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선수가 활약하는 국내 리그에서 각 종목마다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그 대답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꽤 많은 토론과 의견 조율이 필요하다.

프로야구에서는 타이론 우즈와 제이 데이비스·펠릭스 호세·다니엘 리오스 등이 물망에 오를 테고, 남자프로농구에서도 죠니 맥도웰·제이슨 윌리포드·마르커스 힉스·크리스 윌리엄스 등 쟁쟁한 선수들이 즐비하다. 외국인 선수 역사가 가장 오래된 프로축구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럭키 금성에서 활약했던 태국 출신의 피아퐁부터 한국 이름 '신의손'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발레리 샤리체프, 포항 유니폼을 입고 5년 동안 55골을 몰아넣었던 라데 보그다노비치, 부산 대우·수원 삼성·성남 일화를 차례로 우승으로 이끈 샤샤 드라큘리치까지 최고의 선수 한 명을 뽑기는커녕 인상적이었던 선수를 일일이 나열하기도 벅차다.

그러나 지난 8년 동안 75명의 선수가 거쳐 간 여자프로농구(WKBL)에서 최고의 외국인 선수를 꼽을 때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바로 우리은행 한새의 '우승 청부사' 타미카 캐칭(28)이 있기 때문이다.

캐칭 있는 곳에 '우승 트로피'가 있다

▲ 여자프로농구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 타미카 캐칭.
ⓒ 우리은행 한새
2002년 미여자프로농구(WNBA) 인디애나 피버에서 데뷔해 첫 해 18.6득점 8.6리바운드 3.7 어시스트의 성적으로 신인왕을 차지한 캐칭은 2003년 1월 6일 국민은행과의 경기에서 국내 무대 데뷔전을 치렀다.

첫 경기에서 28득점 7리바운드 8스틸로 맹활약한 캐칭은 2003 겨울리그에서 프로 출범 후 중하위권을 맴돌던 우리은행을 단숨에 통합 우승으로 이끌면서 챔피언결정전 MVP, 최우수 외국인 선수상·득점왕·가로채기왕을 모두 휩쓸었다.

그 해 겨울리그에는 캐칭 외에도 2002년 WNBA 득점왕에 빛나는 샤미크 홀즈클로(국민은행)를 비롯해 티파니 존슨(금호생명), 탄젤라 스미스(신세계) 등 WNBA 출신의 거물 선수들이 대거 국내 코트를 누볐지만, 아무도 캐칭의 활약에 미치지 못했다.

캐칭은 이어 벌어진 2003년 여름리그에서도 WNBA의 일정을 마치고 곧바로 귀국해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까지 단 6경기만 치르고 우리은행을 2연속 우승으로 이끌었다. '우승 청부사'라는 별명도 이 때 생겨났다.

정규리그에서 15연승 행진을 달리며 '무적함대'로 군림하던 삼성생명은 '캐칭 유탄'을 얻어맞고 챔피언 결정전에서 아쉽게 무릎을 꿇어야 했다. 여름리그 챔피언 결정전 MVP도 당연히 캐칭의 몫이었다.

사실 정규리그에서 한 경기도 출전하지 않은 선수가 갑작스레 등장해 포스트시즌의 판도를 뒤바꿔버린 것은 별다른 외국인 선수 교체 조항이 없었던 WKBL의 허술한 규정과 이를 악용한 우리은행이 만들어낸 '촌극'이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34경기를 치러 체력이 바닥났음에도 우리은행을 위해 기꺼이 태평양을 건너와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한 캐칭의 성실한 자세는 허술한 규정의 악용 여부를 떠나 구단에게 무리한 요구를 일삼는 일부 외국인 선수들 사이에서 단연 돋보였다.

약속 지키기 위해 드래프트 참가 신청을 거부한 '의리파'

두 시즌 동안 WKBL 무대를 완전히 평정한 캐칭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미국 대표 선수로 선발되면서 국내에서 뛸 수 없게 되었다. 캐칭은 2003년 여름리그가 끝나고 미국으로 떠나면서 "올림픽이 끝나면 반드시 우리은행으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캐칭이 종횡무진 활약한 미국은 아테네 올림픽 결승전에서 호주를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캐칭은 WNBA 올스타와 WKBL 최고의 외국인 선수, 여기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타이틀까지 추가했다.

올림픽이 끝나고 곧바로 다가온 2005년 겨울리그. 그러나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던 캐칭은 2005년 겨울리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2년 사이에 여자 농구의 '거물'이 되면서 국내 리그는 시시하게 느낀 것일까?

사정은 이랬다. 한국여자농구연맹은 과열된 외국인 선수 영입 경쟁을 막고자 2005년 겨울리그에서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 제도'를 실시했다. 선수가 참가 신청을 하면 각 구단이 순서대로 선수를 지명하는 방식이다.

이미 기량이 충분히 검증된 캐칭은 우리은행이 아닌 다른 팀에 지명을 받을 확률이 높았기 때문에 애초에 참가 신청을 하지 않았다. 일정 기간 동안 돈을 받고 경기에 나서는 외국인 선수가 소속팀 우리은행과의 '의리'를 지킨 것이다.

다시 자유계약 제도로 바뀐 2006년 겨울리그에서 3년 만에 우리은행으로 돌아온 캐칭은 정규리그와 챔피언 결정전 통합 MVP에 오르며 다시 한 번 우리은행의 우승을 이끌었다.

가장 큰 무기는 '강한 열정과 승리욕'

▲ 캐칭은 코트 안에서 누구보다도 열정적이다.
ⓒ 우리은행 한새
캐칭은 농구 선수에게 필요한 모든 요소를 다 갖춘 선수다. 미국에서는 스몰 포워드로 활약하고, 한국에서는 센터 겸 파워 포워드로 활약하지만 캐칭에게 포지션의 구분은 커다란 의미가 없다.

수비할 때는 상대팀에서 가장 신장이 큰 선수를 막아내고, 치열한 몸싸움 끝에 리바운드를 잡아내며 공격 때는 순간적인 돌파력과 상황 판단으로 단숨에 득점을 올린다.

자신에게 수비가 몰리면 외곽 슈터들에게 슛찬스를 만들어 주고, 캐칭 자신도 WKBL 리그에서 37.1%의 높은 3점슛 성공률을 자랑한다.

특히 가로채기 부문에 있어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캐칭은 한국에서 뛴 세 시즌(정규리그 결장한 2003 여름리그 제외)에서 경기당 평균 3.15개의 가로채기를 기록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국내 선수들이 캐칭에게 가장 먼저 배워야 할 부분은 '강한 열정과 승리욕'이다.

사실 WNBA의 정상급 선수인 캐칭 입장에서 보면 WKBL 무대는 비시즌을 활용한 '아르바이트'인 셈이다. 그럼에도 캐칭은 코트에서 국내의 어떤 선수보다도 열정이 넘친다.

치열한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고, 속공 기회에선 언제나 가장 먼저 달려 나간다. 루즈볼이라도 나오면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의 눈빛으로 공을 향해 몸을 던진다.

경기에 대한 강한 열정과 승리욕은 NBA를 평정한 '농구 황제' 마이클 조단과 과거 농구대잔치의 영웅이었던 '농구 대통령' 허재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뛰어난 기량과 함께 강한 열정을 겸비한 캐칭이 '최고'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시적인 외국인 선수 폐지... 2008 겨울리그 '불참'

캐칭은 11일 현재 WNBA 인디애나에서 활약하며 평균 16.6득점 8.9리바운드 4.4어시스트 3.4가로채기로 소속팀을 동부 컨퍼런스 선두로 이끌고 있다. 7월 첫째주에는 WNBA에서 선정한 '이 주의 선수'로 뽑히며 완숙한 기량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다가오는 시즌에는 우리은행 유니폼을 입은 캐칭을 볼 수 없다. 한국여자농구연맹이 한시적으로 외국인 선수 없이 2007~2008 시즌을 치르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외국인 선수가 없으면 그동안 기죽어 있던 국내 센터들의 활약을 기대할 수 있지만,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코트를 누비던 'WKBL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선수' 타미카 캐칭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점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2007-07-11 15:04 ⓒ 2007 OhmyNews
여자프로농구 우리은행 타미카 캐칭 한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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