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혁(삼성·20개), 브롬바(현대·20개), 크루즈(한화·18개), 이대호(롯데·18개), 김태균(한화·17개) 등 5명의 거포들이 시즌 초부터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는 홈런 레이스에 새로운 얼굴이 등장했다. 뒤늦게 명함을 들이민 인물이지만 전혀 낯설지가 않다. 홈런 레이스에 뛰어든 인물이 바로 '왕년의 거포' 심정수(32·삼성)이기 때문이다.

'거포 본능' 되찾은 심정수

▲ 17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홈런 레이스에 뛰어든 심정수.
ⓒ 삼성 라이온즈
심정수는 13일 수원에서 열린 현대 유니콘스와의 원정경기에서 홈런 두 방을 몰아치며 시즌 17호 홈런을 기록, 홈런 순위 5위로 올라서며 본격적으로 홈런 레이스에 뛰어들었다.

지난 시즌 부상과 재활로 1년을 허송세월 한 심정수는 부상에서 회복하고 돌아온 올 시즌, 5월까지 7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서서히 예년의 장타력을 찾아가고는 있었지만 시즌 초반부터 5명의 거포들이 치열하게 펼치고 있던 홈런 레이스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름으로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심정수는 자신 안에 숨어 있던 '거포 본능'을 완전히 되살려내기 시작했다. 6월에 6개의 홈런을 추가하며 홈런 순위에 이름을 올린 심정수는 7월 14일 현재 9게임에서 4개의 홈런을 쏘아 올리면서 올 시즌 17개의 홈런을 기록, 홈런 5위로 뛰어 오르면서 본격적인 홈런 레이스에 뛰어든 것이다.

아직 1위와는 3개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2003년 이승엽(요미우리)과 함께 한국 프로야구에서 한 시즌 50개 이상의 홈런을 때려낸 유이한 타자 심정수의 등장은 곧 홈런 레이스의 지각변동을 의미한다. 올 시즌 홈런 타이틀을 노리고 있던 선수들은 사상 최강의 도전자를 만난 것이다.

FA계약 이후의 부진으로 말 못할 고통을 겪었던 심정수의 부활은 본인에게는 물론이거니와 공격력 실종으로 애를 먹고 있는 소속팀 삼성에게도 절실한 과제였다.

잊혀진 홈런왕 심정수의 암울했던 2년

▲ FA 최고액을 받고 입단을 했지만...
ⓒ 삼성 라이온즈
2004년 시즌 후, FA자격을 얻은 심정수는 삼성과 4년 60억이라는 사상 최대의 금액에 사인을 하고 현대를 떠나 삼성으로 팀을 옮겼다. 그러나 심정수는 이후 감당하기 힘든 시련을 함께 겪게 된다.

2005년 심정수는 28개의 홈런과 87개의 타점을 기록하며 홈런과 타점 부문 2위에 오르는 활약을 펼치며 삼성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60억이라는 기대치가 너무 컸던 탓인지 심정수는 뛰어난 활약을 보이고도 그다지 좋은 평가를 얻어내지 못했다. 그리고 2006년, 부상으로 인해 26경기에 출장해 단 1개의 홈런과 .141의 타율이라는 참담한 성적을 기록한 심정수는 하루아침에 먹튀의 대명사로 불리기 시작했다.

먹튀라는 놀림보다 심정수를 더 괴롭힌 것은 자신이 없는 상태에서도 삼성이 정규시즌 우승을 일궈내자 일각에서 흘러나왔던 이른바 '심정수 무용론'이었다. 심정수가 팀 분위기에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며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심정수를 제외시킬 수도 있다는 선동열 감독의 발언까지 나오는 등 심정수는 자존심에 엄청난 상처를 입게 된다. 실제로 선동열 감독은 한국 시리즈 6차전 4번타자로 심정수가 아니라 김대익을 기용하기도 했다.

상처만 남은 2년을 보낸 심정수에게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어쩌면 '먹튀 오명'에서 벗어날 거의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었던 2007년, 매 경기를 시험을 치르는 심정으로 위태롭게 7월까지 달려온 심정수가 드디어 자신의 가치를 극대화 시켰던 '거포 본능'을 회복한 것이다.

생애 첫 홈런왕에 도전하는 '무관의 제왕' 심정수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홈런 타자지만 심정수는 홈런왕 타이틀을 가져본 적이 없는 선수다. 2002년 심정수는 .321의 타율과 46개의 홈런 119타점을 기록하는 대활약을 선보였지만 당시 홈런과 타점 1위는 이승엽(당시 삼성)의 몫이었다.

2003년 심정수는 타율 .335, 홈런 53개, 142 타점을 기록하며 소속팀 현대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고 프로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최고의 시즌을 보냈지만 역시 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하지는 못했다. 2003년은 이승엽이 56개의 홈런을 쏘아 올리며 아시아 최다 홈런 신기록을 갈아치웠던 바로 그 해였기 때문이다. 심정수는 이승엽에게 MVP도 양보해야 했다.

2년 동안 99개의 홈런과 261타점을 기록하는 엄청난 활약을 하고도 홈런왕 타이틀이나 MVP와는 인연을 맺지 못하는 불운을 겪었던 것이다.

올 시즌 역시 결코 쉽지 않은 홈런 레이스겠지만 '거포 본능'을 되찾은 심정수에게 홈런왕을 향한 진검 승부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과연 올 시즌 심정수가 그동안 지독히도 인연이 없던 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하고 자신을 짓눌렀던 먹튀라는 오명을 벗어던질 수 있을지, 무서운 속도로 치고 올라오며 홈런 레이스에 지각 변동을 예고한 심정수의 후반기 활약을 주목해보자.
2007-07-14 11:39 ⓒ 2007 OhmyNews
심정수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무관의 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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