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쁜 것들 묻어버리고 싶다... 예쁜 사람들을 왜 묻어버리고 싶을까요. 사랑과 관심이 불공평하기 때문이죠. 자연스럽게 받고 싶은 사람들의 애정을 그녀는 받지 못하여 황당한 일들을 벌이게 되네요.

▲ 이쁜 것들 묻어버리고 싶다... 예쁜 사람들을 왜 묻어버리고 싶을까요. 사랑과 관심이 불공평하기 때문이죠. 자연스럽게 받고 싶은 사람들의 애정을 그녀는 받지 못하여 황당한 일들을 벌이게 되네요. ⓒ 모호필름

영화 배경이 중고등학교인데 18세 이상 관람가라 처음부터 심상치가 않네요. 18세 이상이라면 ‘야한 장면’이 나오거나 ‘잔인한 장면’이 나온다는 얘기인데, 영화포스터를 봐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지요.

 

외국과 달리 섹스보다는 폭력에 너그러운 한국이지요. <미스 홍당무> 포스터를 보면 ‘이쁜 것들 다 묻어버리고 싶다’는 글이 있듯이 주인공이 삽을 들고 예쁜 여성들을 다 묻어버리는 폭력 영화인가 엉뚱한 추측을 하면서 보게 되었네요.

 

이 영화는 29살 러시아어 교사 양미숙(공효진 분)이 동료교사 서종철(이종혁 분)을 짝사랑하는데, 애정의 라이벌 동료교사 이유리(황우슬혜 분)와 서종철의 중학생 딸 종희(서우 분)가 얽히면서 일어나는 유쾌발랄한 이야기에요. 모처럼 제대로 관객들 크게 웃기며 재미있는 생각거리들을 던져주는 잘 만든 코미디 영화네요. 

 

비상식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어

 

영화의 주인공 양미숙은 영화 초반부터 정말 삽질을 하지요. 더 압권인 것은 삽질을 하면서 서종철에게 마음을 표현 하는 거예요. 말 그대로 ‘삽질’을 하고 있는 셈이지요. 처음부터 예사롭지 않은 낌새를 보여주는 양미숙은 갈수록 대단하지요.

 

집 장만한다고 교무실에서 먹고 자면서 단벌로 생활하는 그녀는 막무가내 성격에다 툭하면 얼굴이 빨개지는 안면홍조증까지 그야말로 비호감 그 자체지요. 꽁한 구석이 있고 황당하고 희한한 행동을 일삼는 그녀는 영화 안에서 냉대 받지만 관객에게 묘한 공감대를 불러일으키죠.

 

그녀의 특이성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사회관계에서 만들어졌으니까요. 고아로 자랐고 학창시절 때 왕따를 당한 그녀는 사람관계가 어수룩하고 자기 이름처럼 남과 소통하는데 미숙한 사람이지요. 그녀가 벌이는 이상한 행동들은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표시이기에 관객들은 양미숙을 이상한 사람으로만 보지 않게 되요.

 

영화에서 “비상식적인 행동을 할 때는 그런 이유가 있잖아요”라는 대사가 두 번이나 나오는며 양미숙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지요. 양미숙의 비상식은 ‘사랑받고 싶다’의 서투른 표현방식이기에 연민과 공감을 낳지요. 나아가 그녀의 비상식이 이유가 있듯이 모든 사람들의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걸 이해하게 되네요. 

 

14세 소녀들의 성지식, 18세 이상 관람가?

 

"저도 있어요. 저에게 관심을 주세요." 왕따 양미숙은 친구들이 사진을 같이 찍어주지 않고 막아서기에 사진찍을 때 뛰어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죠. 아무도 신경 안 쓰는 양미숙을 챙기는 담임 서종철을 그녀는 사랑할 수밖에 없지요.

▲ "저도 있어요. 저에게 관심을 주세요." 왕따 양미숙은 친구들이 사진을 같이 찍어주지 않고 막아서기에 사진찍을 때 뛰어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죠. 아무도 신경 안 쓰는 양미숙을 챙기는 담임 서종철을 그녀는 사랑할 수밖에 없지요. ⓒ 모호필름

양미숙이 종희와 함께 이유리와 서종철 사이를 훼방하는 모습은 무척 재미있지요. 서종철로 접속하여 이유리에게 음란채팅을 시도하는데 여기서 인상 깊은 것은 종희가 중학생이라는 것이지요.

 

지지난해 회식자리에서 술에 취해 일어난 서종철의 별 일 아닌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여 자신을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양미숙과 다르게 중학생 종희는 생각은 비뚤어져있어 왕따를 당하지만 성에 있어서는 훨씬 능숙하지요.

 

한국 사회는 청순하고 순결한 십대소녀에 대한 환상이 있지요. 소녀들은 성을 모르는 중성존재가 되길 원하여 국민여동생이란 칭호를 붙이며 밝고 귀엽기만을 바라죠. 그래서 여성 아역스타 출신들은 그 인상에서 벗어나려고 20대가 되면 과감히 옷을 벗지요. 드러난 몸매만큼 자신도 여성임을 알리려고.

 

십대들에게 ‘난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표정을 지으며 ‘때 묻지 않길’ 바랄 수 없지요. 성에 눈 떠서 알 것 다 아는 소녀들에게 시대에 맞는 적절한 이미지가 필요하네요. 영화에서 14세 소녀가 사용하는 말들이 18세 이상 관람가가 되는 상황은 얼마나 우스운지요. 그만큼 한국 사회의 성의식 수준과 섹스검열은 얼마나 고리타분한지요. 

 

산뜻한 여성 인물들이 영화 재미를 높여

 

멍청한지 순진한지 “전 가만히 있는데 자꾸 전화가 와요.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라며 불쌍한 표정을 짓는 이유리는 영화 처음에는 청순하고 새침한 인상이지요. 양미숙이 정말 ‘묻어버리고 싶은’ 인물이지요. 그런 그녀는 알고 보면 남성이 정복하고픈 여성이 아니라 자신의 성욕에 충실한 여성이에요.

 

음란채팅 처음에는 무섭다고 하다가 나중에는 카마수트라를 보며 밤새는 이유리, 급기야 무릎 꿇은 채 셔츠 단추를 풀면서 라이터를 러시아말로 끈적대게 되뇌지요. “사랑하는 남자랑은 두 손 꼭 잡고 잠만 자는 게 소원이에요”라며 혼전 순결한 척하던 그녀는 서종철과 자러 나갔다가 엉뚱한 사람과 외박도 하네요. 

 

이유리는 서종철과 그 가족을 뺏는 팜프파탈이 아니라 술마시면 가끔 다른 남자랑도 자고 싶은 평범한 여자로 그려지죠. 또 외계인 같은 비련의 주인공이 아니라 돌아보면 주변에 있음직한 지구인으로 나와 관객들에게 큰 호감을 얻네요.

 

종희의 엄마 성은교(방은진 분) 또한 상당히 신선한 인물이지요. 그녀는 온몸에 깁스를 하고도 8살 어린 서종철의 마음을 빼앗을 정도로 매력 있지요. 밸리댄스 강사를 하며 경제력도 있는 그녀는 이혼하겠다는 남편을 보며 길길이 날뛰지 않아요.

 

깔끔한 외모만큼 영화 막판에 이루어지는 ‘끝장토론’을 깔끔하게 마무리 지으며 서종철을 챙겨오는 그녀는 끝내주지요. 남성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삶과 주체성이 확실한 그녀는 남성이 반성하고 돌아가고 싶은 멋진 여성이네요.

 

날이면 날마다 오는 영화가 아니야

 

영화는 재미있어야 해요. 영화를 보는데 재미가 없다면 자꾸 다른 생각이 나면서 하품만 나기 십상이죠. 영화를 소개해준 사람에게 속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날려버린 돈과 시간이 아까워 기분이 좋지 않게 되지요.

 

영화의 재미는 탄탄한 줄거리와 감독의 연출, 배우들의 연기가 맞아떨어져야 나와요. 거기에 깊이가 녹아있어 영화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면 금상첨화지요. <미스 홍당무>는 이 세 가지가 다 갖추면서 독특하면서 공감 가는 인물들을 잘 살려냈네요.  

 

요즘 경기침체에다 잇달아 터지는 불쾌한 일들로 저기압인 분들이 많을 거예요. 이 영화를 보면서 오랜만에 목 놓아 웃어보는 것은 어떤지요. 찌푸린 사람들의 얼굴을 확 펴주는 영화가 왔네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씨네21 개인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10.22 08:21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씨네21 개인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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