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란 곳을 끼적거리며 다니던 시절, 경제학과 교수에게 들은 말이 떠오르네요.

"젊을 때 누구나 평등을 얘기하면서 가슴이 뛰는 것을 느끼죠. 가슴 뛰지 않는 게 이상한거지요. 하지만 철이 들어서까지 좌파면 그게 이상한 겁니다."

학생운동이라야 기껏해야 등록금 투쟁하는 수준이 되어버린 21세기 대학이지만 그것도 못마땅한지 수업시간 전에 '인생선배'로서 한 말씀 하시더군요. 

그런 말을 하는 그도 4.19소식에 가슴이 뜨거웠고 5.18 실상을 알고 분노했으며 6.10때 행진했을까요. 수업을 듣는 많은 학생들 대부분이 ‘철’이 들어버렸는지 그런 질문은 나오지 않더군요. 물론 저도 하지 않았죠. 한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는 많은 학생들이 그렇듯 대기업과 금융기관에 취직하길 바라며 공급, 수요 곡선을 그리며 열심히 교수 강의에 귀를 기울였지요.

나이가 들면 다들 철이 드나보네요. 학생운동을 훈장처럼 달고 다니며 젊었을 때와는 아예 다른 길을 가는 정치인들을 많이 봅니다. 훌륭한 대통령께서도 학생시절 때는 ‘박정희 독재정권’에 대항해서 ‘짱돌’을 들었던 분이었죠. 6.3학생 운동으로 재판까지 받은 그였지요. 그런 열혈청년이 어머니의 꾸중에 ‘정신’차리고 ‘더 나은 세상 바라기’에서 멀어졌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전해오네요.

외환딜러와 요리사, 그리고 미용사 아내

그런가 봐요. 사람 사이 평등과 행복한 사회는 한 때 젊은이들 가슴에 불을 지피다가 사라지는 유령인가 봐요. 공평하고 옳게 살아야 한다고 배운 젊은이들도 사회로 나가는 순간, 많은 경우 ‘철’이 들어야 하고 ‘정신’을 차려야 하지요. 11월 27일 개봉한 영화 <나의 친구, 그의 아내>[2006. 신동일 감독]는 한 때는 가슴 뜨거웠던 젊은이의 모습을 뼈아프게 그려냈네요.
포스터 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으려 할까요. 왜 넘고서도 반성하지 못할까요.

▲ 포스터 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으려 할까요. 왜 넘고서도 반성하지 못할까요. ⓒ 프라임 엔터테인먼트


예준(장현성 분)은 잘나가는 외환딜러에요. 군대에서 만난 재문(박희순 분)과 절친한 친구지요. 취사병 경험을 살려 요리사를 하는 재문은 미용사 지숙(홍소희 분)과 결혼을 하지요. 지숙은 둘의 관계가 너무 가까워 가끔은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틈나는 대로 영어 발음을 봐주고, 어려울 때 물질 도움도 주는 예준을 고맙게 여기지요.

지숙은 아이를 낳은 뒤, 프랑스에서 열리는 ‘국제미용 워크숍’에 참석하러 가지요. 일에 몰두하여 재문과 연락이 뜸했던 예준은, 회식에서 동료들과 다투고 오랜만에 재문의 집을 찾지요. 술병이 쌓이고 취해 가는데, 차를 빼달라는 전화가 오지요. 예준은 재문에게 주차를 대신하게 시킨 뒤 혼자 집에 남아 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지요. 바로 아이를 죽인 것이죠.

아이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결딴나지요. 재문은 예준에게 지숙을 잘 돌봐달라고 부탁을 하며 사건에 대해 입을 다물고 감옥에 가지요. 예준은 지숙에게 다 잊고 바람 쐬고 오라며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지요. 그렇게 2년 뒤, 재문은 출옥하고 지숙은 돌아와서 대형 헤어숍을 차리지요. 그렇게 셋은 다시 얽히네요.

평등한 세상을 바라던 청년, 비열한 속물이 되다

영화는 얼핏 보면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치정극처럼 보일 수 있지요. 주인공들의 심리묘사가 두드러지면서 달라지는 모습들에 주목해도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예요. 하지만 상당히 여러 모로 읽힐 수 있는 영화에요. 이 영화를 본 호주관객은 재문과 예준를 프랑스와 미국의 상징으로 봤다고 할 정도지요. 신동일 감독도 ‘열린 텍스트를 지향한다.’며 영화를 열어놓았지요.

영화에 FTA 협상 보도나, 시위 장면을 넣음으로써 영화는 치정극을 넘어 사회맥락에서 읽히지요. 영화에서 예준은 속물성에 빠진 비열한 ‘자본가 계층’을 보여주죠. 그는 한 때 학생운동을 하였던 청년이죠. 신병으로 재문이 후임으로 들어왔을 때 “사람은 다 평등하다.”며 말을 놓게 한 그는 재문의 아이 이름을 지어주면서 남자면 민혁(민중혁명 줄임말), 여자면 예니(마르크스 부인 이름)라고 할 정도지요.

너거들이 누구 덕에 사는데? 재문이 지숙을 보고싶다고 하자 윽박지르며 분노를 토해내지요. 재문 덕에 자신이 감옥에 안 간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지요.

▲ 너거들이 누구 덕에 사는데? 재문이 지숙을 보고싶다고 하자 윽박지르며 분노를 토해내지요. 재문 덕에 자신이 감옥에 안 간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지요. ⓒ 프라임 엔터테인먼트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청년이 아니지요. 외환딜러로 자본의 이득에 철저히 봉사하는 그는 동료들을 밟고 올라서면서 ‘경쟁사회인데 당연한 거 아니냐.’고 당당하게 말하지요. 스포츠신문 보지 말라고 하며, 재문이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철학에세이’를 읽던 예준이었으나 이제 스포츠신문을 자연스럽게 보고 자신이 탐하는 것은 얻고야 마는 사람이 되었죠. 한때 진보지식인이었던 그가 노동자의 자식, 민혁(민중혁명)을 죽인다는 설정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네요.

그는 돈으로만 해결하려고 하죠. 재문과 지숙이 한번씩 “빈말이라도 미안하다는 한마디를 못하냐.”라는 요구에 “너그들이 누구 덕에 사는데.”라며 흥분하지요. 그는 딱 2번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데, 지숙과 섹스가 너무 빨리 끝났을 때이고 지숙이 화가 났을 때 풀어 주려고 할 때지요. 순간 위기 모면하려고 침에 바른 소리를 하며 진심어린 반성이 없는 모습, TV를 켜면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지요.

“너거들이 누구 덕에 사는데?”

그런 예준에게 재문과 지숙은 철저히 종속되죠. 아내와 사랑을 나누다가도 술에 취한 예준의 전화에 재문은 바로 달려 나가지요. 겉보기에는 그럴듯한 우정이란 이름으로 포장되지만 그 안에는 자본과 노동의 역학관계가 놓이죠. 결혼식 기념사진 촬영 때 재문은 아내보다 예준과 더 가까이에 있지요. 

밤이면 외로운 자본가 자기 밖에 모르고 경쟁에서 이길 생각 밖에 없는 예준은 연애도 못하고 친구도 없지요. 재문을 불러서 자기 외로움을 잠시 위안받고 있네요.

▲ 밤이면 외로운 자본가 자기 밖에 모르고 경쟁에서 이길 생각 밖에 없는 예준은 연애도 못하고 친구도 없지요. 재문을 불러서 자기 외로움을 잠시 위안받고 있네요. ⓒ 프라임 엔터테인먼트


우정은 양쪽의 비슷한 처지에 있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죠. 그 사람이 성자가 아닌 이상, 한 방향 호혜는 금방 무너지죠. 지금까지는 예준이 물질을, 재문이 감정을 교환하는 우정이었죠. 재문 지숙은 물질 도움을 받고 예준은 유일한 친구 재문에게서 감정노동을 봉사 받지요. 사람관계에는 역 능숙치 못한 예준은 재문과 지숙 가정의 파탄이 나자 감추고 있던 지숙에 대한 욕망을 끄집어내게 되지요.

이렇게 자본은 언제나 상대 약점을 파고들지요. 그 욕망은 멈출지 모르지요. 특히 한국에서는 그럴싸한 논리로 내세우며 자본에 고삐를 풀려고 갖은 애를 쓰지요. 열악한 환경을 견디다 못해 노동자가 생존 파업을 하면 ‘국가경쟁력’ 운운하며 짓밟기 일쑤지요. ‘저그들이 누구 덕에 사는데’ 혀를 끌끌 차며, 자기들끼리 골프를 치면서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있지요.

‘저그들이 누구 덕에 사는데’ 논리는 반대쪽에서도 통하지요. 노동이 없다면 자본도 돌아갈 수 없지요. 지금까지 이렇게 사는 것은 자본만의 덕이 아니란 얘기죠. 노동자들의 피땀은 보지 못하고 성과물을 모조리 긁어가면서 부스러기를 떨어뜨려줄 뿐이죠. ‘대들지마, 이거 먹고 떨어져.’라고 하는 한국 자본의 태도에는 노동자들을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마치 ‘소품’으로 여기는 천박함이 가득하지요.
"두부 먹어" 예준이 재문에게 감옥갔다 왔으니 관행처럼 두부를 건네자 재문은 "내가 죄지었냐, 두부를 먹게."라며 거절하지요.

▲ "두부 먹어" 예준이 재문에게 감옥갔다 왔으니 관행처럼 두부를 건네자 재문은 "내가 죄지었냐, 두부를 먹게."라며 거절하지요. ⓒ 프라임 엔터테인먼트


예준은 지숙을 만나고 싶다는 재문에게 ‘아직 때가 아니라고’ 달래는 척 하고 지숙에게는 같이 미국으로 가자고 꾀며 이중성을 드러내지요. 자기의 잘못을 보지 못하고 경쟁사회에서 남을 누르고 뺏기에만 급급한 그는 “눈에 안 보인다고 없는 게 아냐.”라면서 진실을 알아버린 지숙에게 된통 당하지요.

된통 당한 자본, 이제는 반성하고 ‘정신’을 차렸을까?

영화는 우정이란 허울로 불안하게 유지되는 친구, 아름다운 아내와 그를 욕망하는 친구라는 삼각관계를 띠고 있지요. 사람들 욕망을 세밀하게 영상에 담았고 심리 묘사도 꼼꼼하게 처리하여 영화 보는 내내 관객을 몰입하게 하네요. 하지만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장치들은 이 영화가 단순한 '남녀상열지사‘가 아니란 것을 보여주죠. 노동자의 자본가 동경, 노동자의 알짬까지 뺏으려는 자본가, 많은 게 겹쳐지며 그려지네요. 

첫 장면에서 미국 가서 살기 위해 영어 공부하는 재문과 지숙이 나오지요. 한국 사람들의 여전한 ‘미국 환상’을 드러내는 장면이죠. ‘동네 미용실’을 하던 지숙이 미국 유학 갔다 오더니 많은 종업원을 거느린 ‘헤어숍’을 차리는데, 미국에 갔다 온 것만으로 계급 상승이 이뤄지고, 지숙의 태도와 외양이 달라진 걸 보여줌으로써 미국이 한국에 미치는 커다란 영향을 영상으로 재현하네요.

지숙이 미국에서 돌아와 헤어숍을 차릴 때 비정규직 노동자와 이주노동자가 창문을 닦지요.  다음 장면에서 지숙과 셋이 같이 담배를 피는데 아주 묘한 구도지요. 가장 아래쪽에 방글라데시 국기가 그려진 이주노동자가 있고 가운데에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노동자에서 이제는 소자본가가 된 지숙이 계단 가장 위에 있는데,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네요.

동료들을 짓밟고 올라선 예준에게 비서가 들어와 “방문잡니다.”라고 말을 하네요. 보통 ‘손님이 왔습니다.’ ‘어떤 분이 찾아오셨어요.’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뜬금없이 “방문잡니다.” 하기에 웃음이 나더군요. 신동일 감독의 전작이 <방문자>[2005]거든요. 늘 그렇듯 방문자는 파국을 일으키지요.

그나저나 영화 마지막, ‘동네미용실’을 다시 차린 지숙에게 편지가 한통 와요. 예준이 쓴 것 같은 하얀 봉투의 편지, 뭐라고 적혀있을까요. 반성? 저주? 사과? 분노? 유서? 편지는 뜯어지지 않고 서랍 안에 넣어져서 관객의 상상에 내용을 맡기네요. 성찰이 없는 정글자본주의 상황에서 그 편지는 밝혀지지는 않지만 많은 말을 하네요. 그 안에 ‘정신’을 차렸다는 얘기가 적혀있길 바랍니다.

남의 아내를 탐하지 말아라 미국에서 돌아와 화려해진 지숙과 포도주를 먹는 예준, 똬리를 틀고 있던 욕망이 밖으로 비집고 나오기 시작하네요.

▲ 남의 아내를 탐하지 말아라 미국에서 돌아와 화려해진 지숙과 포도주를 먹는 예준, 똬리를 틀고 있던 욕망이 밖으로 비집고 나오기 시작하네요. ⓒ 프라임 엔터테인먼트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 나의친구그의아내 진보지식인 민중혁명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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