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가좌동에서 만난 이정희 선수. 밝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서울 가좌동에서 만난 이정희 선수. 밝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 곽진성

11월 초, 서울 가좌동의 한 체육관에서 만난 이정희양(19·홍익여자디자인고)은 발랄하고 풋풋한 기운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웃는 모습이 예쁜 만 열아홉 살, 고3 소녀였다.

하지만 이정희양은 겉으로 보이는 여린 모습 이면에 강함을 꽁꽁 숨겨둔 모양이다. 알고 보니 그는 격하디격한 프로 격투기 무대(무에타이·킥복싱)의 플라이급 챔피언이었다.

어린 나이에 이룬 챔피언이란 이력은 특별해 보인다. 하지만 열아홉 그의 꿈은 단지 챔피언이라는 이름에만 머물지 않았다. 이정희는 격투기 챔피언 타이틀을 반납하고 새로운 꿈인 세계 최고의 우슈선수를 위해 비상을 시작하고 있다.

그렇기에 문득 궁금했다. 과연 열아홉 이정희의 '우슈도전기'에는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을까? 체육관에서 훈련 중인 이 선수를 만나 그 특별한 사연을 들어보기로 했다.

발레리나 지망생, 격투기에 발을 내딛다

1998년, 당시 초등학교 1학년생인 그는 발레를 2년 넘게 배우던 발레리나 지망생이었다. 발레 대회에서 입상을 한 적도 있었기에 주변 사람들은 분명 그가 아름다운 발레리나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발레리나를 꿈꾼 이정희에게 격투기가 우연히 다가왔다. 2006년 1월, 살을 빼고자 하는 순박한 동기(?)로 격투기를 시작했지만 점차 그 매력에 빠져든 것이다. 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한다.

"처음에 운동을 했을 때는 너무 힘들어서 오래 못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계속 하게 되더라고요. 땀 흘리면서 하는 격투기의 특별한 매력 때문이라고 할까요?"

이정희는 격투기에 소질이 있었다. 발레를 배웠기 때문에 나올 수 있던 높은 상단차기는 보는 이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정희의 발차기 실력을 본 전증남(38) 관장이 말했다.

"정희야, 너 격투기 선수 한번 해볼래?"

이정희의 부모는 혹여나 자녀가 다칠까 염려되어 반대를 했다. 하지만 선수로서 소질이 있다는 전 관장의 설득에 이내 마음을 바꿔 허락했다. 덕분에 친구들과 쇼핑하기 좋아하고, 놀러다니기를 좋아하던 평범한 소녀의 미래는 180도 바뀌게 되었다. 험난한 격투기 선수로의 입문이 시작된 것이다. 물론 훈련은 만만치 않았다. 스파링 도중 날아오는 주먹과 발차기는 눈물이 쏙 날만큼 아팠기 때문이다.

"처음 훈련을 시작할 때는 아파도 악착같이 버텼는데, 나중에는 얼마나 아픈지 아니깐 맞을때 울고 아파하고 그랬어요. 관장님의 따뜻한 격려가 없었다면 아마 버틸 수 없었겠죠?"

천사표로 링 위에서 살아남기

 열아홉 격투기 챔피언 이정희 선수

열아홉 격투기 챔피언 이정희 선수 ⓒ 곽진성


그런 고된 훈련 끝, 드디어 꿈에 그리던 격투기 무대 데뷔전 날이 왔다. 첫 데뷔전이기에 지레 겁먹고 약해질 만도 하건만 이정희는 오히려 링 위가 더 편안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가짐 덕분일까? 그는 당당히 상대와 맞서 첫 데뷔전을 승리로 이끌어낸다.

첫 승리를 따내자 용기가 생겼다. 어떤 상대와 대련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이정희는 얼마 후 바로 용기를 내서 챔피언 타이틀전에 도전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상대는 유명한 여성 격투기 선수 김태경(26). 타이틀전 시합 양상은 이정희의 바람과는 반대로 흘렀다. 막강한 상대 앞에 이정희는 일방적으로 몰리는 경기를 하고 만 것이다. 결국 시합은 완패로 끝이 났다. 상대 선수의 강력한 공격 앞에 이제 막 격투기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적수가 되지 못한 것이다

그 패배는 이정희에게 쓴 약이 됐다. 자신의 약점을 제대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의 약점이란 상대를 제대로 타격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격투기에 입문한 지 얼마 안 되었다는 것과 그의 천사표 성격이 문제였다. 경험 미숙과 착한 성격은 사회에선 칭찬받겠지만 링 위에서는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어요. 예전에 한 선수와 경기를 하는데 제가 진 줄 알았어요. 그래서 경기 종료 후에 판정이 나기 전에 그 선수에게 언니 제가 너무 아프게 해서 미안해요. 죄송해요. 연거푸 말해버렸어요. 그런데 연장 판정이 나버린 거에요. 그때의 난감한 상황이라니."

문제점을 알았기 때문에 그를 고치기 위한 훈련이 불가피했다. 야생 같은 링 위에서 선수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 전 관장은 지옥훈련에 돌입했다. 하루에 10라운드를 뛰고 일정한 기간을 두고 계속 스파링을 붙인 것이다. 그렇게 몇 달간 이를 악문 끝에 이정희는 자신의 문제점을 고칠 수 있었다. 상대를 보면서도 마음이 약해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 그에게 다시금 기회가 찾아왔다. 2007년 4월 21일 김태경 선수와 무에타이 타이틀전을 하게 된 것이다. 한번 졌던 상대와 다시금 경기를 치른다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했다. 심장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두려움을 이겨내야 하기 때문이다.

김태경 선수와 재경기를 앞둔 이정희가 바로 그랬다. 하지만 그는 두려움을 극복했다. 상대인 김태경 선수에게 한차례 다운을 뺏는 선전을 펼치며 3대0 심판 전원 일치 판정승을 얻었다. 그렇게 챔피언이 됐다. 이후 이정희는 계속되는 연승 행진을 펼치며 무에타이·킥복싱 2체급 챔피언이라는 빛나는 영예를 가지게 된다.

챔피언의 새로운 도전 '우슈'

 이정희 선수

이정희 선수 ⓒ 곽진성

고등학생 격투기 챔피언 이정희. 그런데 챔피언이란 화려한 수식어도 잠시, 이정희는 또 다른 고민을 해야 했다. 그 고민이란 대학 진학과 관련된 것이었다. 이정희가 배우고 있는 무에타이와 킥복싱으로는 대학 진학의 길이 없었다. 2007년, 고 2가 된 이정희에게 이 문제는 자신의 미래와 관련된 것이기에 중요했다.

결국, 고민 끝에 우슈라는 무술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우슈는 전국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관련 분야 대학에 갈 수 있었다. 결국 전증남 관장의 권유로 이정희는 우슈에 도전장을 내밀게 되었다.

하지만 우슈 선수가 되면 다른 분야의 격투기 대회에 나갈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우슈협회에서 다른 대회 출전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새로운 무대의 도전을 위해 이정희는 챔피언 벨트를 반납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챔피언 타이틀을 반납할 때 그는 눈물을 글썽였다.

"땀과 노력이 깃든 챔피언 벨트였던 만큼 아쉬움이 컸죠. 하지만  이제 새로운 도전인 우슈에서 최고의 위치에 서고 싶습니다."

그렇게 이정희는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였다. 도전자가 된다는 두려움도 극복하고 앞을 향해 전진했다.

12월 세계청소년 우슈 선수권에서 메달을 목표로

▲ 격투기 챔피언 이정희 선수 ⓒ 곽진성


무에타이와 킥복싱 챔피언이었던 이정희는 '우슈'에서도 군계일학의 실력을 선보였다. 2007년부터 출전한 3개의 전국 규모의 우슈 대회 중 2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렸기 때문이다. 

청소년 우슈 대표가 된 이정희는 파죽지세로 2007년 7월 아시아 청소년 우슈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기에 이른다. 당연히 목표는 우승이었다. 하지만 노련한 베트남 선수에 덜미를 잡혀 동메달에 그치고 만다. 그는 자신을 이긴 베트남 선수보다는 중국 선수들의 기량에 놀랐다. 자신을 이긴 상대를 너무나 손쉽게 제압하는 중국 선수의 기량에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때, 이정희는 세상의 벽은 높고 고수는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그는 중국 선수와 맞붙는 세계 청소년 우슈 선수권 대회를 앞두고 특훈에 열중하고 있다. 12월 7일 발리에서 열리는 세계 우슈 선수권 대회는 명실상부 세계 청소년 우슈 고수들의 실력의 장이다. 거기에 이정희가 한국 대표로 참가한다.

'힘이 장사고, 기술도 뛰어난' 중국 우슈선수들을 상대하기 위해 이정희는 특별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자신보다 배나 몸무게가 더 나가는 남자선수들과 스파링을 하며 또 등타라는 우슈 특유의 기술을 연마하는 중이다. 중국 선수들과의 일전을 준비하며 그는 마음을 다잡고 있다. 현재 컨디션은 최고조다. 지난 10월에 열린 전국체전에서는 우슈 52Kg급 1위(시범경기)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이런 상승세로 세계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이정희의 목표는 이번 세계 청소년 우슈 선수권대회에서 중국의 벽을 높은 벽을 깨고 값진 메달을 따는 것이다.

"세계 청소년 우슈 선수권 대회에 나가서 꼭 메달을 따고 싶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하고자 한 일을 꼭 이루어내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세계 선수권을 후회 없이 치른 후, 목표로 하는 대학에 입학해서 쇼핑과 연애 등 대학생활을 즐기고 싶다는 그의 꿈. 이정희는 그 빛나는 꿈을 향해서 전진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제3회 전국 대학생 기자상 공모전 응모기사입니다.
이정희 챔피언 격투기 우슈 플라이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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