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관중석  "별이 그려지고 있다"는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의 말대로 포항 스틸러스는 네 번째 별을 달 가능성이 커졌다. 경기 시작 전 포항 팬들도 별 네 개가 그려진 걸개를 관중석에 내걸었다.

▲ 뜨거운 관중석 "별이 그려지고 있다"는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의 말대로 포항 스틸러스는 네 번째 별을 달 가능성이 커졌다. 경기 시작 전 포항 팬들도 별 네 개가 그려진 걸개를 관중석에 내걸었다. ⓒ 이성필


'족보 없는 축구는 가라!'

지난 4일 오후 포항 스틸야드에서 열린 삼성 하우젠 K리그 2007 챔피언결정 1차전 포항 스틸러스-성남 일화의 경기를 앞두고 관중석 한쪽에 걸린 걸개의 문구다. 1973년 창단한 포항의 역사와 전통은 K리그 모든 구단이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자리함과 동시에 포항 팬들만이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문구이기도 하다.

포항 팬들 "10년 전에는 늘 북적였는데..."

결승 1차전을 앞두고 경기장 밖에서 만난 팬들은 한결같이 구단에 대한 아쉬움을 표출했다. 1992년 포항전용구장 개장 경기부터 관전했다는 윤홍길(48)씨는 "과거의 포항은 모든 것이 완벽했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다. 팀에 알 만한 선수가 누가 있느냐"며 스타 선수 영입에 소극적인 포항 구단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포항 서포터 '마린스'의 백한영(27)씨는 "구단이 적극적으로 팬을 그러모을 지혜가 필요하다. 10년 전만 해도 경기장에 오면 분위기가 늘 시장판처럼 북적였는데..."라고 아쉬워했다.

이런 상황에서 올 시즌 6강 PO 제도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는 포항의 결승 진출과 높은 우승 가능성은 다시 한 번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됐다.

정규리그를 5위로 마친 포항은 6강 플레이오프부터 거침없는 연승 행진을 했고 결승 1차전에서 성남을 3-1로 물리치며 12년만에 네 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릴 기회를 잡았다. 파리아스 감독의 고집과 지도력에 선수들의 응집력이 발휘된 결과물이다.

포항은 1992년 우승 후 15년이 흐르는 동안 수차례 포스트 시즌에 진출해 우승 기회를 잡았지만 모두 결정적인 한 방에 주저앉았다. 그 중 1995년 성남과 결승에서 만나 명승부 끝에 2무 1패로 우승컵을 내준 기억은 많은 축구팬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당시의 기억이 특별한 이유는 당시 스틸야드를 가득 메웠던 관중의 열기가 원정에서도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서포터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홍명보-라데-황선홍-박태하 등 실력 있는 선수들과 홈, 원정을 가리지 않고 포항 팬들이 보여준 열성적인 응원 및 국내 최초의 축구전용구장을 보유한 것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축구 도시로 손색없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잃어버린 12년'이라 표현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1995년 이후 포항의 축구 열기는 서서히 거품 빠지듯 수그러들었다.

포항은 유소년 시스템을 구축하며 선수 발굴에 앞장서고 클럽하우스를 만드는 등 내부적인 체계 구축에는 성공 가도를 달렸다. 그럼에도, 스타 선수의 해외 진출과 유소년 클럽에서 키워 온 선수를 국내 타 구단으로 자의 반 타의 반 뺏겼다. 팬들의 성향 변화도 읽지 못해 축구 열기를 꺼트렸다. 그 사이 수원, 대전은 각각 '축구 수도'와 '축구 특별시'로 성장해 포항을 위협했다.

경기장 밖 풍경  노점상이 몰려 온 포항스틸야드. 상인 백군길씨는 "10년 전 이런 분위기는 당연했다"며 최근 꺼진 축구 열기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했다.

▲ 경기장 밖 풍경 노점상이 몰려 온 포항스틸야드. 상인 백군길씨는 "10년 전 이런 분위기는 당연했다"며 최근 꺼진 축구 열기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했다. ⓒ 이성필


잃어버린 12년을 찾아야

구단의 대회협력담당을 맡고 있는 한명희 단장 겸 사장보좌역은 "10여 년 동안 포항 팬들의 성향은 많이 변했다. 경기장을 찾는 포항시민들 중 대다수를 이루는 포스코 직원들의 연봉도 올라가고 생활여건이 변화했는데 구단이 이런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며 팬들의 냉철한 인식에 동의하기도 했다.

이날 스틸야드에는 2만 875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다. 1만 8700석의 관중석이 초과한 것은 올 시즌 처음 있는 일이다. 출입문마다 전자 계수기를 설치, 관중집계에 허수가 나올 수 없는 점에서 2만의 관중은 고무적인 일이었다. 더군다나 2만 명 이후에는 계수기로 집계가 되지 않아 통로에 서서 보는 인원까지 감안하면 2만 5천의 관중이 스틸야드를 가득 메운 것이다.

들어오지 못해 돌아간 관중도 허다했다. 터미널에서 택시로 스틸야드까지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가 한 시간 반이 걸리기도 했다. 경기장 진입로에는 이중도 모자라 삼중으로 주차해 걸어들어가는 팬들도 있었다.

출입구 근처에 펼쳐진 노점상들은 포항의 축구 열기를 확인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11년 동안 경기가 있는 날이면 항상 노점을 열었다는 백군길(59)씨는 "10년 전 이런 분위기는 당연했다. 2004년 결승에 진출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백씨의 표현대로 이날 노점은 평소의 세 배가 조금 넘는 스물다섯 개가 차려졌다.

암표도 높은 가격에 거래됐다. 유니폼을 입은 관중이 무료입장이었지만 표를 사는 관중도 많았다. 특히 경기가 시작되면 암표 가격이 내려가는 것과는 달리 오히려 더 올라 1만 원짜리 좌석이 3만 원에 거래됐다. 포항의 축구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경기 중 헛발질을 해 많은 관중의 폭소를 자아냈지만 성남의 측면을 무력화한 포항의 오른쪽 날개 미드필더 최효진은 "올 시즌 관중석이 가득 메워진 것은 처음 본다. 이런 열기는 선수를 즐겁게 만든다. 내년까지 이어졌으면 좋겠다"며 포항의 축구 열기가 다시 살아나기를 간절히 원했다.

결승 2차전의 결과가 어떻게 되든 분명한 것은 지난 12년 동안 수그러든 포항의 축구 열기가 살아날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독립 법인인 (주)포항스틸러스가 이 열기를 어떻게 제련해 되살릴지 지켜볼 일이다.

포항 스틸러스 세르지오 파리아스 축구 열기 챔피언결정전 포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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