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폐막한 제11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SIYFF)에서 만난 특별한 영화들이 있다. 바로 지금, 학교를 다니는, 영화를 사랑하는 고등학생들이 직접 만든 풋풋한 작품들이다. 세상을 보는 10대들의 시선이 영화를 통해 고스란히 보여진다.

'발칙한 시선 1'과 영화제가 제작비를 지원한 '사전제작지원작' 섹션을 통해 소개된 10대들이 만든 영화들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그리고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들이 펼치는 새로운 영화의 세계를 만나보자.

어설프지만 따뜻한 여행기 <가자, 여행>

 오세인 감독의 <가자, 여행>

오세인 감독의 <가자, 여행> ⓒ 서울 국제 청소년영화제


오세인 감독의 <가자, 여행>은 당일치기 여행을 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막 대학에 들어간 딸이 어느날 갑자기 가족 여행을 제안한다. 호프집을 운영하면서 생활비 걱정으로 여행을 반대하는 엄마, 그러나 아버지는 여행을 결정한다. "가자, 여행." 한 마디로.

여행 당일, 자동차가 펑크가 나고 가족은 지하철을 탄다. 지하철을 타고 간 곳은 다름아닌 도봉산. 힘들다는 가족들의 말에 아버지는 그냥 산을 내려오고 벤치에 앉아 김밥, 떡볶이, 오징어 등을 먹으며 하루를 보낸다. 집에 들어가려는 순간 아버지는 열쇠를 잊어버린 것을 알게 되고 가족들은 가게로 들어가 한 자리에서 함께 잠을 잔다. 

엄마와 아빠 역을 맡은 배우의 어색한 연기가 오히려 자연스런 웃음을 유도하며 친근함을 준다. 참고로 아버지 역은 오세인 감독의 실제 아버지가 연기했고 엄마 역은 감독 친구의 어머니가 연기했다.

이미 가족에 포커스를 맞춘 영화 2편을 찍은 오세인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한 가족의 일상을 잔잔하면서도 재미있게 표현했다. 가족의 따스한 온기를 그대로 스크린에 담아내려는 감독의 마음은 친구 아들과 비교하는(잘난 친구 아들 이름이 '세인'이라는 것도 재미있다) 엄마의 잔소리마저도 정겹게 만든다. 자신의 경험을 표현한, 한 자리에서 잠자는 가족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가족의 따뜻함을 전하는 10대의 생각에 대견함을 느끼게 하는 작품으로 이번 영화제에서 '특별언급' 부문을 수상했다.

<미행토끼>가 보여준 기발함

 변성빈 감독의 <미행토끼>

변성빈 감독의 <미행토끼> ⓒ 서울 국제 청소년영화제


색다른 실험영화를 기대한다면 변성빈 감독의 <미행토끼>가 있다. 이 영화는 국내에서 만든 10대 감독들의 출품작 중에서 가장 화제가 된 작품으로 이번 영화제에서 예술실험상과 시선상 등 2개 부문을 받았다.

어릴 적 토끼를 죽이는 것을 즐겼던 엘리자베스는 이후 토끼에 대한 피해 의식을 가진다. 토끼와 꼭 닮은 감독관이 있는 대학 시험장에서 엘리자베스는 토끼 그림을 발견하고 그만 대학에 떨어진다. 결혼한 첫날밤 엘리자베스는 토끼의 그림자를 보게 되고 그날 밤 남편을 잃는다.

인간을 얽매는 피해의식. 변성빈 감독은 30대 여성이 토끼에게 느끼는 피해의식을 재미있게 풀어간다. 특히 토끼를 꼭 닮은 시험 감독관과 '그것이 알고 싶다'의 문성근의 목소리와 비슷한 독특한 나레이션이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 기성 영화를 흉내내려는 부분이 보이는게 조금 걸리긴 하지만 10대 감독의 기발함이 돋보인다.

10대 영화의 교과서 <엠은엠>

 한동헌 감독의 <엠은엠>

한동헌 감독의 <엠은엠> ⓒ 서울 국제 청소년영화제


한동헌 감독의 <엠은엠(M=M)>은 평범한 소재를 풀어가는 능력이 돋보인 작품이다. 카세트 플레이어를 가방에 넣고 다니며 음악을 즐기는 우혁. 그런 우혁을 한심하게 본 친구는 MP3를 보여준다. 그것을 사기 위해 우혁은 엄마의 돈을 훔치려 하지만 번번이 걸리는 장애물이 그의 뜻을 꺾는다.

마침내 그가 손에 쥔 것은 바로 소형 카세트 '마이마이'. 그러나 우혁은 거리에서 당당하게 외친다. "뮤직 이즈 마이 라이프!"라고.

누구나 청소년 시절이라면 겪었을 이야기. 한동헌 감독은 자신과 주변 친구들의 사소한 경험을 카세트와 '마이마이'라는 '시대에 안 맞는' 매개체로 재미있게 만들었다. 어떻게 보면 고등학생이 만든 영화의 교과서로 보일 정도로 자신의 체험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솔직함과 재미가 인상에 남는다.

현실을 포기한 이를 향한 대담한 시선

 김보경 감독의 <시간의 끝에서>

김보경 감독의 <시간의 끝에서> ⓒ 서울 국제 청소년영화제


사전제작지원작으로 선보인 김보경 감독의 <시간의 끝에서>는 10대답지 않은 대담한 시선이 돋보인다. 아빠를 잃은 현지는 아빠와 함께한 추억이 가슴 속에 계속 남아있다. 현지는 그를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아빠와 함께한 추억이 있는 장소에서 아빠를 따라간다.

추억을 현실로 믿고 싶어하는 현지를 표현하기 위해 감독은 현재 상황을 흑백톤으로 처리하고 과거 아빠와 함께한 추억을 칼라로 표현했다. 약간의 어설픈 부분도 있지만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그렇기에 쉽게 삶을 포기하려는 또래 학생의 모습을 김보경 감독은 동정없는 시선으로 그린다. 10대가 만든 영화라고 보기에는 대담하다.

매너리즘을 느낀다면 10대를 주목하라

영화제는 막을 내렸고 여러 영화들이 상을 받았다. 그러나 상의 여부를 떠나 주목해야할 작품들은 반드시 재언급을 할 필요가 있다. '발칙'이라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10대들의 시선은 발칙하다기보다는 '대담'하고 더 '현실적'이다.

그래서 이들의 영화에는 기성 영화의 최대 단점인 매너리즘이 없다. 가장 가까이서 느낀 자신의 체험, 그것을 구체적으로 담아낸 것이 인상적이다. 물론 영화 측면에서는 어설프고 빈약한, 소통하기 어려운 부분도 군데군데 나오지만 처음 만드는 영화기에 나올 수 있는 단점이라고 생각하면 그것 또한 감싸안을 수 있다.

비판보다는 칭찬을 더 하고픈, 어설픔을 지적하기보다는 장점을 조금이라도 더 말하고 싶은, 10대들의 영화를 즐겁게 봤다는 것, 영화제가 팬들에게 준 선물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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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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