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허벅지들> 겉그림

<국가대표 허벅지들> 겉그림 ⓒ 포럼

박지성, 박주영, 이청용, 차두리, 이영표 등 남아공 월드컵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들 덕분에 보름 동안 참 많이 행복했다. 길거리 응원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대한민국 대부분 사람들처럼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며 마음 졸였고, 멋진 골에 환호하면서 다음 경기를 무척 기다렸던 보름이었다.

 

사실, 동네 축구도 전혀 해본 적 없는 아줌마인지라 경기를 보는 것도 다소 무식한 편이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은 물론 국가 간 경기도 많이 알려진 선수들의 움직임에 따라 골을 넣느냐 마느냐, 어떻게 막아 내느냐만 우선 보고 평가하곤 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 경기는 이전과 달리 좀 특별하게 봤다. 또한 아는 척도 제법 했다.

 

"정성룡이 23살에 미스코리아와 결혼했다네. 어렸을 때 혼자가 된 어머니 때문이라지?"

"그거 알아? 박지성의 연봉을 하루 일당으로 계산하면 2천만 원 정도인 거? 그러니까 하루에 2천만 원씩 버는 거야."

"차두리가 옛날에는 공격수였는데 수비수로 바꾸고서야 제 포지션을 찾았다고 할 정도로 눈부시게 발전했다며?"

"옛날에 말이야. 히딩크 감독이 김남일을 뽑고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을 찾았다'고 말했다네. 그걸 입증이라도 하듯 2002년에 김남일이 빠진 독일전과 터키전만 우리가 졌잖아."

 

이와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지만 말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는 말도 있다. 이처럼 국가대표 선수들의 시시콜콜한 것들을 조금 알게 되니까 주로 멋진 슛을 쏘던 선수와 골키퍼만 보이던 예전과 달리 나머지 선수들의 면면이 눈에 속속 들어왔다.

 

내게 이런 눈을 뜨게 한 것은 <국가대표 허벅지들>(엄윤숙 저, 포럼 펴냄)이란 책이다. 특별한 축구 감상문이다. 2010 남아공 월드컵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들, 월드컵 혹은 올림픽과 같은 큼직큼직한 국제경기에서 '화제'의 주인공이 된 '스타 축구선수들의 사생활'을 다뤘다고 할까.

 

박지성은 국가대표팀의 주장이다. 시간은 막내를 주전을 넘어 주장이 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간다고 해서 모두가 그런 순서를 밟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리더십은 수평적인 리더십이라고 말해진다. 있지도 않는 권위로 사람을 괴롭히지 않는 것이 그의 장점이다. 박지성이 입 아프게 말하지 않아도 모두들 그의 말을 잘 따른다. 자신이 목표로 하는 최고의 길을 이미 걷고 있는 살아있는 견본이기 때문이다. 후배들은 박지성처럼 되고 싶기에 그의 조언에 기꺼이 귀를 기울인다.

 

주장은 선수와 감독이라는 서로 다른 세계의 언어를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주장은 통로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메시지를 옮기고 설명해야 한다. 팀의 전략상 중요한 선수를 교육시키고, 경기장의 분위기를 벤치에 전달한다. 주장은 완충장치다. 선수와 감독의 불안과 두려움이 서로 다른 쪽에 전달될 때 신중한 방식을 취하도록 돕는다.

- '캡틴 박지성' 편에서

 

'밥줘용' 박주영, 뼈정우, 계란 정수... 축구선수를 통해 축구를 보다

 

스타 축구선수들의 사생활을 다룬 책이라? 이렇게 말하니 혹여 남아공 월드컵이라는 분위기에 편승, 적당히 짜깁기한 책일지도 모른다는 선입견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절대 아니다. 이처럼 박지성의 지난날과 2010 남아공 월드컵 우리나라 대표팀 주장인 박지성을 나름 진지하게 들려주기 때문이다.

 

남아공 월드컵 16강 진출을 위한 세 경기 모두 출전해 경기 시작부터 경기 끝날 때까지 왕성하게 뛰었던 박주영, 첫 골을 기록해 승리의 분위기를 이끌었던 이정수, 26일 밤의 우루과이 전에서 박주영을 원톱으로 박지성, 이청용, 김재성, 기성용 등과 함께 허리를 맡아 파상 공세를 펼친 김정우의 별명 등에 관한 이야기들도 시시콜콜한 재미를 준다.

 

박주영의 한때 별명은 '밥줘용'이었단다. 수비를 하다가 픽픽 쓰러지는 걸 보고 밥 좀 더 먹고 힘내라는 굴욕적인 별명이란다. 몸싸움을 하는 상대선수가 도리어 머쓱해하고 미안해질 만큼 바짝 마른 김정우의 별명은 뼈정우, 출전하지 못한 이정수가 벤치에 앉아 삶은 계란을 까먹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계란 정수', 차두리는 워낙 말이 많아 '라디오'라나.

 

차두리는 한국서 둘째로 멋지게 웃는 남자다. 그의 웃음은 보는 사람을 무장해제 시킨다. 무표정하게 가만히 있으면 우직하고 듬직해 보이고, 조금만 표정을 우그러뜨려도 헐크 같이 거칠고 우락부락해 보이는 남자다. 하지만 그는 늘 아이처럼 순진하게 웃는다. 나는 특히 2002년 월드컵 때 차두리가 태극기를 머릿수건처럼 쓰고 하얀 이를 아래위로 18개씩 내보이며 웃던 모습을 좋아한다…그런데 차두리의 웃음은 조금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그냥 행복한 얼굴이다. 그것은 한생명의 아주 맑고 진한 웃음이었다. 국운이 걸린 장엄한 중대사라는(필자주:한일 월드컵 승리 관련) 경직된 이미지를 벗고, 그냥 신나는 공놀이였다고 말하는 듯한 허를 찌르는 웃음이었다.

 

'나에게 축구는 생활이 아니라 밀리면 끝나는 전투였던 것 같다. 그런데 아들 두리는 확실히 다르다. 축구는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생활인 것 같다. 축구를 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좋은…' 아버지가 말하는 아들의 모습이다. 최고에 대한 강박으로 전쟁하듯이 축구를 했던 자신보다는, 동료를 사랑하고 축구를 즐기는 생활인 차두리가 더 행복해 보인다는 것이다.

- '대한민국 대표 떡대 차두리' 편에서

 

이 부분을 읽으며 2002년 월드컵 때의 차두리의 순진무구한-어떤 사람들은 그때 철딱서니 없는 웃음이라고 혹평하기도 했지만-웃음이 떠올라 그 순간 기분이 환해졌다. 나 역시 저자처럼 2002년에 차두리의 웃음에 어떻게 정의할 수 없는, 대책 없이 기분 좋아짐을 듬뿍 느꼈기에 말이다.

 

<국가대표 허벅지들>은 우리들이 이미 잊고 있었던 축구선수들의 지난날을 돌아보게 하고 현재를 좀 더 깊이 바라보게 한다. 동시에 기분 좋게 하며 축구와 국가대표 선수들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것처럼 으스대며 아는 체 할 수 있게 만든다.

 

허정무 감독은 염기훈에게 특별한 것을 주문했다. 염기훈의 장점이었던 빠른 움직임을 다시 찾기 위해서 허정무 감독은 염기훈에게 줄넘기를 시켰다고 한다. 일명 '줄넘기 특훈'. 특별한 훈련이라는 것은 비싼 운동기구와 유명한 운동 코치를 모시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선수 개개인에게 얼마나 적합한 것인지가 중요하다. 선수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꼭 알맞은 처방이 특별한 것이다.

- '왼발의 달인 '염기훈' 편에서

 

저자의 '이 글을 왜 썼는가?'중에서

월드컵은 4년마다 지구에 들끓는 전염병이고, 돌림병이고, 유행병이다. 나에게 골프는 박세리이며, 피겨는 김연아이듯이 축구는 박지성이고 월드컵이다.

 

월드컵은 하나의 종목으로 한달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 동안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누구와 만나 이야기해도 재미있는 소재는 생각만큼 그렇게 흔하지 않다. 공감대가 큰 것이 월드컵 축구의 매력이고 장점이다.

 

나 또한 월드컵의 열기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에서 이 글을 썼다. 정치·사회·경제·스포츠…모든 부분에서 소외되고 스스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에 익숙한 아줌마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최소한 내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의 소용돌이는 정리정돈하고 싶었다. 내가 가진 호감과 호기심을 뻔뻔하고 당당하게 풀어놓고 싶었다.

 

이 책은 나의 솔직하고 성실한 축구 감상문이다. 새로운 형태의 축구 관람기이다. 남자는 축구를 보고 여자는 축구선수를 본다는 말이 있다. 나는 축구선수를 통해 축구를 보고 싶었고, 가능하다면 축구를 통해 나와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이 책은 내가 가지고 있던 기억과, 내가 알게 된 것에 대한 기록과, 내가 여전히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고백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시시콜콜, 별 중요하지도 않는 이야기들만 들려주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을 것 같은 수많은 일화들과, 한 선수가 국가대표 선수가 되기까지의 과정이나 노력, 지난날의 좌절 등을 다양하게 들려줌으로써 그 선수의 진면목을 보게 한다.

 

책에도 모습 혹은 얼굴, 그리고 성격이 있다. 누가 이 책의 얼굴을 말하라면 '유쾌하고 진지한 수다를 잘 떨고 카멜레온처럼 수많은 표정을 가진 책'이라고 말해주리라. 이 책은 남아공 월드컵 국가대표 선수 외 이천수와 설기현 선수 등 다른 많은 이야기들도 담고 있다.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책속 주인공들은 숱한 신화와 화제로 대한민국 사람들은 물론 수많은 세계인들을 놀라게 했다. 해외 원정 사상 첫 16강 진출이라는 역사를 온몸으로 쓴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들을 책을 통해 만나고 기념하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된다.

덧붙이는 글 | 국가대표 허벅지들|엄윤숙 씀|포럼 2010.6.1 출간|11000

2010.06.28 11:05 ⓒ 2011 OhmyNews
덧붙이는 글 국가대표 허벅지들|엄윤숙 씀|포럼 2010.6.1 출간|11000
남아공 월드컵 2010 월드컵 부부젤라 16강 양박쌍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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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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