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시범 경기가 한창이던 지난 3월 중순, KIA 타이거즈를 응원하는 후배와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그 후배는 서울에 거주하지만, 주말이면 광주 원정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KIA의 열성팬이다. 야구 이야기로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후배에게 짓궂은 질문 하나를 던졌다.

 

"만약 이번 시즌에 KIA의 좋은 성적과 이종범의 부활 중 하나를 택하라면 뭘 고를거니?"

 

그러나 당황하는 후배의 표정을 보려던 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후배는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내 '우문'에 '현답'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야구 기사를 쓴다는 사람이 뭐 그런 걸 물어요. 이종범이 부활하면 KIA는 당연히 좋은 성적을 내는 거 아닙니까."

 

그로부터 2개월이 지났고, 후배의 대답은 '예언'이 됐다. 시즌 개막 후 최하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던 KIA가 최근 5연승을 거두며 탈꼴찌에 성공했고, 그 중심엔 부활한 '바람의 아들' 이종범이 있었다. 

 

'탈꼴찌'보다 반가운 이종범의 부활

 

 이종범은 12일 현재 타율 .260 10타점 2도루를 기록하고 있다.

이종범은 12일 현재 타율 .260 10타점 2도루를 기록하고 있다. ⓒ KIA 타이거즈

지난해 타율 .174 1홈런 18타점에 그치며 생애 최악의 시즌을 보낸 이종범은 명예 회복을 위해 어느 해보다도 많은 땀을 흘렸지만, 시범 경기에서 타율 .152로 부진하며 개막전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상대 투수의 유형에 따라 이따금 선발로 출장할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대타나 대주자, 대수비 요원으로 경기 후반에 잠깐 얼굴을 비추는 게 고작이었다. 지난 6일까지 이종범은 타율 .228(57타수 13안타) 4타점에 그쳤고, 이와 맞물려 KIA 역시 9승 22패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

 

이종범이 반전의 기회를 잡은 것은 지난 8일 삼성 라이온즈전. 오랜만에 우익수에 2번 타자로 선발 출장한 이종범은 1-0으로 앞서던 2회말 2사 2, 3루에서 차일목과 김원섭을 불러 들이는 2타점짜리 중전 적시타를 때려 내며 팀의 3-0 승리에 일등 공신이 됐다.

 

인상적인 활약으로 주전 자리를 꿰찬 이종범은 9일 우리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도 3회초 우전 안타로 선제 타점을 기록하며 대승(12-1)을 이끌었고, 10일과 11일 경기에서는 생애 처음으로 1루수로 선발 출장하며 '야구 천재'의 위용을 마음껏 뽐냈다.

 

이종범이 16타수 6안타(타율 .375) 6타점으로 맹활약한 최근 5경기에서 KIA는 모조리 승리를 거뒀고, 9연패를 당한 LG 트윈스에게 최하위 자리를 물려 주며 반격의 기회를 잡았다.

 

KIA의 승리와 직결되는 이종범의 활약

 

 이종범의 웃음이 많아질 수록 KIA가 승리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종범의 웃음이 많아질 수록 KIA가 승리 가능성도 높아진다. ⓒ KIA 타이거즈

이종범의 활약이 KIA의 승리와 직결된다는 '공식'은 5연승을 거둔 기간뿐 아니라 이번 시즌 내내 정확하게 들어맞고 있다.

 

이종범은 이번 시즌 32경기에 출장해 15경기에서 안타를 때려 냈는데, 이종범이 안타를 때려 낸 경기에서 KIA의 승률은 무려 .667(10승 5패)에 이른다. 현재 2위에 올라 있는 한화 이글스(.553)를 훌쩍 뛰어 넘는 수치다.

 

반면에 이종범이 결장하거나 안타를 때리지 못해던 21경기의 승률은 고작 .190(4승 17패). 프로야구 역사상 최악의 팀이었던 원년의 삼미 슈퍼스타즈(.188)에 버금간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확연한 차이다. 다시 말해 이종범이 안타를 때려 내는 날의 KIA는 3연전 중 2경기를 이길 수 있는 강팀이고, 이종범이 침묵하는 날의 KIA는 10경기에서 2승도 채 거두지 못하는 형편없는 팀이 된다는 뜻이다.

 

어느덧 프로 16년차, 만 37세가 된 이종범은 1993년 9월 26일 쌍방울 레이더스전처럼 한 경기에 6개의 도루를 성공시킬 수도 없고, 1994년처럼 한 시즌에 196개의 안타를 몰아칠 수도 없으며 1997년처럼 '30-60 클럽(30홈런 64도루)'에 가입할 수도 없다.

 

팀 내 간판 타자의 자리도 장성호와 이용규에게 물려 준 지 오래다. 그러나 기록에서 나타난 것처럼 이종범의 활약에 따라 타이거즈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시즌 개막 후 한 달 동안 고작 10승도 채우지 못했던 KIA가 순위 싸움에서 새로운 복병으로 떠오르기 위해선 다시 타오르기 시작한 이종범의 '불꽃'이 꺼지지 않아야만 한다.

2008.05.12 17:08 ⓒ 2008 OhmyNews
이종범 KIA 타이거즈 프로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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