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야구장의 스테인드 글라스

▲ 멕시코 야구장의 스테인드 글라스 ⓒ 장혜영


한국에서는 포스트 시즌 진출팀을 가리기 위한 경쟁이 치열한 요즈음, 여기 멕시코에서는  이미 봄-여름의 정규 시즌이 끝을 맺고 겨울리그를 위한 휴식기에 들어갔다.  8월 31일 끝 난 파이널 시리즈는 작년 준우승팀 몬테레이가 작년 우승팀 유카탄을 상대로 극적인 복수에 성공하며 막을 내렸지만 한국인으로서 그동안 이 멕시칸리그를 열심히 지켜보았던 주된 이유라면 한 때 한국에서 뛰었던  외국인 선수들을 보는 재미에다 앞으로 외국인 선수로서 한국으로 갈 만한 선수들을 점 찍어 보는 그 재미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멕시칸리그(Liga mexicana de béisbol)는 미국 마이너 사무국과 협약을 맺고 형식상 그 산하에 들어가 있긴 하지만 메이저리그 팀들과 선수 수급 계약을 맺고 있지 않는 데서도 알 수 있듯 한국 프로야구와 마찬가지로 엄연히 멕시코를 대표하는 하나의 독립된 리그이다.

북부의 8팀과 남부의 8팀, 전체 16팀이 3월에서 7월말까지의 리그를 통해 각 리그 상위 4팀을 가린 뒤 8월부터 시작되는 리그 플레이오프와 결승 시리즈를 거쳐 각 리그 우승팀을 결정하고, 이후 양대 리그 우승팀끼리의 파이널 시리즈(Serie final)를 통해 최종 우승팀을 가린다.

이런 멕시칸리그가 끝이 나면 가을의 휴식기를 거쳐 겨울에 '태평양의 멕시칸리그 (Liga mexicana del  pacifico)'를 시작하는데 이 때는 또 다른 8팀이 리그를 펼치며 선수들은 새로운 팀을 골라 다시 뛸 수 있고 휴식기에 들어간 메이저리그 선수들도 합류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겨울 리그가 끝이 나면 멕시코, 도미니카 공화국, 베네수엘라, 푸에르토 리코 등 카리브해 주변 국가 각 리그의 우승팀들이 맞붙는 카리브해 시리즈(Serie del Caribe)가 이어지는데 이 때도 메이저리그의 일부 선수들이 조국의 팀에 합류를 해서 리그의 흥미를 높여주곤 한다.

리그 경기 시작전 선수들 모습. 멕시칸리그의 선수들은 비교적 성적에 대한 부담과 스트레스를 적게 받으며 게임을 하고, 선수단 분위기는 늘 화기애애하고 선수들 표정도 밝다.

▲ 리그 경기 시작전 선수들 모습. 멕시칸리그의 선수들은 비교적 성적에 대한 부담과 스트레스를 적게 받으며 게임을 하고, 선수단 분위기는 늘 화기애애하고 선수들 표정도 밝다. ⓒ 장혜영


이 멕시칸리그의 선수 연봉은 리그가 비교적 짧고 겨울에 다시 다른 팀과 계약할 수 있으며 축구에 비해 인기가 낮아 상대적으로 스폰서가 덜 붙는 문제 등으로 인해서 한국보다 보수가 낮은  편이지만, 호텔이나 구단 버스 등등 리그 중의 선수단 생활 환경은 결코 나쁘지 않다. 또 장거리 이동 때는 비행기도 이용하며 외국인 선수라 해도 시즌 중간에 쫓아내는 경우가 거의 없는 등 비교적 안정되고 스트레스를 덜 받는 분위기라 이미 메이저리그 진출이나 복귀를 포기한 라틴계 베테랑 선수들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그런 라틴계 사람들의 화끈한 성격 그대로, 타격, 특히 장타 위주의 게임을 지향하는데다 또 일부 경기장이 공기 저항을 덜 받는 고지대에 있어 타자에게 유리한 점 등으로 인해 극강의 '타고투저'의 리그가 멕시칸리그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멕시칸리그는 한국 프로야구에 저가의 쓸만한 라틴계 외국인 타자를 공급하는 리그가 되기도 했고, 반대로 한국 프로야구 팀과 재계약에 실패한 타자들이 찾는 마지막 둥지가 되어 주기도 했는데, 올 시즌 멕시칸리그에서 뛴 한국 출신 용병들은 양손가락으로 다 꼽기가 힘들 정도이다. 제이 데이비스, 마니 마르티네스, 데릭 화이트, 펠릭스 호세, 훌리안 얀, 멘디 로페스, 에두아르도 리오스, 그리고 지금은 한국에 가 있는 로베르토 페레스 등등 멕시칸리그 경기 중계를 보다 보면 거의 하루에 한번씩은 그리운(?) 얼굴을 발견하고 '반갑다!'를 연발하게 되는 것이다. 

전 한화선수 제이 데이비스 제이 데이비스는 베라 크루스 팀에서 깐깐한 한국식 야구를 선보이며 팀을 잘 이끌었으나 막판에 체력이 고갈되며 타율이 곤두박질쳐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 전 한화선수 제이 데이비스 제이 데이비스는 베라 크루스 팀에서 깐깐한 한국식 야구를 선보이며 팀을 잘 이끌었으나 막판에 체력이 고갈되며 타율이 곤두박질쳐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 장혜영



하지만  반가운 추억의 선수를 지켜보는 재미도 좋지만 아무래도 앞으로 어떤 타자가 한국으로 진출할 것인가 하는 새로운 가능성에 더 관심이 가는 법,  앞서 말했듯 이 멕시칸리그는 극단적인 타고투저 성향에다 선수들이 타율보다는 큰 거 한방에 더 신경을 쓰기 때문에 정규리그의 성적만으로는 그 타자의 능력을 구분하기가 힘든 문제가 있다.

대신에 한 게임 한 게임이 중요한 포스트 시즌이 되면 선수들의 자세가 확 바뀌고 투수력이 비교적 강한 팀들이 올라오기 때문에 이 시기에 잘하는 선수가 투수력이 좋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적응할 가능성이 높은 선수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메이저리그 캔자스시티에서 뛰다 2004년 삼성에 입단했던 멘디 로페스의 경우 올 시즌 및 포스트 시즌에 집중력 있는 타격을 선보여 몬테레이 팀 우승 후 팬들로부터 행가래를 받는 등 한국으로의 컴백도 꿈꿔 볼 만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한국과는 인연이 없는 선수들 중 눈여겨 볼 만한 타자로는 도니 레온, 에루비엘 두라소, 그리고 구체적으로 한국 팀과 접촉이 있었다는 소문의 카림 가르시아가 눈에 띈다. 

데이비스와 마르티네스. 멕시칸리그의 일부 선수들은 한국에서 뛰었던 인연으로 친해지기도 한다.  베라크루스 팀의 다정한 외야수 커플 (?)  마니 마르티네스와 제이 데이비스. 데이비스는 7 년간 한화에서, 마르티네스는 LG 와 삼성을 오가며 활약했다.

▲ 데이비스와 마르티네스. 멕시칸리그의 일부 선수들은 한국에서 뛰었던 인연으로 친해지기도 한다. 베라크루스 팀의 다정한 외야수 커플 (?) 마니 마르티네스와 제이 데이비스. 데이비스는 7 년간 한화에서, 마르티네스는 LG 와 삼성을 오가며 활약했다. ⓒ 장혜영


푸에르토 리코계 미국인인 도니 레온은 푸에블라 팀 소속의 3루수 출신 지명 4번 타자로  고타율에 고홈런, 호타 준족에다 게임을 읽는 능력도 좋고 차분한 성격에 그럭저럭 적당한 나이(77년생)까지 나무랄 데가 없으나 메이저리그 경험이 부족하다는 면에서 한국 프로야구에의 적응 가능성은 보장받을 수가 없어 보인다. 거기 반해 정규리그에서 몬테레이 팀의  3, 4번을 맡았던 카림 가르시아와 에루비엘 두라소는 메이저리그 경험도 풍부해 충분히 한국에서 탐을 낼 만한 거목들이다. 다만 에루비엘 두라소는 현재 멕시칸리그 소속이 아니며 지난 7월 중순 뉴욕 양키즈로 돌아가기 위해 산하 마이너 팀으로 옮겨 갔지만 아직까지 뉴욕 양키즈의 로스터에 들었다는 소식이 없어 이대로 간다면 내년쯤에는 메이저리그 재진입에의 꿈을 포기하고 다른 쪽으로 발을 뻗을 가능성이 높다.  

멕시코 시티 포로 솔 경기장의 관중석 복도 풍경. 음식을 사먹으면서 TV 로 경기장 내 경기 상황을 여유롭게 보고 있다.

▲ 멕시코 시티 포로 솔 경기장의 관중석 복도 풍경. 음식을 사먹으면서 TV 로 경기장 내 경기 상황을 여유롭게 보고 있다. ⓒ 장혜영


비교적 작은 키(183cm라고 프로필에 나와 있으나 믿을 수 없는 수치인 듯)에다 투수를 노려보는 눈빛이 박정태 현 롯데 2군 타격 코치의 선수 시절을 연상케 하는 좌타의 외야수 카림 가르시아는 멕시코에서는 잘 알려져 있는 강속구 투수 판초 가르시아의 아들로 아버지의 빠른 공을 상대로 타격 연습을 하며 성장해 메이저리그에서 10시즌, 일본 오릭스 팀에서 2시즌을 뛰었다. 일본에서 돌아온 뒤 동양 투수들의 우수함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기도 했던 이 근성의 사나이에게 올 한해는 여러모로 어려운 한 해였는데, 일단 올 초에 메이저리그 재진입에 실패한데다 갓난 아기에 불과한 작은 아들을 수술대에 올려야 했기 때문이다.

카림은 아들의 수술을 준비하러 팀을 떠나 있던 시기에 대체 외국인 타자를 찾던 한국 프로야구의 한 팀과 접촉해 계약 성사 직전까지 갔었다는 소문에 휩싸였는데, 가장의 본능으로 아픈 아이의  병원비 감당과 가족들의 미래를 위해 돈을 많이 벌어놔야겠다는 생각을 할 만한 상황이었으므로 그러한 소문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한편으로 아주 큰 돈을 벌어오지 못할 바에야 어려운 시기의 가족 곁을 지키고 싶었을 카림은 결국 멕시칸리그에 남아 몬테레이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카림 가르시아의 파이널 리그 MVP 선정 소식을 전하는 멕시칸리그 공식 사이트(web.minorleaguebaseball.com)의 기사. /사진 설명:  카림은 멕시칸리그에 처음 뛰면서도 우승을 위해 악착 같은 모습을 보여 갈채를 받았다.

카림 가르시아의 파이널 리그 MVP 선정 소식을 전하는 멕시칸리그 공식 사이트(web.minorleaguebaseball.com)의 기사. /사진 설명: 카림은 멕시칸리그에 처음 뛰면서도 우승을 위해 악착 같은 모습을 보여 갈채를 받았다. ⓒ LMB 캡처



정규 시즌에서는 삼진 아니면 홈런 식의 전형적인 멕시칸리그식 타격을 보여주던 카림은 중요한 포스트시즌에 이르자 필요한 순간순간마다 놀라운 집중력을 과시하며 타격과 주루 양쪽에서 맹 활약, 파이널 시리즈 MVP가 되었고 야구 관계자들은 아들이 아픈 와중에도 결코 흐트러짐이 없던 '독하디 독한 진짜 프로페셔널' 카림을 다시 한번 '투사'라고 불렀는데, 그런 그가 내년에도 메이저리그에 재진입을 하지 못한다면 다시 일본 문이든 아님 처음으로 한국 문이든 어떻게든 두드려볼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 보인다. 그리고 만일 그가 한국에 도착하게 된다면 다부진 체구에 무서운 승부욕,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뛴다는 부정으로 똘똘 뭉친 근성의 야구를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멕시칸리그 공식 사이트의 메인 화면 주소는 http://web.minorleaguebaseball.com//index.jsp?sid=l125 입니다.
멕시칸리그 외국인 선수 한국 프로야구 카림 가르시아 제이 데이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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