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스틸컷

▲ 아저씨 스틸컷 ⓒ 오퍼스 픽쳐스


개인적으로 배우 원빈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카리스마 부족이다. 여기에다 출연한 영화에서 원톱주연으로 나선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배우란 인식 역시 강했다. 동시대에 그와 같이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꽃미남배우 장동건, 정우성, 이병헌, 강동원 등과 비교해보면 이런 생각은 더욱더 원빈이란 배우에 대한 선입견으로 굳어지게 된 것 역시 사실이다.

분명 이런 선입견은 그냥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가 출연했던 영화들을 떠올려 보면 원톱 주연으로 스스로 뭔가 해 놓은 것이 없다. <킬러들의 수다>(2001년), <태극기 휘날리며>(2003년), <우리 형>(2004년), <마더>(2009년) 등 대부분의 작품에서 공동주연 혹은 주연급 조연으로 나온 경우다. 원빈은 출연한 작품에서 함께 나온 주연배우들의 연기를 더욱더 살려주는 조연 같은 주연 이미지가 강했다. 영화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와 성과는 항상 뭔가 부족한 배우란 생각을 더 굳어지게 만들었다.

원빈은 1997년 드라마 <프로포즈>로 데뷔하였다. 이후 <레디고>란 드라마에 나오긴 했지만 그의 이름을 확실히 대중에게 알린 것은 아니었다. 원빈이란 이름을 많은 대중들이 인지하게 만들어준 드라마는 <광끼>(1999년)였다. 당시 이 드라마에는 원빈뿐만 아니라 지금 톱스타로 활동하고 있는 배우 이동건, 최강희, 배두나, 양동근, 고수, 박예진 등이 함께 출연해 스타 드라마의 산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원빈은 <광끼>를 통해 청춘스타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런 그가 완전한 청춘스타로 거듭나게 된 것은 <가을 동화>(2000년)를 통해서였다. 이 작품에서 송혜교, 송승헌과 함께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가을 동화>는 송승헌과 원빈이 일본에서 한류스타가 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준 작품. 사실 이 당시만 해도 원빈이란 배우가 연기자로서 가능성이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은 적이 있다. 하지만 <가을 동화> 이후 나온 드라마 한편으로 이런 의문점은 모두 없어진다.

개인적으로 원빈이 주연으로 나왔던 영화, 드라마 중에 가장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작품은 바로 TV드라마 <꼭지>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을 통해 그가 단순히 겉멋만 든 청춘스타가 아님을 확인했다. 당시 비슷한 시기에 출발한 청춘스타들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파격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특히 전작 <가을 동화>가 엄청난 인기를 얻었기 때문에 <꼭지>의 송명태 역은 정말 의외의 선택이었다. 강렬하고 거친 이미지 그리고 서민적인 연기를 통해 단순히 얼굴만 잘생긴 배우가 아니라 연기자로서 충분히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문제는 TV드라마 <꼭지>에서 보여주었던 절정의 연기가 영화로 넘어오면서 크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 개인적으로 원빈이 TV드라마에서 조금 더 확실한 역할을 맡은 후 영화로 넘어갔으면 좋았단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TV드라마 <꼭지>의 송명태는 어디로 사라졌나?

마더 스틸컷

▲ 마더 스틸컷 ⓒ 바른손㈜영화사업본부


TV드라마 <꼭지> 이후 연기자로서 계속 성장할 줄 알았던 원빈은 사실상 배우로서의 성장이 멈추었다. 그가 출연했던 영화 <킬러들의 수다>(2001년), <태극기 휘날리며>(2003년), <우리 형>(2004년), <마더>(2009년)등은 대부분 흥행면에서 준수한 성적을 남겼다. 하지만 연기자로서 확실하게 이미지를 공고히 만들어준 작품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다른 배우들이 원빈보다 더 조명 받는 경우가 많았다.

<킬러들의 수다> 같은 경우에는 신현준, 정재영, 신하균이, <태극기 휘날리며>는 장동건과 공형진이, <우리 형>은 신하균과 김해숙이, 군 제대 후 첫 출연작인 <마더>는 실제 김혜자씨가 영화 전반을 지배한 작품이었다. 원빈이 연기를 못한 것은 아니지만 극중에서 영화 전체를 지배한 캐릭터를 만들어 내거나, 모든 사람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정도의 연기를 보여준 적은 없었다. 결국 TV드라마 <꼭지>에서 보여준 송명태는 영화에서 완전히 실종되고 말았다.

이런 현실 때문에 원빈이 배우로서 가지고 있는 가치에 대해 점점 더 낮게 평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는 결단코 혼자서 뭔가를 이룰 수 없는 배우, 다른 배우들이 받쳐주지 않으면 흥행 역시 할 수 없는 배우란 생각들이 시간을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굳어져 갔다. <꼭지>에서 보여준 송명태를 생각한다면 그는 배우로서 충분히 더 성장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지난 몇 년간 멈춘 상태로 제자리걸음만 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 원빈에 대한 시선을 바꿀 때가 온 것 같다. 그가 원톱으로 주연을 맡은 영화 <아저씨>때문이다. 이 작품을 통해 오랜만에 TV드라마 <꼭지>에서 보여준 송명태를 생각나게 만들었다. 그가 단순히 다른 주연배우들을 빛나게 해주는 주연이 아니라 혼자서도 충분히 영화를 이끌어갈 수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가 연기자로서 발전할 수 있는 배우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아저씨>의 차태식, 원빈을 새롭게 만들다

아저씨 스틸컷

▲ 아저씨 스틸컷 ⓒ 오퍼스 픽쳐스


원빈이 처음으로 원톱 주연을 맡은 <아저씨>는 개인적으로 걱정이 더 큰 작품이었다. 이전 그가 영화에서 보여준 연기와 캐릭터 그리고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과연 이런 선 굵은액션영화에서 맡은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이건 정말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원빈은 이 작품을 통해 완벽하게 새롭게 태어났다고 해도 될 것 같다. 그만큼 그가 보여준 차태식이란 인물 자체가 강렬하단 것이다.

차태식은 상당히 어두운 인물이다. 불행한 사고로 아내를 잃고 혼자서 전당포를 운영하면서 살아간다. 전직 특수요원이란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패쇄적인 인물이다. 이런 그가 다시 세상에 뛰어들면서 자신의 분노와 상처를 내보이게 되는 것은 소미(김새론)란 소녀를 만나면서부터다. 좁고 어두운 전당포에서 모든 것에 대한 희망을 잃고 살아가는 인물이 극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원빈은 차택식이란 인물을 기존 자신이 가지고 있던 틀을 벗어나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있다. 특히 세상에 대한 분노와 감정을 감추면서 전당포에서 외로이 살아가는 차태식과 자신의 분노를 세상에 보이는 순간에 나타나는 차태식은 다른 인물처럼 보일 정도다. 이런 그의 연기는 영화 스토리 전개에 약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그 약점을 매워주는 큰 힘이 되고 있다. 원빈이 원톱 영화에서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있단 의미다. 그는 분명 <아저씨>에서 기대치를 훨씬 웃도는 연기력을 보여줬다.

이전 작품들과 달리 상당히 강렬한 역할, 거기에다 이번엔 다른 배우들의 도움 없이 자신이 영화를 이끌고 가야한다는 점, 캐릭터 역시 어둡고 극단적인 인물이란 점을 감안하면, 모든 요소들이 이전 작품과 비교했을 때 원빈에게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원빈이 앞으로 영화배우로서 어떤 길을 걸어 갈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잣대가 되는 작품이었다. 그는 이런 기회를 훌륭하게 살려내었다. 충분히 합격점을 줄 수 있는 연기를 보여준 것이다.

<아저씨>에서 보여준 차태식이란 인물 캐릭터에 대한 배우로서의 분석이 그만큼 뛰어나단 이야기다. 지난 몇 년간 연기자로서 정체되어왔던 자신의 이미지를 한 번에 날려버릴 수 있을 정도다. 여기에다 이제 원빈이 원톱으로 영화를 이끌어 갈 수 있음을 확인한 것 역시 큰 수확이다. <아저씨>가 어떤 흥행기록을 남기던 배우 원빈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준 것은 틀림없다. 그동안 그가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이미지 역시 완전히 일소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원빈은 차태식이란 캐릭터를 통해 제2의 연기 인생을 열었단 평가를 해도 될 것 같다. 그가 다음 작품에서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지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http://www.moviejo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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