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중이 돌아왔다. 2000년대 초반 한국영화를 전성기로 이끈 히트작이며, 설경구라는 배우를 주류 영화시장의 가장 확실한 흥행보증수표로 자리매김하게 한 <공공의 적>의 주인공 강철중.

 

속편에 와서는 아예 '공공의 적'이란 제목을 뒤로 물리고 <강철중, 공공의 적 1-1>(이하 <강철중>)을 제목으로 뽑을 정도로, 강철중은 한국영화사에 남을 개성 강하고 인지도 높은 영화 등장인물이다.

 

하지만 <공공의 적>에 열광했던 관객들이 <강철중>에게도 비슷한 지지를 보내줄지에 대해선 다소 의문이다.

 

 <강철중>의 한 장면

<강철중>의 한 장면 ⓒ KnJ 엔터테인먼트

 

<공공의 적>vs <강철중>, 같은 점과 다른 점

 

<강철중>은 전작인<공공의 적>의 설정을 대부분 그대로 이어받았다. <공공의 적>으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 철중은 엄 반장(김신일 분), 김영수 형사(김정학 분)와 함께 여전히 강력반에서 근무하고 있고, 산수(이문식 분)와 용만(유해진 분)도 전편과 같은 등장인물로 영화에 등장한다.

 

달라진 점은 철중의 집안 상황에 대한 묘사가 대폭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전편에서 철중의 두 딸로 잠시 등장했던 '아름이' '다운이' 대신 '미미'라는 당돌한 아이가 철중의 딸로 등장하고, 철중의 어머니 역할 역시 무명 배우에서 김영옥이라는 제법 인지도 있는 배우로 바뀌었다. 전편에서 "이 썩을 놈아"라며 철중을 몰아붙이던 괴팍한 모습과는 달리 인자하기 그지없는 전형적인 어머니 상으로 변한 부분도 주목을 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를 겪은 것은 주인공 강철중이다. 범인 검거는 뒷전으로 미룬 채 조폭을 두드려 패고 마약을 갈취해 은닉하는 등 '깡패보다 더 깡패 같은' 형사였던 철중의 모습은 어느덧 딸과 홀어머니를 모실 전세방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전형적인 소시민으로 변해있다.

 

걸쭉한 욕지거리는 일견 비슷해 보이지만, 전편의 그것이 반사회적 인물이 주류사회에 속한 불특정다수를 겨냥해 내뱉는 독설이었다면, <강철중>에서의 욕설은 한 집안을 책임져야하는 무능한 가장의 푸념 정도로 그 위상이 격하(?)되었다.

 

아닌 게 아니라, <강철중>의 철중은 <공공의 적>의 강철중 형사와 <공공의 적2>의 강철중 검사를 합쳐놓은 듯한 인상을 풍긴다. 강철중 특유의 '꼴통스러움'이 잘 묻어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전편의 강철중을 기억하고 있는 관객들은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 

 

왜 이런 변화가 온 것일까? 애초에 <공공의 적>의 영광을 재현하려던 것이 목적이었다면 응당 원래의 강철중이라는 인물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옳지 않았을까?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공공의 적>을 계승한다는 것은 강철중이란 인물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강철중> 포스터

<강철중> 포스터 ⓒ KnJ 엔터테인먼트

 

강철중이란 인물의 한계

 

<공공의 적>마지막 부분을 기억하는가? 돈을 위해 아버지를 살해한 조규환을 처치한 철중은, 늘 '삥'을 뜯어왔던(혹은 그랬을 것이라 추측되는) 과일트럭에서 돈을 내고 바나나를 구입한다. '얘가 왜 이러나'하며 고개를 갸웃하던 노점상에게 철중은 씩 웃으며 손을 흔들어준다. 

 

<강철중>은 전편인 <공공의 적>종료 후 시간이 흐른 후의 모습을 보여주는 설정이다. 따라서 <강철중>에서 그려진 철중의 캐릭터는 <공공의 적> 대부분 분량을 차지했던 포악한 비리 경찰의 모습이 아니라, 영화 후반부에 나타난 '개과천선한' 철중의 모습을 따올 수밖에 없었다.

 

<강철중>의 한계가 바로 이것이다. 철중은 이미 전편에서 자신보다 더 나쁜 조규환이라는 인물을 단죄하는 과정을 통해 일생 일대의 내적 성장을 경험했다. 그런 철중에게 전편을 뛰어 넘는 캐릭터상의 갈등을 부여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시 말하면, 강철중이란 인물은 이미 전편에서 등장인물로서의 최대 효용가치가 소진되어 버린 상태며, 그 이상 강철중을 이용하는 것은 전편보다 못한, 차선을 지향하는 것에 머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따라서 <강철중>이 전편 못지않은 재미를 주려면, 등장인물보다는 탄탄한 짜임새를 미덕으로 삼는 이야기 구성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문제는 <강철중>을 집필한 장진 감독은 '구성 중심의 영화'보다는 '인물 중심의 영화'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공공의 적>의 한 장면

<공공의 적>의 한 장면 ⓒ 시네마서비스

 

<강철중>의 구성과 등장인물의 문제점

 

실제로 <강철중>의 구성은 곳곳에 다소 허술함을 보인다. 대기업 회장이라는 직책에 걸맞지 않게 이원술(정재영 분)의 사체 처리 방식은 다소 어설프다. 깡패 학생들도 거성그룹의 함정에 너무나 쉽게 빠져드는 감이 있고, 경찰들도 별다른 고생 없이 사건을 풀어나간다. 철중이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열을 내도, 관객에게 그 답답함이 잘 전해지지 않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물론 영화라는 것이 완벽한 구성을 갖춰야만 관객에게 재미를 주는 것은 아니다. 유머나 볼거리 혹은 좋은 이미지 하나 만으로도 줄거리의 허술한 곳을 상쇄할 수 있는 것이 영화의 힘이다. 장진의 영화에서라면 '살아 숨쉬는 등장인물'이 그 역할을 한다. 하지만 웬일인지 그런 장진의 힘조차 <강철중>에서는 그다지 발휘되지 못했다.

 

영화는 주인공 이원술과 문성근이 맡은 '태산'역을 제외하면 딱히 두각을 나타낼 만한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우선 전편에서 각기 다른 성격으로 늘 티격태격 하면서도 범인을 잡겠다는 의지가 통해 좌충우돌 굴러가던 강력반 형사들이 <강철중>에 와서는 서로 비슷비슷해진 느낌이다. 반장의 말투나 행동은 어딘지 강철중과 닮아있고, 정보과 출신의 '바른 생활 사나이' 김형사 역시 어느덧 '꼴통' 형사가 되어 있다. 반대로 철중은 착해져 있다. 이것은 등장인물 간의 충동을 막는 효과를 가져왔고, 결과적으로 전편만큼의 활기를 찾아 볼 수 없게 만들었다.

 

산수와 용만이라는 훌륭한 인물이 다시 등장하지만, 전체 줄거리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카메오 정도로 머문다. 또한 용만이 구사하는 대부분의 유머가 전편을 패러디하는 것으로 일관했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깡패 학생들 역시 쉽게 구별이 안 갈 정도로 비슷비슷하고, 원술의 오른팔 격인 칼잡이도 그 비중에 비해 무게감이 떨어진다. 변호사의 역할도 불분명하긴 마찬가지다. 이렇듯 <강철중>에서 등장인물들은 <공공의 적>에서 영화 내내 등장했던 개성 넘치는 인물들에 비해 그 매력이 훨씬 떨어진다.

 

어째서 이렇게 구성과 인물의 문제가 동시에 벌어진 것일까?

 

 <강철중>의 한 장면

<강철중>의 한 장면 ⓒ KnJ 엔터테인먼트

 

속편의 딜레마

 

<강철중>은 <공공의 적>에서의 철중과 그 주변 인물들을 대부분 존속시키고, 산수와 용만까지 출연시켜 전편의 패러디 상황을 만들어 내며, 결국 철중이 악당을 벌하고 사회정의를 이룩한다는 줄거리상의 조건들을 안고 출발한다. 이렇듯 이야기가 전개될 방향이 상당부분 정해진 상태에서 등장인물 표현은 필연적으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편인 <공공의 적>은 주인공 철중은 물론이고, 주변 인물들의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등장인물'이 빛나는 영화였다. 시리즈물의 특성상 전편과의 연계를 포기하고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즉, 제약에도 불구하고 인물 부분은 여전히 <강철중>에서 중요한 요소를 차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위에서 설명한 강철중이란 인물의 한계라는 또 다른 제약이 등장해 다시 구성을 강조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문제가 한층 더 복잡해지는 것이다. 결국 구성과 등장인물, 양 측면을 골고루 배려해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본 것이 현재의 <강철중>이다.

 

 <강철중>의 한 장면

<강철중>의 한 장면 ⓒ KnJ 엔터테인먼트

 

시리즈물의 이점

 

얼마 전 강우석 감독은 "신작을 만드는 것보다 시리즈물을 만드는 것이 몇배는 힘들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 역시 위에서 말한 제약조건과 그로 인한 표현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리즈물을 내놓는 것은 그만큼 시리즈물에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관객과의 교감이다. 많은 관객들이 한국 영화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은 <공공의 적>을 기억하고 있다. 그 강철중이 다시 스크린에 모습을 보인다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에게 일정 부분 정서적 만족을 줄 수 있고, 극장으로 오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화는 강철중의 존재만으로 상당한 흡입력을 발휘하고 있다. 관객들은 전편과 연계된 장면에서 흥미를 느끼며 웃음을 터뜨린다. 여기에 한층 올라간 배우들의 인지도와 변함없는 설경구의 연기력 또한 관객들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다소간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강철중>이 현재 한국 영화시장에 큰 기대주인 것만큼은 틀림없다.

2008.06.21 09:25 ⓒ 2008 OhmyNews
강철중 공공의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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