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지와 열정 앞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스포츠 스타들에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이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는 사항일 수도 있겠지만 운동을 업으로 삼고 있는 선수들에게는 더욱 뼈저리게 다가오는 것이 사실. 마음은 아직도 펄펄 끓고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음에 좌절감과 안타까움으로 속앓이를 하기 일쑤다.

 

70년생 동갑내기인 '야구천재' 이종범(39·KIA 타이거즈)과 '벌목꾼(Lumberjack)' 피터 아츠(39·네덜란드) 역시 예외는 아니다.

 

각각 국내 프로야구와 K-1을 대표하는 슈퍼스타들인 이들은 자신의 종목에서 '전설'로 통하는 인물들이다. 빼어난 기량으로 최고의 위치에 올랐던 것은 물론 매너와 인성마저 훌륭해 팬들에게 인기가 높은 것은 물론 많은 후배들이 존경하고 따르는 위치에 올라있다.

 

그러나 이제 이들을 응원하는 것은 팬들에게 종종 힘든 일이 되고 있다. 언제나 승리자의 위치에서 당당하게 경쟁자들을 내려다보던 과거와는 달리 세월의 무게 앞에서 약해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기 때문. 그들을 항상 최고로 생각했던 팬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마음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전설은 확실히 전설이다. 비록 예전만 못하다하더라도 이종범과 아츠는 아직까지도 웬만한 선수들에게는 높은 존재다. 단순히 이름 값이 높아서만이 아닌 특유의 노련미를 바탕으로 만만치 않은 기량을 과시하는 것은 물론 후배들이 믿고 따르고 배울 수 있는 모습을 여전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벌목꾼' 피터 아츠(왼쪽)와 '야구천재' 이종범

'벌목꾼' 피터 아츠(왼쪽)와 '야구천재' 이종범 ⓒ K-1 / KIA 타이거즈

 

화려함으로 똘똘 뭉쳤던 전성기 시절

 

젊은 시절의 이종범과 아츠는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던 선수들이었다. 이종범은 전성기 시절 수비만 잘해도 인정받을 수 있는 유격수 포지션을 맡고 있으면서도 타격왕-최다안타-도루왕 경쟁에 한꺼번에 뛰어들 만큼 출중한 기량을 뽐냈다.

 

어디 그뿐인가, 1997년 도루왕을 사실상 확정지은 상태에서 이승엽과 시즌 종료 직전까지 치열한 홈런왕 경쟁을 펼치기도 했다.

 

볼넷으로 출루해 조금의 틈만 있으면 번개같이 도루를 성공시키는가 하면 워낙 주루플레이를 잘하는지라 짧은 안타나 땅볼성 타구에도 보통선수들보다 한 베이스를 더 가기 일쑤였다. 경기 시작을 알리기 무섭게 터지는 선두타자 홈런은 향후 몇 십년 간은 깨지기 힘든 기록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종범은 이러한 엄청난 화력 외에도 내-외야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수비능력까지 갖추고 있어 큰 경기에서 그의 쓰임새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했다. 때문에 소속팀 타이거즈에서는 물론 국가대표로서도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다. '투수는 선동렬,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

 

피터 아츠의 전성기 시절 역시 굉장했다. '폭군', '네덜란드의 벌목꾼', '20세기 최강의 킥복서' 등 다양한 별명들이 그의 스타일을 대변해주고 있는데 지금도 여전히 인파이팅을 구사하는 편이지만 젊은 시절의 아츠는 그야말로 '전진본능'밖에 모르는 불도저같은 인물이었다.

 

끊임없이 밀어붙임에도 상대 선수들은 아츠의 빈틈을 찾아서 공략하는 것을 대단히 어려워했다. 워낙 화력이 강력하고 공격무기가 다양해 자칫 공격으로 맞불을 놓았다가는 되레 자신이 나가떨어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로우킥, 미들킥, 하이킥 등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킥 세례에 상대의 호흡을 일시적으로 끊어버리는 살인적인 죽창(竹槍) 펀치, 그리고 짧은 거리에서 연속적으로 터지는 숏카운트 능력까지…. 어느 하나를 정해서 대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구사하는 오펜스 테크닉 마다 모두 강력했으며 연속적으로 터져 나가는 컴비네이션은 완벽한 방어가 아예 불가능하다는 평가마저 있었다. 긴 도끼, 짧은 도끼, 장창, 단검, 쇠파이프 등 아츠의 온몸은 그야말로 'K-1의 병기집합소'였다.

 

이종범은 한창 전성기를 누릴 무렵 국내에서 더 이상 이룰게 없자 일본무대를 겨냥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 것이라는 극찬을 받았던 그인만큼 데뷔하기 무섭게 제몫을 해냈지만 그를 견제한 빈볼에 맞아 아쉽게 천재의 능력을 상당 부분 상실해버렸다는 평가다.

 

아츠 또한 젊은 시절의 방황과 부상 등이 겹치지 않았다면 '미스터 퍼펙트' 어네스트 후스트(44·네덜란드)의 통산 4회 우승 기록을 갱신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러한 사항들은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다. 이들에게 이러한 시련이 없었다면 더 큰 전설을 쓸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있지만 구태여 그러한 것들이 아니라 해도 이종범과 아츠는 이미 각각의 역사에서 '레전드'로 남을 것이 확실하다.

 

 올시즌 이종범이 없었다면 KIA 타이거즈의 현재도 없을것이다는 의견이 많다

올시즌 이종범이 없었다면 KIA 타이거즈의 현재도 없을것이다는 의견이 많다 ⓒ KIA 타이거즈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모범이 되고있는 영원한 슈퍼스타들

 

젊은 시절의 이종범과 아츠는 수 읽기 자체가 필요 없었다. 워낙 운동신경이 탁월한지라 어떤 상황에서도 정면대결로 그들을 꺾을 자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은 그들에게 이러한 능력을 빼앗아갔고 이종범과 아츠 역시 한참동안 슬럼프를 겪기도 했다.

 

기량 하락으로 인한 절망감은 한때 이종범과 아츠를 은퇴 위기로까지 몰아갔다. 하지만 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전성기 때의 신체능력은 없지만 그동안 쌓인 경험을 바탕으로 노련하게 상대를 제압하는 방법을 깨닫게된 것이다.

 

올 시즌 이종범은 소속팀 KIA 타이거즈에서 없어서는 안될 전력의 핵이다. 3할을 치고 도루왕을 하고 장타를 펑펑 날리는 것은 아니지만 안정된 수비능력을 바탕으로 희생번트, 외야플라이, 진루타 등 팀플레이의 진수를 보여주며 소속팀의 정규리그 1위 달성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큰 경기에 강한 스타답게 이종범의 진가는 한국시리즈에서 나오고 있다. 이종범은 2차전까지 펼쳐진 한국시리즈에서 현재 6타수 3안타 3타점 1볼넷을 기록중이다.

 

전체적으로 KIA 선수들의 타격감이 썩 좋지 않은 가운데 본인의 컨디션을 한국시리즈에 잘 맞춰온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지난 1차전에서는 두 번의 역전을 모두 자신의 방망이로 만들어내며 난적 SK의 예봉을 꺾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줬다.

 

이종범이 이처럼 좋은 활약을 해주는 것은 KIA 선수단 전체의 사기문제에 있어서도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팀의 정신적 리더가 단순히 자신의 네임밸류에 의지하기보다는 행동으로 솔선수범하고 있기 때문으로, 최근 수년간 하위권을 맴돌았던 KIA 입장에서는 상승세를 타기에 좋은 분위기다.

 

아츠 또한 K-1무대에서 여전한 위력을 보여주고 있다. 비록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젊은 강자들인 '악동' 바다 하리(25·모로코) - '더치 사이클론' 알리스타 오브레임(29·네덜란드) 등에 막혀 그랑프리 우승에는 한계를 보이고있지만 지금도 웬만한 상대들은 아츠를 당해내기 힘들다.

 

아츠는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항상 도전 정신을 버리지 않고 있다. 지난해 16강전에서 K-1의 '격투머신' 세미 슐트(36·네덜란드)를 스스로 선택했던 것을 비롯, 올해 오브레임과 격전을 벌인 것이 이를 증명한다. 어려운 일은 슬쩍 빠진 채 다소 편한 행보를 갈 수도 있겠으나 누구보다도 K-1을 사랑하는 그이기에 궂은일에 앞장서는 모습이다.

 

그들의 나이에 비춰봤을 때 이종범과 아츠를 프로야구판과 K-1에서 볼 날은 많이 남지 않았다. 하지만 끝없는 동기부여를 바탕으로 '끝나도 끝난게 아니다'는 명언을 스스로 실천중인 이들의 계속된 도전과 투지는 영원히 팬들 마음 속에서 감동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2009.10.19 11:56 ⓒ 2009 OhmyNews
한국시리즈 프로야구 이종범 피터 아츠 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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