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스포일러가 들어 있습니다.

 

 영화 <마더>의 포스터

영화 <마더>의 포스터 ⓒ CJ엔터테인먼트

'요새 경찰 참 무식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청와대로 가겠다는 시민들을 차단하기 위해 전경버스로 소위 '명박산성'을 쌓아 거리를 차단하던 촛불시위 때 경찰의 단호한 대처를 보며.

 

'요새 경찰은 여전히 변한 게 없구나' 생각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후 서울광장을 전경버스로 빙 둘러치고 시민들의 출입을 막는 경찰의 해프닝을 보며.

 

물리력에 대한 대책은 물리력밖에 없다고 생각하기에 저러겠지 생각했고, 그러기에 조금은 애처롭지만 이해가 가기도 했다.

 

'요새 경찰 참 수고가 많구나' 하는 생각도 참 많이 든다. 정권과 국민이 갈등이 심하면 심할수록 경찰이 참 수고가 많다. MB정부 들어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에서부터 시작하여, 고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벌어진 여타의 시위들에 이르기까지, 참 경찰이 수고가 많다.

 

수고는 많은데 별로 명석하지는 않은 경찰의 모습이 현실에서도 영화에서도 동류다. 내가 겪었던 무능한 경찰이 영화 <마더>에도 나온다. 오늘날 시국의 한 중간에 서 있는 명석하지 않은 공권력, 경찰의 모습이 그대로 영화 <마더>에 등장한다.

 

영화 <마더> 속 경찰, 그 황당함에 대하여

 

영화 <마더>는 분명 경찰영화나 범죄스릴러 쪽은 아니다. 차라리 가족영화요, 모정에 기댄 심리영화다. 그러나 전체의 흐름에서 경찰이 빠지면 이야기가 안 되는 영화다. 너무 신속하게 바보 도준(원빈)을 범인으로 지목, 진술을 받아내고 사건을 종결짓는 경찰에게 그럴 듯한 신뢰의 눈빛을 보낼 만도 하다. 처음에는.

 

그러나 점점 엉뚱한 사람을 잡아 가둔 것이 아닌가 하여 관객은 마더 혜자(김혜자)와 동병상련이 되어 허둥되지만, 결국 경찰이 옳았다며 박수를 치게 된다. 영화에서 경찰은 너무 쉽다. 모든 게 너무 쉽다. 잡아가두는 것도 너무 쉽게 하고, 놓아주는 것도 너무 쉽게 한다.

 

도준의 이름이 적힌 골프공 하나로 도준이 진범이라고 확신한 경찰, 다른 각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하마터면 옥살이로 15년을 허송세월 할 뻔한 도준이 교도소 문밖으로 나올 때는 허망하기까지 하다. 좀 더 그럴싸한 증거나 진술이 개진되었더라면 이처럼 허망하진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의 애원에, "이제 다 끝난 얘깁니다. 수사가 종결되었다고요"라며 너무 쉽게 수사종결을 선언했던 경찰 제문(윤제문)이 이렇게 말할 땐 경악 그 자체다.

 

"어머니, 진짜 범인이 잡혔습니다. 기도원에서 탈출했던 종팔이 범인입니다."

 

이미 관객은 그가 범인이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이다. 종팔이 옷에 묻은 아정(문희라)의 혈흔이 증거라는데, 그건 정사 때 흘린 아정의 코피.

 

모든 사건을, 아니 살인사건을, 이리 쉽고 황당하게 다루는 경찰이 정말 있을까?

 

내가 겪은 경찰, 황당함의 실제에 대하여

 

 영화 속 제문 형사의 모습이다.

영화 속 제문 형사의 모습이다. ⓒ CJ엔터테인먼트

정말 있다. 영화 <마더>의 경찰은 시골의 비교적 한직에 있는 경찰들의 활약상을 보여주기에 그저 영화적 설정이려니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너무 쉽게, 너무 황당하게 사건을 처리하려고 드는 경찰이 있다.

 

나는 20여년전 그런 경찰들을 경험했다. 비중 있는 살인사건도 아니고 비싼 물건을 잃은 도난사건도 아니다. 그저 좀도둑 사건이요. 강도 사건이다. 그런데 그걸 다루는 솜씨가 어떻게 영화 속 경찰과 똑 같은지.

 

시골에서 목회를 할 때다. 새벽기도를 하는데 강도가 들었다. 첫 아기를 출산한 지 며칠이 안 되는지라 아내는 몸조리 때문에 새벽기도에 나오지 않았다. 새벽기도 때는 목사의 가족 모두가 새벽기도에 참석한다는 걸 아는 도둑은 방범창을 뜯고 과감하게 침입을 했다.

 

아내가 누워 있는 것을 본 도둑은 식칼로 아내를 위협했다.

 

"꼼짝 마, 서툰 짓하면 죽인다!"

 

외마디를 지른 후, 아내를 이불로 뒤집어씌운 후 귀중한 물건들을 챙겨 유유히 사라졌다. 그때 결혼패물도 다 잃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들어오니 아내가 시퍼렇게 질려 있었다. 그래도 이런 때 서민이 생각하는 것은 경찰, 나는 즉시 경찰에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잡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그러나 며칠이 지나서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그 목소리의 황당함은 이렇다.

 

"목사님, 범인 잡혔습니까?"

 

어? 이게 누가 누구에게 한 질문인가. 아니 범인은 강도당한 사람이 잡는 게 아니라 경찰이 잡는 거 아니던가. 이후 몇 번 더 똑같은 침입사건이 있었지만 경찰에게는 아예 알리지도 않고 삭이고 말았다. 영화를 보며 자꾸 그 때 경험이 되살아난다.

 

영화 속 경찰과 현실의 경찰, 무엇이 다를까?

 

 도준을 범인으로 한 현장 검증 장면이다.

도준을 범인으로 한 현장 검증 장면이다. ⓒ CJ엔터테인먼트

아무나 잡아넣었다가 풀어주는 영화 속 경찰이나, 아무도 안 잡고 강도당한 사람에게 범인 잡았느냐고 묻는 경찰이 무엇이 다른가. 이 글을 읽다가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경찰의 마음이 아플까 걱정이다. 그러나 아직도 경찰 중에는 영화 속 경찰과 같이 너무 쉽게 생각하고, 황당하게 사건을 해결하려는 경찰이 없을까?

 

전경차로 담을 쌓으면 국민들의 분노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찰이라면 영화의 경찰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게 아닌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민분향소를 마구 짓밟아 철거하고도 "일부 의경들의 실수"라고 말한 주상용 서울경찰청장의 아주 쉬운 해명이 통하는 경찰이라면 영화의 경찰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게 아닌가.

 

영화를 보는 내내 거기 등장하는 경찰들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동시에 요즘의 경찰, 내가 과거에 경험한 경찰들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너무 쉽게 생각하고 일하는 것은 아닌가. 경찰, 나름대로 힘들겠지만 좀 더 국민 곁으로 오면 안 될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앤조이, 세종뉴스 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6.18 14:51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뉴스앤조이, 세종뉴스 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마더 봉준호 영화평 경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