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는 그라운드에 서 있을 때가 가장 멋있고 아름답다. 하지만 세월이라는 벽은 선수들에게 아쉬움을 고하며 그들을 그라운드의 뒤편으로 보낸다.

 

이번 시즌 유난히도 많은 슈퍼스타들이 그라운드를 떠나며 은퇴식을 준비하고 있다. 전성기 시절 한 시대를 풍미하며 녹색의 다이아몬드를 휘저었던 그들이지만 결국 세월이라는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아름다운 퇴장을 준비하고 있다.

 

김종국, 그라운드여 안녕~ 15일 두산과의 경기에 앞서 은퇴식을 치른 김종국이 후배선수들의 행가레를 받으며 15년 선수생활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 김종국, 그라운드여 안녕~ 15일 두산과의 경기에 앞서 은퇴식을 치른 김종국이 후배선수들의 행가레를 받으며 15년 선수생활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 KIA 타이거즈

 

오직 수비하나로만 살아왔다는 말이 나올 만큼 명품수비를 선보이며 국가대표에 까지 뽑혔던 한 남자, 화려한 공격력을 선보이며 그라운드를 휘저었던 스타선수들과는 다르게 오로지 수비하나로만 한 시대를 풍미하며 호랑이굴의 중심이 되었던 '한 남자' 김종국이 15년간의 프로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지도자로서 새로운 길에 들어섰다.

 

15일 두산과 KIA의 경기가 열리기 전 광주 무등경기장에 두 아이와 아내의 손을 잡고 그라운드에 나선 김종국은 팬들에게 선수로서의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며 15년 동안 지켜왔던 2루 베이스에 입맞춤을 하고 베이스를 높이 치켜들며 은퇴에 대한 아쉬움을 달랬다.

 

아마추어시절 공-수-주 삼박자를 겸비하며 국가대표까지 지냈던 김종국은 96년 KIA의 전신인 해태의 1차 지명으로 고향 팀에서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김종국은 입단 첫해부터 주전 2루수 자리를 꿰차며 당대최고의 유격수로 불리었던 이종범과 함께 키스톤 콤비를 이루며 팀을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려놓았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기본기에 충실한 물 샐 틈 없는 수비가 전매특허였던 김종국. 그는 안정된 수비를 바탕으로 타이거즈 2루의 터줏대감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아마추어시절의 공격력을 끝내 프로에서 보여주지 못했다. 그의 성적도 언제나 맨도사라인을 벗어나지 못하며 2할대 초반의 낮은 타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기본기에 충실했던 그의 수비는 빈약한 공격력을 모두 덮을 수 있었고 때로는 3할 타자 이상으로 인정을 받았다. 대표적 예로 김종국은 2005시즌 2할대 초반의 낮은 타율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안정된 수비력 하나를 인정받아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 국가대표에 선발되며 자신의 재능을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하지만 명품수비에도 불구하고 그의 발목을 잡았던 공격력은 2009년 고졸루키 안치홍의 등장과 함께 급격히 빛을 잃기 시작했다. 특히 이번 시즌에는 1군 무대에 단 한경기에도 나서지 못한 채 시즌 중반 3군에 머무르며 후배 선수들을 지도하는 등 사실상 지도자 과정으로 들어섰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물 샐 틈 없었던 수비 그리고 신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전 2루 자리를 꿰차며 해태의 마지막 전성기를 이끌었던 그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그라운드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라운드를 떠나는 뒷모습에는 아쉬움이 가득하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의 명품 수비는 팬들의 가슴에 깊이 남을 것이다.

2010.09.16 08:07 ⓒ 2010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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