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주체제를 굳히고 있는 '격투머신' 세미 슐트(35·네덜란드)를 제외한 현 K-1의 '넘버2'를 꼽아보라면 누구를 지목하겠는가?

 

최근 들어 슐트에게 막혀 정상의 자리는 차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한때 2년 연속 파이널 우승을 차지했을 정도로 놀라운 성적을 기록했던 레미 본야스키(32·네덜란드)를 비롯해 차세대 제왕 후보로 꼽히는 바다 하리(24·모로코) 등이 강력한 후보일 것이다.

 

워낙 최근 슐트의 기세가 막강해서 그렇지 이들은 과거의 강자들을 하나둘 거꾸러뜨리며 K-1에서 가장 위협적인 파이터들로 군림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팬들을 안타깝게 하는 요소들도 있으니 다름 아닌 제롬 르 밴너, 레이 세포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설적인 강호들이 서서히 하락세를 보이며 앞서 언급한 2인자 그룹에서 점차 밀려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때는 K-1의 세대교체를 가로막는 원흉(?)으로까지 여겨졌던 그들이지만 최근 들어 뜻밖의 패배까지 허용하며 흐르는 세월 앞에서 점차 주연의 자리를 내어주고 있는 듯한 행보를 걷고 있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처럼 여전히 이들은 타파이터들이 그다지 붙고 싶지 않은 껄끄러운 존재임은 분명하나 예전처럼 안정적으로 8강, 4강을 넘나들던 모습들과 비교해서 위력이 현저하게 감소된 것만큼은 부정하지 못할 듯 하다.

 

하지만 그들과는 반대로 되려 예전 못지 않게 강한 모습으로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듣고 있는 노장파이터가 있으니 다름 아닌 '네덜란드의 벌목꾼' 피터 아츠(38·네덜란드)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앞서 언급한 본야스키나 하리 등과 더불어 K-1의 '넘버2'를 다툴만한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파이널 준우승을 비롯 벌이는 경기마다 꾸준히 승리를 추가하고 있는 그는 젊은 시절과는 또 다른 파이팅 스타일을 전면에 내세워 슐트의 많지 않은 대항마중 한 명으로 떠오르고 있는 모습. 어찌나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지 상당수 팬들 사이에서는 '전성기 때와 비교해 언제가 더 강한가'하는 논쟁까지 일어나고 있을 정도이다.

 

폭발적 인파이팅으로 대표되던 젊은 날의 '폭군' 아츠

 

 젊은날의 아츠는 상대의 공격에 더 강한 공격으로 맞불을 놓는 전형적인 인파이터였다

젊은날의 아츠는 상대의 공격에 더 강한 공격으로 맞불을 놓는 전형적인 인파이터였다 ⓒ 남궁경상

'폭군', '네덜란드의 벌목꾼', '20세기 최강의 킥복서' 등 피터 아츠에게는 그 어떤 파이터보다도 터프하고 과격한 별명들이 따라다녔다. 격투가치고는 다소 유약하게 생긴 모습에 비춰봤을 때 조금 과하다 싶기도 하지만 그의 파이팅 스타일을 보면 정말이지 누구보다도 그런 닉네임에 어울리는 선수라는 것을 금새 느끼게 된다.

 

지금도 여전히 인파이팅을 구사하는 편이지만 젊은 시절의 아츠는 그야말로 '전진본능'밖에 모르는 불도저같은 인물이었다. '하이퍼 배틀 사이보그' 제롬 르 밴너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전진과 공격의 연속을 보여주곤 했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밴너는 완전히 클린치를 무시한 하드펀처형이었다면 아츠는 그나마(?) 클린치를 사용하면서 좀더 공격옵션이 다양했다는 정도일 것이다.

 

끊임없이 밀어붙임에도 상대 선수들은 아츠의 빈틈을 찾아서 공략하는 것을 대단히 어려워했다. 워낙 화력이 강력하고 공격무기가 다양해 자칫 공격으로 맞붙을 놓았다가는 되려 자신이 나가떨어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로우킥, 미들킥, 하이킥 등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킥 세례에 상대의 호흡을 일시적으로 끊어버리는 살인적인 죽창(竹槍) 펀치, 그리고 짧은 거리에서 연속적으로 터지는 숏카운트 능력까지…. 어느 하나를 정해서 대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구사하는 오펜스 테크닉 마다 모두 강력했으며 연속적으로 터져 나가는 컴비네이션은 완벽한 방어가 아예 불가능하다는 평가마저 있었다. 긴 도끼, 짧은 도끼, 장창, 단검, 쇠파이프 등 아츠의 온몸은 그야말로 'K-1의 병기집합소'였다.

 

특히 하이킥 같은 경우는 '역대최강'이라는 극찬이 당연시 될 만큼 가장 강력한 아츠의 필살기였으며 '벌목꾼'이라는 별명도 바로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더욱이 아츠의 공격 대부분은 일반적인 선수들과 달리 그 타이밍을 포착하기 무척 어려워, 일단 기선을 뺏긴 상황에서는 방어가 극히 힘들었다. 클린치 상황에서 떨어지는 순간 느닷없이 하이킥이 작렬하는가 하면 발차기를 막으려는 찰나, 명치를 향해 정확한 주먹이 꽂혀 들어온다.

 

주춤주춤 백스탭을 밟는 순간에도 '어떻게 저런 자세에서 이런 식의 공격이 나올까?' 싶을 정도로 큰 타격이 터져 나와 함부로 치고 들어가기도 용이치 않다. 더욱이 이 모든 공격이 거리를 불문하고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시간이 지날수록 그 까다로움은 극에 달할 수밖에 없다.

 

하체가 약한 선수는 로우킥으로, 안면가드가 자주 열리는 선수는 펀치로 맞춤형 공격까지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아츠는 그야말로 '천가지 공격옵션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너무도 천재성을 타고나서였을까? 아츠는 지나치게 공격에만 집중한 나머지 가끔 근접거리에서 카운터펀치를 맞고 나가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주로 자신이 공격을 들어가다가 역으로 당하는 상황이 주를 이뤘는데 이러한 장면을 연출한 상대들의 공통점은 접근전에서의 펀치능력이 출중한 '하드펀처' 또는 '테크니션 펀처'들이었다는 점이다.

'철완(鐵腕)’마이크 베르나르도, '싸움반장' 제롬 르 밴너, '총알' 스테판 레코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들로 이들은 모두 한차례 이상씩 아츠에게 커다란 넉아웃 패배를 안겨준 바 있다.

 

수 읽기와 견고한 디펜스로 무장한 '베테랑' 아츠

 

 나이를 먹은 아츠는 파워와 스피드에서의 감소를 풍부한 경험과 다양한 전술소화 능력으로 커버하며 '더 까다로워 졌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나이를 먹은 아츠는 파워와 스피드에서의 감소를 풍부한 경험과 다양한 전술소화 능력으로 커버하며 '더 까다로워 졌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궁경상

사실 무협소설에서 나오는 고대무공도 아니고, 격투스포츠에서 젊은 시절과 노장시절의 강함을 비교하는 자체가 넌센스일지도 모른다. 특정종목에서 오래있다 보면 그 깊이를 이해하는 눈은 세월과 함께 더 높아질지 모르나 가장 기본이 되는 스피드와 파워 그리고 체력문제 등 육체적인 능력은 당연스레 떨어지기 마련이다.

 

몸 관리를 아주 잘하는 파이터의 경우 노장이 되어서도 좋았던 기량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케이스도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한창 전성기 때보다 낫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아츠같은 경우는 그 정도의 차이가 매우 좁게 느껴지는데다가 상당부분에서는 더 나은 상황까지도 벌어지고 있어 팬들 사이에서 논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단 눈에 들어오는 임팩트에서는 확실히 젊은 시절의 아츠가 더욱 강력하고 파괴력이 넘쳐 보인다. 오로지 힘으로만 밀어 부쳐도 당할 자가 거의 없었던 예전에 비해 현재는 그 정도까지는 아닌 모습이며 단 한방으로 상대를 박살내는 경우도 그다지 잦지 않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확연하게 나아진 부분이 있으니 다름 아닌 안정감이다. 강력하게 상대를 때려부수면서도 간간이 역전패를 허용하던 시절과 달리 근래의 아츠에게서는 좀처럼 경기가 뒤집히는 광경을 찾아보기 힘들다.

 

일단 페이스를 잡아나가면 야금야금 상대의 데미지를 갉아먹어 가는데, 그러다 빈틈이 생기면 여지없이 날카로운 공격을 꽂아 넣어 승부를 끝내버린다. 이전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강하게 두들겨댔다면 최근에는 상황에 따라 강중약을 조절하고 있다.

 

이렇듯 스스로 흐름을 타는 모습인지라 자연스레 수비도 훨씬 나아졌고, 막무가내로 들어가는 경우도 드물어 한방에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는 경우도 찾아보기 어렵다. 클린치능력 및 펀치테크닉 등 접근전에서 경기를 풀어 가는 내용도 매우 좋아져 상대의 특성에 맞게 공격패턴도 더욱 다양해졌다.

 

그래서일까? 펀치의 파워나 기술이 좋은 선수들에게 가끔 발목을 잡혔던 과거에 비해 최근의 아츠는 그런 타입에게 되려 더욱 강한 인상마저 보이고 있다. 2005년 오사카 개막전 이후의 행보를 잠깐 살펴보면 아츠는 '하드펀처' 스타일인 마이티 모-제롬 르 밴너-레이 세포에게 모두 어렵지 않게 승리를 거뒀다.

 

아츠는 이들과의 싸움에서 철저하게 펀치거리를 내주지 않은 채 로우킥을 적절하게 잘 활용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되려 자신이 펀치로 압박을 하기도 했다.

 

또 하나 놀라운 점은 이 기간 동안 아츠는 심심찮게 KO승을 거뒀지만 슐트전에서 나온 부상에 따른 불상사를 제외하고는 좀처럼 넉 아웃을 당하지 않았다는 사실로 공격을 넘어선 수비력의 강화가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베테랑 아츠가 보여주고 있는 견고한 안정감의 바탕에는 바로 이러한 디펜스능력과 경기전체를 읽는 시야의 발전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다.

2008.08.26 11:40 ⓒ 2008 OhmyNews
신예와 베테랑 피터 아츠 패기와 노련미 정면돌파와 우회 시대초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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