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장면 1.

2010 남아공 월드컵유럽지역예선 플레이오프 2차전 프랑스와 아일랜드의 경기 연장전에서 오프사이드와 핸들 반칙을 범한 티에리 앙리의 패스가 동점골의 도움으로 인정되는 순간 프랑스는 남아공 행을 확정지었다.

경기 장면 2.

1986년 멕시코월드컵 8강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축구신동 마라도나의 손을 맞고 들어간 골이 득점으로 인정된다. 경기 결과는 2:1 아르헨티나의 승리. 아르헨티나는 4강 진출에 성공한다.

 프랑스축구대표팀

프랑스축구대표팀 ⓒ 프랑스축구협회홈페이지


 마라도나 86 월드컵 우승

마라도나 86 월드컵 우승 ⓒ 마라도나 홈페이지

두 경기 장면의 문제점은 같아 보이지만 몇 가지 이유로 인해 앙리와 마라도나는 축구 팬들과 전문가들에게 다르게 인식될 수밖에 없다.

갈라스의 동점골을 도운 앙리는 경기가 끝난 후 자신이 부끄러운 행위를 했음을 인정했고, 프랑스 감독 도메네크를 제외한 프랑스 축구 관계자들과(입장표명을 한 사람들) 사르코지 대통령도 공식 채널을 통해 아일랜드국민들에게 사과성명을 냈다. 하지만 마라도나는 달랐다. 그는 오히려 신이 내게 도움을 주셨다는 표현을 하며 자기 행위가 정당했음을 주장했다.

하지만 앙리와 프랑스의 양심선언에도 불구하고 세계 축구계는 프랑스 축구의 부끄러운 본선 행을 질책하고,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마라도나는 세계축구의 영웅이 되었다. 어찌 보면 무언가 이치에 맞아 보이진 않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첫 번째 이유는 앙리의 프랑스와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의 경기력 차이 때문이다.

앙리와 프랑스는 유럽조별예선에서 기대 이하 경기력을 선보이며 많은 팬들에게 병든 닭이란 별명을 얻었고, 천신만고 끝에 조 2위를 기록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플레이오프의 상대팀은 아일랜드라는 강호였지만 피파 랭킹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는 만큼 프랑스의 승리를 조심스레 점치는 전문가들과 팬들이 많았다.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프랑스가 일점차 승리를 거두는데 승리했지만 경기 내용은 어느 팀이 이겼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팽팽함을 보여줬다. 2차전에서도 그 경기 내용은 변하지 않았다. 아일랜드의 선취골로 연장전까지 가는 흥미진진한 경기를 보여주었지만 앙리의 패스를 받은 갈라스의 단 한 골로 두 팀의 운명이 결정됐다.

마라도나가 이끌던 아르헨티나는 24강 조별 스테이지를 2승1무로 통과, 16강에서 우루과이를 1:0으로 이기고 잉글랜드와의 8강을 맞이했다. 그 경기에서 마라도나는 후반 51분에 일명 신의손으로 선제골을 기록한다. 이 경기가 그대로 끝났다면 마라도나도 평생 팬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지도 모르겠으나 정확히 3분 뒤 자기진영 센터서클 부근에서 공을 잡은 마라도나는 그대로 잉글랜드 골문까지 돌진, 필드 선수 5명과 골키퍼를 제친 뒤 침착하게 골을 성공시킨다. 이 한 골로 인해 잉글랜드 축구관계자들마저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후반 80분 리네커의 골로 잉글랜드는 영패를 면하는데 만족 할 수밖에 없었다. 아르헨티나는 그 후 4강에서 벨기에, 결승에서 독일을 연파하며 무패전적으로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다.

앙리와 마라도나의 두 번째 차이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당당함의 차이, 혹은 진심의 문제이다. 마라도나는 선제골을 성공시키고 점프를 하며 어퍼컷을 날리는 세리머니로 자신의 기쁨을 표현했다. 마라도나는 앞서 말했듯이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앙리는? 갈라스가 골을 성공시킨 뒤 앙리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두 팔을 좌우로 힘껏 벌리고 갈라스를 향해 뛰어가는 골 뒤풀이를 하며 프랑스의 본선행을 자축했다. 하지만 인터뷰에서는 자신이 부끄럽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월드컵 본선을 나가고 싶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만약 앙리가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웠다면 그 세리머니는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갈라스의 품속에 숨고 싶었던 행동이었던 것일까?  

앙리와 프랑스가 떳떳한 월드컵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 방법은 프랑스 축구협회가 스스로 반칙을 범했음을 자백하고 공식적으로 피파에 재시합 요청을 하는 방법이다. 앙리의 고백에도 불구하고 피파는 아일랜드의 재시합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피해자가 신고하는 것과 가해자가 자수하는 것은 천지차이이듯, (피파가 월드컵 흥행을 위해 재시합을 원치 않을지 모르지만) 본선행을 확정 지은 팀의 재시합 요청을 무시하는 무지한 행위는 하지 못할 것이다. (피파의 결정이 보도된 후에야 재경기를 원한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공식 채널을 통한 재시합 요청이다)

두 번째 방법은 프랑스가 경기력을 끌어 올려 월드컵 우승을 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피파가 재시합을 원치 않을 경우를 가정한다. 챔피언은 챔피언이다. 시간이 지나다 보면 팬들의기억 속엔(아일랜드를 제외한) 예선전에 어떤 일이 있었든 간에 그 대회 챔피언이 남을 수 밖에 없다. 앙리가 환상적인 플레이를 보여주며 프랑스를 월드컵 우승을 시키며 축구팬들에게 프랑스가 본선에 올라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보여주어야 한다.

세 번째 방법은 가장 극단적이고 생각하기 싫은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 이 방법도 피파가 재 시합을 원치 않을 경우를 가정한다. 만약 앙리가 부끄러움을 느끼고 그렇게까지 해서 본선에 나가고 싶지 않으면 대표팀 은퇴라는 초강수를 두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당연히 이 방법은 앙리나 피파나 축구팬들이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방법이다. 하지만 앙리가 진심을 보여 줄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가 않다.

물론 오심으로 인한 승리라는 점에서 두 경기 모두 떳떳한 결과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마라도나는 오심 이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였던 그 환상적인 골과 월드컵 우승, 그리고 꾸밈없고 가식 없는 당당한 모습으로 인해 그가 월드컵 역사상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 중 하나로 꼽히게 된 것이다.(아니면 마라도나의 품행자체에 팬들이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앙리의 경력과 기록만 살펴본다면 마라도나와 함께 세계 축구사에 영원히 기록될 만한 전설이다. 그의 화려했던 골들과 세리머니는 그가 거쳐간 클럽들과 대표팀 역사에 고이 남아 있고 또 만들어 나갈 것이다. 하지만 팬들의 기억 속에 영웅이 될지 아니면 안티히어로가 될지는 앙리와 프랑스 축구 협회에 달린 문제이다.

월드컵유럽예선 앙리 프랑스 마라도나 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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