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태릉선수촌에 입촌 중이던 유도선수 추성훈은 긴 고민 끝에 일본 귀화를 결심했다. 일본 내의 차별을 견디며 4대를 이어 온 한국인의 국적을 버리고 일본인의 길을 택하는 순간이었다. 한국에서는 대표선수로 출전할 기회를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한국에서 재일교포 4세라는 이유로 수많은 텃세와 마음 고생을 겪어야 했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는 한국 선수들을 상대로 월등한 실력 차를 보여줬음에도, 매번 석연치 않은 판정에 좌절하며 끝내 태극마크를 달 수 없었다. 추성훈은 이에 대해 자신의 책인 <두 개의 혼>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나는 결국 선수촌에서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올림픽이 아닌 다른 대회에는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할 수 있지만, 한국에 용인대학교 학벌 편중주의가 존재하는 이상 내가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 할지라도 올림픽에는 나갈 수 없는 현실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

추성훈은 이후 예능 프로인 <무릎팍 도사>에 출연하여 파벌로 인해 실력 있는 선수가 태극 마크를 못 다는 일이 허다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추성훈 한국 유도계의 파벌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MBC 화면 캡쳐.

▲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추성훈 한국 유도계의 파벌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MBC 화면 캡쳐. ⓒ MBC


사실, 한국 스포츠에서 파벌 다툼으로 인해 여러 불합리한 일들이 생긴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번 올림픽에서 쇼트 트랙팀의 성적이 금메달 2, 은 4, 동 2개를 따는 데 그친 것도 그 속내를 보면 내부의 파벌 싸움이 원인인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토리노 올림픽 남녀 쇼트트랙에서 각각 3관왕에 올랐던 '에이스' 안현수와 진선유가 이상한 대표팀의 선발 방식으로 인해 이번 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했던 것이다. 올림픽 전, 협회는 작년 5월에 있을 예정이던 국가대표 선발전을 4월로 앞당기고, 원래 2번이던 선발전을 단 한 번으로 축소시켰다. 이는 성남 시청에 입단하는 과정에서 미운 털이 박힌 안현수를 배제하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대표 선수 선발전 당시 안현수는 부상 회복 중이었고, 결국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없었다.

문제는 그 당시 세계 선수권 대회의 후유증으로 정은주, 진선유, 노아름, 신새봄 등 우리나라 1급 여자 선수들마저 부상 중이었다는 점이다. 원래 하던 대로 작년11월에 국가 대표 선발전을 했다면 충분히 포함되었을 최고 선수들인데, 부상 후유증으로 제 기량을 발휘 못 하고 탈락한 것이다. 결국 이들을 빼고 간 쇼트 트랙팀은 지난 토리노 동계 올림픽 때보다 금메달 개수만 4개나 줄어 든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 들어야 했다.

이런 파벌 문제를 한국인만 지적하는 것도 아니다. 일찍이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던 히딩크 감독은 자신의 자서전 <마이웨이>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사실 내가 처음 왔을 때 선수 선발과 관련해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수 선발은 감독이 최종 책임을 지는 일이다. 그런데 주변에서 "이 선수는 어떠냐, 저 선수는 어떠냐" 하며 은근히 알력을 넣었다. 누구를 선발했느냐고 묻기에 선수들 이름을 나열했더니, 이 선수는 뭐가 단점이고 저 선수는 이래서 안 된다는 둥 말이 많았다. 누구는 왜 넣었고 누구는 왜 뺐느냐는 질문도 잇달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보니 예전엔 개인적 인연에 따라 선수를 선발했던 것 같다는 인상이 들었다……축구협회 관계자들은 어떤 선수를 선발하느냐고 집요하게 물었다. 자기네가 직접 언론에 발표하겠다는 말도 했다. 선수 선발은 감독이 직접 하는 것이니 내가 책임지고 직접 발표하겠다고 했더니 그들은 당황했다. 그러자 축구협회 관계자는 그렇다면 발표 시간을 늦춰달라고 했다. 오후에 회의를 갖겠다는 것이다."

자기 소신 대로 선수를 선발한 히딩크는 4강이라는 위업을 이루었음에도, 결국 한국 축구협회와 재계약하지 못하고 떠나야만 했다. 그 스스로 재계약을 원했지만, 협회가 소신대로 행동하는 그와의 재계약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떠나기 전 인터뷰에서 "가지 말라고 하는데 뿌리칠 만큼 전 냉혹한 사람이 아닙니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1998 월드컵 때의 차범근 감독 역시 자기 소신껏 선수를 선발하려다 협회와 갈등 관계와 빠졌던 케이스이다. 심지어 차 감독은 TV 인터뷰에서 선수 선발은 감독 고유의 권한이다 라는 말까지 할 정도였다. 결국 이로 인해 협회에 미운 털이 박힌 차 감독은 월드컵 개최 도중 경질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어야 했다. 당시 외국 언론과 AFC, 해외 축구팬들조차 협회의 이런 행동을 비난할 정도였다.

히딩크의 자서전 [마이웨이] 한국 축구의 인맥과 파벌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 히딩크의 자서전 [마이웨이] 한국 축구의 인맥과 파벌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 조선일보사

문제는 스포츠계의 이런 인맥과 파벌 정치가 꾸준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데에 있다. 축구 대표팀을 한 번 살펴보자.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허정무 감독 체제하의 대표팀은 상당히 이상한 선수 선발 행태를 보이고 있다.

무릇 한 나라의 대표팀 선수라 하면 가장 실력 있는 선수를 뽑아야 함에도 몇몇 선수들의 선발은 도대체 기준이 무엇인지 의심되는 부분이 많다. 특히, 조용형과 강민수 선수는 지난 2년간 소속팀인 제주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 했음에도 국가 대표팀의 중심 수비수로 꾸준히 기용되고 있다. 이들이 주전 센터백으로 활약한 제주 유나이티드는 작년 K리그 15팀 중 14위를 차지했고 44실점으로 리그 실점 3위에 올랐다. 특히 작년 포항과의 경기에선 1:8 대패의 기록까지 가지고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E1ZhyE9ux2A).

그들은 이번 동아시아 대회에서도 여러 차례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범했다. 이들이 대표팀의 주축수비수로 있는 동안 한국 대표팀은 '자동문' 수비라는 오명을 써야 했고 중국팀에 패배를 당하기도 했다. 도대체가 의문이 가는 점은 왜 K리그의 수많은 팀 중에 하필이면 하위권 팀의, 그것도 수비 실수를 세 번째로 많이 저지른 선수들을 중용하는 것일까 하는 점이다. 다른 상위권의 팀에서는 이들보다 좋은 수비수들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작년 AFC 챔스리그에서 우승한 수비 멤버들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기막히게도 웃긴 사실은 강민수가 허정무 감독의 전남 드래곤즈 재직 시절 제자이며, 조용형도 정해성 대표팀 코치의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 시절 제자라는 점이다. 이게 과연 우연에 불과한 일일까? 동아 대회 경기 후 중국의 가오홍보 감독은 "나는 중국 감독이기 때문에 한국 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하지만 한국 수비진은 많은 개선이 필요해 보였다"고 평가했다. 심지어 이웃 나라의 적장까지 지적하는 한국팀의 약점에 대해 코칭 스태프는 정말로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알면서도 자신의 인맥을 기용하기 위해 눈 감고 무시하고 가는 것일까?

문제는 이러한 파벌, 인맥의 폐해가 스포츠 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잘 살펴보면 정치판, 경제계, 문화 예술계, 군대, 심지어 종교계까지 어느 곳 하나 인맥과 줄, 학연과 파벌 싸움에 멍들지 않은 곳이 없다. 스포츠에서건 일반 사회에서건 최고로 실력 있는 사람이 기용되어야 하며, 그것이 이루어 질 수 있는 사회 구조가 만들어져야 발전이 이루어진다.

연줄과 학연, 인맥으로 실력 없는 사람을 뽑아놓고 최고의 성적을 거두기를 기대하는 것은 엄청난 착각이다. 최고의 선수를 기용하지 않아 금메달 여러 개를 놓친 쇼트 트랙팀의 뼈아픈 실수를 축구 협회는 반면 교사 삼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 축구의 16강행 역시 장담할 수 없는 비관적인 것이 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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