진급을 가로챈다. 급기야 대통령까지 나서 빨리 범인을 검거하라고 호통을 치고 국민 초미의 관심사는 범인을 잡느냐 못 잡느냐에 쏠렸다.

 최철기 형사와 주양 검사가 기대결을 펼치고 있다.

최철기 형사와 주양 검사가 기대결을 펼치고 있다. ⓒ (주) 필름 트레인


경찰청은 결국 범인을 못 잡으면 만들면 될 게 아닌가 하는 로맨틱한 생각에 사로잡힌다. 이 일에 진급을 미끼로 발탁된 최철기는 그의 스폰서인 해동의 장석구(유해진 분)를 이용해 배우를 하나 물색한다. 그럴 듯한(아무도 알아 줄 사람 없는, 관심 가져 주지 않는) 시민 하나 붙잡아 고문하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 역사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인혁당 사건'을 아는가? 1974년 4월 군사독재에 맞서 대학생들이 궐기하자 당시 박정희 군사정권은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이들을 잡아 가두고, "북괴의 지령을 받고 대규모 지하조직으로 국가변란을 획책한 인민혁명당"을 잡았다고 발표했다.

두 차례에 걸쳐 300여 명을 이 사건과 관련해 구속했다. 1975년 4월 8일 대법원은 도예종 등 인혁당 관련자 8명에 대한 사형을 확정하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전격 사형을 집행했다. 그러나 2002년 9월 12일 의문사진상규명위는 이 사건은 조작극이었다고 발표했다. 피의자들이 어떤 고문을 받았을까는 고문 기술자 이근안의 예를 보면 미루어 알 수 있다.

그는 '관절뽑기'부터 '볼펜심문'에 이르기까지 각종 고문에 통달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김근태 전 민청련 의장을 고문한 것을 비롯, 1979년 남민전 사건, 1981년 전노련 사건, 1985년 납북어부 김성학씨 간첩조작 사건, 1986년 반제동맹사건 관련 피의자 고문 등으로 유명하다.

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또 어떤가. 1987년 1월 14일, 23세의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이 '민주화추진위원회사건'으로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조사 받던 중 고문으로 숨졌다. 당시 경찰은 "냉수를 몇 컵 마신 후 심문을 시작, 박종철군의 친구의 소재를 묻던 중 갑자기 '억' 소리를 지르면서 쓰러져, 중앙대 부속 병원으로 옮겼으나, 12시경 사망하였다"고 소설같은 말을 했다.

영화에서 최철기의 부탁(협박)을 받은 해동의 장석구가 쓴 방법이 바로 그 흔한(?) 고문이었다는 것은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드러낸 게 아닌가. 쓰레기 하역장으로 데려가 발길질을 비롯 온갖 폭력과 폭언 그리고 돈으로 용의선상에 있는 한 인물을 범인으로 만든다. 지금은 이런 소설이 쓰이고 있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그럼 앞으로는?

돈, 여자, 그랜저, 시계... 이 검은 커넥션의 끝은?

 민주열사 박종철 21주기 추모제에서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가 유족 인사를 하고 있다.(위) 최철기의 부탁을 박은 장석구가 갖은 고문 끝에 통장을 보여주며 범인을 조작하고 있다.(아래)

민주열사 박종철 21주기 추모제에서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가 유족 인사를 하고 있다.(위) 최철기의 부탁을 박은 장석구가 갖은 고문 끝에 통장을 보여주며 범인을 조작하고 있다.(아래) ⓒ 오마이뉴스 윤성효, (주) 필름 트레인


경찰과 검찰의 미묘한 갈등, 최철기와 주양(류승범 분)은 그것을 영화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뒤지기 싫은 경찰 최철기, 자신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되먹지 못한 검사 주양, 이 둘의 갈등은 영화에서 없어서는 안 될 긴장감을 만들어 준다. 그러면서 이들 모두 비법(非法)과 탈법(脫法)과 반법(反法)으로 치달으면서도 자신들이 대한민국의 법질서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이라고 자처한다.

둘 다 든든한(?) 스폰서 한 명씩을 두고 있다. 최철기에게는 해동의 장석구 사장이 있고, 주양에게는 태경의 큰 손 김 회장이 있다. 장석구가 범인을 온갖 협박과 돈으로 매수하는 것처럼, 다시 최철기의 매제를 돈으로 매수한다.

최철기가 장석구와 어쩔 수 없이 얽힌 커넥션이라면, 주양과 김 회장은 좀 더 적극적인 관계다. 터놓고 돈거래를 하고, 터놓고 뇌물을 수수하니까 말이다. 최철기는 달라붙는 장석구에게 전화도 하지 말라고 하지만, 주양은 김회장과 만찬을 즐기며 고급 명품시계를 받고 골프회동을 하는 등 대놓고 스폰서 관계에 매진한다.

이 둘 중 누가 더 나쁜 놈이냐를 따지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그래도 다행스런 것은 이들에겐 여자가 그리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작해야 고급요정의 접대부들이었으니까 말이다. 이름 대면 알만한 고위층들이 연예인을 상대로 하는 성접대 파문이 이는 게 우리의 사회 아닌가.

'그랜저 검사'는 어떤가? 지난 2008년 서울중앙지검에 근무했던 부부장검사가 지인이 고소한 사건의 편의를 봐준 대가로 승용차를 받았다는 의혹인데 결국 검찰은 무혐의처리를 했다. 하지만 계속 되는 의혹 제기에 결국 검찰이 백기를 들었다. 검찰은 강찬우 특임검사를 임명, 검찰이 '그랜저 검사' 의혹에 대해 재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지난 4월 20일 'MBC PD수첩'에 방영된 향응접대와 금품수수 사건은 또 어떤가? 부산의 한 건축업자가 '57명의 전현직 검사에게 지속적인 금전향응, 성상납 등의 스폰서 행위를 해왔다'고 밝힌 문서를 취재진에게 제공하면서 불거졌다. 거론된 인사들은 극구 부인했지만 결국 특별검사를 임명하여 수사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검사 스폰서' 역할을 했다고 폭로한 정모씨(52)가 그를 수사한 검사 전원을 허위공문서 작성과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우롱당하고 기만당한 많은 국민, 진실과 정의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소를 했다며, "고소장을 작성하는 순간에도 검찰이 겁이 나고, 또 어떤 압박을 받을까봐 두려움에 떨고 있다. 죽음을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고 말했다.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이 된 검찰과 경찰의 스폰서들, 그들의 말로가 너무 당연한 길로 가는 것만 빼고는 영화는 우리네 사회의 법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영화와 현실이 별로 구분이 안 갈 정도이다. 아니 결론만 놓고 보면 현실이 더 영화 같다.

영화는 이들의 끝을 너무 정직하게 다룬다. 하지만 이런 검은 커넥션이 그리 시원하게 해결되는 것을 본 적이 없는 게 이 사회이고 보면, 영화보다 더 소설적이고 영화적이고 조작적인 게 우리가 발 적시고 있는 사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부당거래> 감독 류승완, 황정민, 류승범 주연, 제작 (주)필름 트레인, 상영시간 119분, 2010.10.28 개봉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뉴스앤조이, 세종뉴스에도 송고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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