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신임 총리가 퍼레이드 도중 폭탄 테러에 의해 암살당한다. 그런데 별다른 증거 없이 주위에 있던 한 시민이 총리 암살범으로 몰린다. 영문도 모른 채 그는 도망을 치게 되고, 언론에서는 벌써 그가 총리 암살범이라며 떠들어댄다. 어리둥절함도 잠시뿐 그는 살기 위해 도망자 생활을 하게 된다. 그렇다. 그는 권력의 음모에 엮여 총리 암살범으로 몰린 것이다.

이어 진실을 찾기 위한 고군분투, 화려한 액션, 화면을 압도하는 스펙터클한 차량 추격 장면 등이 펼쳐지고, 양념처럼 섹시한 이성과의 로맨스도 빠지지 않는다? 할리우드 영화였다면 공식처럼 이렇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 <골든 슬럼버>(나카무라 요시히로 감독, 8월 26일 개봉)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할리우드와는 다른 접근 보여준 <골든 슬럼버>

골든 슬럼버 포스터 할리우드와는 다른 스릴러를 보여준다.

▲ 골든 슬럼버 포스터 할리우드와는 다른 스릴러를 보여준다. ⓒ CJ 엔터테인먼트

이 영화는 '거대 권력의 음모에 빠져 쫓기는 착한 시민'이라는 설정을 가져왔으나, 전혀 다른 문법을 창조해 내는 미덕을 보여 준다. 혹여 어떤 관객은 할리우드처럼 화려한 스펙터클을 보여 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음모 스릴러를 휴먼드라마로 바꾸는 재치와 새로움을 보여주며, 할리우드의 스펙터클보다 더욱 소중한 감동을 낳는다.

총리 암살법으로 몰려 뜻하지 않게 도망자가 된 주인공 아오야기는 혼자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그다지 똑똑하지도 운동 신경이 뛰어나지도 않다. 그는 늘 누군가의 도움으로 도망친다. 그가 도망치는 모습을 보면 어떤 때는 '찌질'하기까지 하다.

도망 다니는 모습만이 아니라, 영화를 결말짓는 방식도 다르다. 주인공은 영웅적인 노력으로 공권력의 음모를 만천하에 밝혀내거나 하지 못한다.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주인공은 자신의 모습을 숨긴 채 살아간다(그렇다고 이 영화가 비극으로 치닫는 것은 아니다).

이미지로 만들어지는 세상

주인공 아오야기는 성실하게 살아온 택배 기사다. 한때 택배 물건을 전하는 과정에 강도를 만난 아이돌 스타를 구해 언론에서 유명인이 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의 삶은 유명인이나 스타, 영웅과는 거리가 멀고 소박할 뿐이다.

어느날 그는 친구와 낚시를 가기로 한다. 그런데 친구는 낚시는 가지 않고 신임 총리의 퍼레이드가 펼쳐지는 도로 근처에 머문다. 이내 퍼레이드에서 총리가 폭탄 테러에 의해 암살되고, 친구는 주인공에게 음모에 빠졌다고 털어놓는다. 그리고 어떻게 알았는지 경찰이 의심스런 눈길로 총구를 겨누며 그에게 다가온다.

쫓기는 아오야기 영문도 모른 채 쫓기는 주인공의 모습

▲ 쫓기는 아오야기 영문도 모른 채 쫓기는 주인공의 모습 ⓒ 골든 슬럼버


주인공이 탄 차량에는 이미 폭탄이 장착되어 있었다. 차가 폭파되기 직전 친구는 "모든 것은 이미지"라는 힌트를 주며, 주인공에게 도망치라고 말한다. 이렇게 주인공은 차량과 함께 폭발의 화염에 싸인 친구를 뒤로 하고 영문도 모른 채 쫓기게 된다.

그는 순식간에 총리 암살범으로 지목되고, 언론은 아이돌 스타를 구해낸 영웅으로 포장할 때와는 전혀 다른 태도로 그를 범죄자로 몰아간다. 목격자, 증거 영상, 그리고 심지어 그의 과거가 전부 그를 암살범으로 몰아가는 증거가 되어 버린다. 그리고 총리 암살에 연루되어 있을 경찰은 체포가 아닌 사살을 목적으로 그를 쫓아온다.

"인간의 최후의 무기는 신뢰"

이제 주인공은 '이미지 이면의 진실'을 찾아 나서게 된다. 이미지 이면의 진실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진실한 인간관계다. 이 영화에서 특별한 점은, 도망치는 주인공이 극단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언제나 그의 곁에는 그를 돕는 친구들이 나타난다.

그의 친구들과 부모, 회사 동료는 언론에서 그에 대해 아무리 나쁜 이미지를 내보내도 그를 신뢰한다. 나아가 어리숙한 우리의 주인공은 새로 만나는 사람과도 신뢰 관계를 맺는다. 심지어 '묻지마 연쇄 살인범'마저도!

주인공을 도와주기 위해 특별히 노력하는 것은 그의 옛 친구들이다. 영화는 쫓기는 주인공의 스릴을 그리는 만큼 우정의 추억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주인공이 궁지에 몰렸다가 탈출하는 순간, 즉 긴장이 최고조로 올라가는 순간에 특별했던 우정의 순간을 재현하기도 한다.

즉 가짜 맨홀 뚜껑을 밀치고 하늘 높이 올라가 아름답게 터지는 불꽃과 주인공이 대학 시절 같은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만든 불꽃놀이의 추억이 겹치는 장면이 그렇다. 이는 진정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불꽃놀이의 추억 이 영화는 도망자의 스릴 넘치는 장면과 함께 애인과 후배들과 함께 불꽃놀이를 준비했던 주인공의 대학 시절의 우정을 보여 준다.

▲ 불꽃놀이의 추억 이 영화는 도망자의 스릴 넘치는 장면과 함께 애인과 후배들과 함께 불꽃놀이를 준비했던 주인공의 대학 시절의 우정을 보여 준다. ⓒ CJ 엔터테인먼트


결국, <골든 슬럼버>는 이미지가 모든 것인 세상에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진실한 우정의 가치를 그린 영화이다. 또 이 영화는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날 방법이 무엇인지 묻고 있기도 하다. 그건 바로 진실한 인간관계라고 말한다.

암울한 상황마저 따뜻함과 웃음으로 밝게 그려

영화의 마지막까지도 주인공은 여전히 숨어 사는 삶을 계속한다. 그런데 이 영화가 그리는 결말이 그다지 슬퍼 보이지는 않는다. 그것은 이 영화가 따뜻함과 유머로 무장해 있기 때문이다. 때로 스릴 있는 장면에서 종종 재치 있는 '큰 웃음'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총리 암살범으로 쫓기는 극단의 상황에서도, '골든 슬럼버'라는 비틀즈의 음악처럼 주인공과 친구들은 마음속으로 다시 화합하는 따뜻한 장면을 연출한다.

한편 이 영화는 치밀한 구성보다는 우연에 의존하기도 해 설득력이 떨어지는 면이 없지는 않다. 약간의 아쉬움은 있지만 <골든 슬럼버>는 주변의 인간관계를 돌아보게 만드는 아름다운 영화다.

골든 슬럼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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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2002년, 오마이뉴스 2.22상 수상 2003~2004년, 클럽기자 활동 2008~2016년 3월, 출판 편집자. 2017년 5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자유기고가. tmfprlansgh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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