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3-0으로 물리친 우리 선수들의 소식이 실린 아시아축구연맹 누리집(www.the-afc.com)

일본을 3-0으로 물리친 우리 선수들의 소식이 실린 아시아축구연맹 누리집(www.the-afc.com) ⓒ 아시아축구연맹


파란 옷의 일본 선수들은 주심의 종료 휘슬이 울리자마자 대부분 그라운드에 드러누워 흐느꼈다. 90분이 넘도록 우리 선수들을 따라잡기 위해 쉼없이 뛰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간발의 차이로 아깝게 진 것이 아니라 보기 드문 0-3의 패배가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일본 입장에서는 1994년 미국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에서 벌어진 '도하의 비극'을 다시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A그룹 예선 리그에서 일본은 예멘을 5-0으로 크게 이기며 출발했고 두 번째 경기에서도 아시아 축구의 강팀 이란을 4-2로 물리쳐 이번 대회에서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더구나 이 경기는 2009년 이집트에서 열리는 세계청소년월드컵 본선 진출 티켓이 걸린 맞대결이었기에 그 의미는 더욱 컸다.

조동현 감독이 이끌고 있는 19세 이하 한국 청소년축구대표팀은 우리 시각으로 8일 늦은 밤 사우디아라비아 담맘에 있는 프린스 모하메드 빈 파하드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08 AFC(아시아축구연맹) 19세이하 축구선수권대회 8강 토너먼트 일본과의 맞대결에서 3-0으로 완승을 거두고 준결승에 올랐다.

요코하마 FC의 조영철, '골잡이가 지배해야 할 공간'

우리 선수들은 지난 3일 새벽(우리 시각) 열린 B그룹  두 번째 경기에서 UAE(아랍에미리트)에게 종료 직전 두 골을 연거푸 내주며 1-2로 주저앉았다. 그 결과로 8강 토너먼트 진출 여부까지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이후 우리의 어린 선수들은 '심기일전'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달라졌다. 기본적으로 볼 처리가 빨라졌고 패스의 질을 높이며 경기를 스스로 풀어나가려고 노력했다. 그 덕분에 이라크를 2-0으로 완파하고 8강에 오른 우리 선수들은 경기를 거듭할수록 더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지난 9월 일본에서 열린 센다이컵 친선 대회에서 우리 선수들은 일본에게 0-3의 완패하며 망신을 당한 바 있다. 이에 일부 축구팬들은 이들을 가리켜 '골짜기 세대'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이번 대회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거짓말처럼 스코어를 뒤집어 버렸다. 두 달 전 0-3 패배의 아픔을 딛고 더 중요한 대회에서 3-0의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일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정말로 놀라운 결과를 이끌어낸 것이었다.

 FW 조영철

FW 조영철 ⓒ 요코하마 FC


완승의 과정에서 골잡이 조영철이 돋보였다. 지금은 한물 갔다고 하지만 한때 일본 축구를 이끌고 우리 수비수들을 괴롭힌 바 있는 미우라 가즈요시와 나란히 요코하마 FC의 골잡이로 뛰고 있는 조영철은 일본 수비수들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 골잡이가 상대 수비수를 앞두고 기술적으로 우위를 보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일깨워준 그였다.

조영철은 21분, 미드필더 유지노의 선취골을 도왔다. 왼쪽 끝줄 바로 앞에서 빠르고 정확한 패스도 돋보였지만 그보다 앞서 측면에서 상대 수비수 오카모토를 완벽하게 따돌리는 개인기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조영철의 기술적 우위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83분에도 그는 왼쪽 측면을 노렸다. 이번에 그를 막아선 수비수는 무라마쓰였지만 공을 몰고 들어가는 순간 스피드나 유연성에서 한참 모자랐다. 이에 가운데 수비수 요시다가 커버 플레이에 나서며 걷어낸다는 공이 무라마쓰의 몸에 맞고 떨어져 슛 각도가 거의 나오지 않는 조건이었지만 조영철에게 오른발 쐐기골을 얻어맞고 말았다.

기술적으로 자신있었던 그는 골잡이가 지배해야 할 공간이 어디인가를 잘 알고 있었고 이를 충실히 실천했다. 미드필더나 골잡이가 끝줄 가까운 곳까지 공을 소유하고 드리블 할 경우 수비 조직력이 순간적으로 무너진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는 수비수 한 명이 떨어져나가는 것으로 끝나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골문 앞쪽에서 다른 골잡이를 막고 있던 또 다른 수비수나 심지어는 문지기까지 달려나가서 막아야 할 '절대 공간'인 셈이다. 수비 입장에서는 도미노가 따로 없을 정도로 제2, 제3의 커버 플레이가 계속 이루어져야 할 위험천만한 공간이다.

일본 선수들은 이렇게 똑같은 공간에서 두 골을 내준 것도 모자라 후반전 추가 시간에 바꿔 들어온 골잡이 최정한에게 쐐기골까지 내주며 완전히 주저앉았다. 결과적으로 일본 축구팬의 입장에서 보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떠오르는 한국 골잡이에 대한 악몽인 셈이었다.

전통적으로 좋은 미드필더가 많이 배출되고 있는 일본은 한국에 비해 위협적인 골잡이가 나오지 않아 아쉬운 입맛을 다신 적이 많았다. '미우라 가즈요시(요코하마 FC)-다카하라 나오히로(우라와 레즈)-히라야마 소타(FC 도쿄)' 등의 계보가 그려지기는 하지만 '황선홍-최용수-김도훈-안정환-이동국-박주영'으로 이어지는 우리 축구계를 부러워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골잡이들의 등용문 격으로 여겨지고 있는 청소년 축구대회가 관중은 비교적 적어도 골수 축구팬들과 전문가들에게 주목받는 이유다. 조영철에게 무너진 일본은 세계대회 티켓만 놓친 것이 아니다. 골잡이의 계보를 이어갈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는 것이 더 큰 충격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기분 좋게 준결승에 오른 우리 선수들은 중국을 승부차기 끝에 물리치고 올라온 우즈베키스탄과 오는 11일 밤 같은 장소에서 결승 진출권을 놓고 다투게 되었다.

덧붙이는 글 ※ 2008 AFC 19세이하 축구선수권대회 8강 토너먼트 결과, 8일 사우디아라비아 담맘

★ 한국 3-0 일본 [득점 : 유지노(21분,도움-조영철), 조영철(83분), 최정한(90+1분,도움-김보경)]

◎ 한국 선수들
FW : 조영철, 김동섭(87분↔최정한)
MF : 김보경, 문기한, 구자철, 유지노
DF : 윤석영, 김영권, 오재석(71분↔홍정호), 정준연(74분↔서용덕)
GK : 김승규

◇ 준결승 일정
한국 - 우즈베키스탄(11일 밤 10시 5분)
조영철 청소년축구 AFC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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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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