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좋아하는 사람이나 그런 사람을 가족으로 둔 사람들 모두가 불만이 많다. 조기축구회의 열성회원인 어떤 이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시합이 끝난 다음 막걸리 한 잔 하다가 숙직 선생님께 곤욕을 치른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그의 부인은 휴일만 되면 아이들을 모두 제쳐 놓고 새벽부터 없어져버리는 축구광 남편이 밉기만 하다. 축구하는 남편은 남편대로 생활체육이 편치 않고 아내 역시 아내대로 편치가 않다. 삶을 풍요롭게 해줘야 할 생활체육이 이런 식이라면 부부싸움의 원인제공자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실 공원과 운동장과 클럽하우스가 어우러진 공간만 있다면 금방 해결될 일이다. 남편은 축구 시합, 아이는 축구교실, 아내는 폭신한 잔디 광장에 앉아 남편과 아이의 건강한 몸놀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하다. 시합이 끝나고 클럽하우스에 모인 여러 가족들은 막걸리뿐 아니라 집에서 가져온 푸짐한 간식을 곁들이며 한바탕 파티를 연다. 불행과 행복의 이 엄청난 차이가 빗나간 생활체육 정책과 어설픈 집행 탓이라면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국가가 체육에 쏟아 부은 천문학적 숫자의 돈을 생각하면 억울하기까지 하다.

회장, 사무국장님들이 조소의 대상이 되어서야

우리는 이런 장면을 생활 곳곳에서 쉽게 접하게 된다. 어느 부부는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동네 산기슭에 만들어진 배드민턴장에 채를 들고 찾아갔다가 운동은커녕 그곳 터줏대감들의 냉대로 휴일 기분을 잡쳐버리고 만다.

시군마다 세워진 종합운동장들은 한 달에 몇 번밖에 사용되지 않는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시민들은 종합운동장을 어찌 이용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반면, 일부 시군에서는 그곳에 반공**, 새마을** 하는 단체들을 입주시켜 시민들의 원성을 사기도 한다. **시 체육회, 생활체육회, **시 **연맹 등 체육단체들이 지역마다 있지만 무엇을 하는 기관인지 시민들은 알지 못한다. 시장이 신세진 사람을 회장이나 사무국장에 앉힌 체육단체들은 시민들의 조소의 대상이 되기조차 한다.

물론 축구동호회나 사회인 야구단들 가운데 생활체육을 정말 잘 실천하고 있는 곳들도 많다. 일부 자자체는 생활체육 시설의 확충에 심혈을 기울이기도 한다. 중앙정부 역시 각종 스포츠클럽을 육성해야 한다며 시범사업을 하느라 분주하다. 하지만 아직 우리가 체감하는 생활체육은 한마디로 '남의 이야기'이거나 '불만투성이'다.

 국민생활체육회 주최 국민생활체육제전

국민생활체육회 주최 국민생활체육제전 ⓒ 생활정치연구소


복지로서의 생활체육을 시작하자

왜 이럴까? 여러 이유들이 복합되어 있지만 '복지로서의 생활체육'이 정착되어 있지 못한데서 원인을 찾을 필요가 있다. 복지의 관점에서 생활체육을 보면 종합운동장보다는 자연친화형 복합체육공원과 클럽하우스가 보일 것이고, 선심성 지원금보다는 생활체육 매니저의 배치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 스포츠보다는 가족의 운동과 놀이를 중시하는 문화를 이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주민들의 의식 속에서는 생활체육이 복지의 하나인지 오래이다. 올림픽이나 체전 때만 반짝하는 체육정책 덕분에 주민들은 체육 복지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채 자기 돈 내고 더구나 가족들의 온갖 비난을 받아가며 운동을 한다. 복지로서의 생활체육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주말이나 야간에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운동 공간이 필수적이다. 또 운동을 배우거나 경기를 진행하는 등의 프로그램이 있어야 하며 이를 리드할 전문인이 있어야 한다. 자치적인 운동모임을 운영할 수 있는 클럽 하우스 역시 필수적이다.

종합운동장을 복합체육공원으로

생활체육 복지를 잘 하려면 시군 단위에 한두 개 정도 규모 있는 복합체육공원이 있는 것이 좋다. 모두 예산이 없다고 볼멘소리를 하지만 이미 지어 놓은 종합운동장을 개조하면 큰 예산 없이도 일을 시작해볼 만하다. 지방의 종합운동장 가운데는 주변 부지를 넓게 확보하고 있는 곳도 꽤 된다. 주차장이나 공터로 남아있는 이 공간들에 공원녹지를 조성하고 콘크리트로 지어진 관중석 공간을 과감하게 허물어 흉물스런 '권위적 공간'을 일소할 수 있다. 또 경기시설 주변에 작은 클럽하우스들을 지어 클럽연합체들에게 제공한다면 멋진 생활체육의 장이 만들어질 것이다.

또 초등학교의 운동장과 실내체육관을 이용하면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소규모 지역단위에서 이용할 체육문화공간을 조성할 수 있다. 사실 축구나 야구가 가능한 큰 운동장이 모든 초등학교에 있을 필요는 없다. 그 대신 풋살 경기장을 두 개쯤 만들고 나머지 공간에 기타 운동시설과 녹지를 조성한다면 실내체육관과 더불어 근사한 생활체육의 장을 만들 수가 있다. 학생들이 귀가한 늦은 오후와 야간에 이 공간을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교실 일부를 클럽하우스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면 가족단위의 생활체육을 활성화하는 데 안성맞춤이다.

 거의 모든 시군구에 있는 종합운동장은 지방자치단체별로 효율적으로 이용되고 있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거의 모든 시군구에 있는 종합운동장은 지방자치단체별로 효율적으로 이용되고 있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 생활정치연구소


문화체육복지사 제도을 도입하자

공간과 환경을 조성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회복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사회복지사 직렬이 신설되고 공공기관마다 이들 복지 전문가들이 배치되었던 것처럼 생활체육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체육복지사제도를 신설하고 이들 전문인들을 지방자치단체에 배치해야 한다. 이들에 의해 지역의 생활체육이 기획될 것이고 자치적으로 형성되어가는 지역 클럽들 역시 활성화되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프로그램과 전문가에 의한 실행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생활체육이 또다시 전시행정의 희생양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다만 주민의 복지적 관점에서 본다면 체육은 반드시 체육만으로 향유되지 않는 그런 영역일 수 있다. 주민은 문화적 복지 혜택을 동시에 원할 수 있으며 따라서 필요하다면 문화와 체육을 모두 기획 운영할 수 있는 문화체육복지사 제도같은 것을 운영하는 것도 한 방편일 수 있다.

이 문화체육복지사의 관할 아래 각 클럽 등에 운동지도자들이 파견되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운동의 대부분이 기초 훈련을 거치지 않으면 즐기기 어려운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도자들은 현재 각 지역 생활체육회에 소속되어 있는 전문인들을 네트워킹하는 방식으로 활용가능하다. 이렇게 함으로써 복지로서의 생활체육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겸비한 안정 발전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다.

간단하다면 간단하고 어렵다면 한없이 어려운 일이 체육이다. 자치단체들의 노력이 전제되고 이해집단들의 양보와 타협이 있다면 복지로서의 생활체육은 주민들의 지지 아래 한걸음씩 발전해갈 것임에 틀림없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생활체육의 활성화, 이제는 복지의 관점에서 얽힌 실타래를 풀어갈 때다.

덧붙이는 글 김익한님은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생활정치연구소 부소장입니다. 이기사는 생활정치메타블로그(www.lifepolitics.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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