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취재후기'라는 이 알량한 글의 진짜 목적은 반성문입니다.

'아웃팅'의 위험에도 언론과의 첫 인터뷰를 주선해 주신 여성영상집단 '움'의 이영 활동가님께,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매체"라며 인터뷰에 응한 동기가 된 <오마이뉴스>에게. 무엇보다도 솔직하게 인터뷰에 응해주신 천재와 꼬마-두 용감한 레즈비언 소녀들에게 말입니다.

인터뷰는 정확히 6월 7일(목)에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기사를 완성한 오늘 날짜는 7월 2일(월). 거의 한 달여에 걸쳐 기사를 쓴 셈이니 '엄청난' 직무유기를 범한 것이지요. 글을 쓰는 지금도 두렵습니다. 기사를 기다리다 지친 당신들, 저를 꾸중하시겠지요. 그저 죄송합니다. 앞으로 이어지는 제 서투른 변명을 듣고 노함이 가라앉기를 바랄 뿐입니다.

저는 최근 <오마이뉴스> 기획취재단에서 '문화, 영화' 부문을 맡게 되었습니다. 기획기사로 올릴 '거리'가 없나 고민하다가 인권영화제에서 <아웃(Out)-이반검열 두 번째 이야기>를 보게 되었죠. 제게는 그것이 하나의 '사태'였습니다.

놀랍도록 진솔한 셀프 카메라 형식의 이 다큐는 예측할 수 없는 감동을 수시로 불러 일으켰죠. 우리 사회 이반 청소녀들의 상처와 고통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었고, 소녀들이 직접 만든 랩도 다큐의 주제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그녀들이 직접 찍은 영상을 보고 이영 활동가님과 소녀들이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작품의 방향을 잡아나가는 형식도 놀라웠는데, 그것이 곧 '치유의 문법'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기획으로 '잡자'고 마음속으로 결정했는데, 돌이켜보면 크나큰 '실수'였습니다.

한 달만에 기사를 쓰다

▲ <아웃>의 세 주인공
ⓒ 여성영상집단 움
6시간이었습니다. 6월 7일 오후 6시부터 3시간가량 소녀들을 중심으로 인터뷰를 진행했고, 3시간 동안은 상수동에 있는 여성영상집단 '움' 사무실로 가서 전작인 <이반검열>을 보았죠. 소녀들과 남은 이야기를 끝내고 온 이영 활동가님과 추가 인터뷰를 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결국 모든 인터뷰가 끝났을 때는 자정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고백건대, 집으로 돌아가면서 제 다리는 덜덜 떨렸습니다. 내가 이 소녀들의 이야기를 과연 쓸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습니다. 사실 전 '어디 괜찮은 기획거리가 없나'라는 다분히 천박한 의도에서 이 인터뷰를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제 천박함에 비해 소녀들은 진솔했고, 당당했고, 그래서 빛나 보였죠. 정말 내가 이 소녀들의 '인생이 바뀐' 이야기를 제대로 살릴 수 있을지…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또 고백합니다. 소녀들이 받은 멸시와 차가운 시선… 상처를 준 사회에 저도 끼어있었다는 것을요. 직접 레즈비언을 조롱하는 말을 한 적은 없지만, 동성애를 비난하진 않지만, 사실 무의식적으로 제 속에 깊숙이 들어앉아 있는 호모포비아(동성애공포증)가 알게 모르게 밖으로 퍼져 나갔다는 것을요. 결국 저는 차가운 사회의 한 일원으로 소녀들에게 상처를 주었던 셈인데, 그런 제가 알량하게 소녀들을 인터뷰하겠다니 가당키나 한 일인지요.

정확히 25일이네요. 그렇게 전 25일 동안 계속 벌벌 떨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마감에 대한 '압박'이었지만 본질적으로는 '이 소녀들의 이야기를 가짜로 쓰면 안 된다'는 강박이 저를 짓눌렀습니다. 강박에 짓눌리면서도 마감을 계속 못한 이유는, 제가 '가짜'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제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어요.

취재수첩을 보고 또 보고, 외울 정도가 되었음에도 한 줄도 쓰지 못하는 날의 연속이었습니다. 밤을 새우면서 괴로워하는 날이 반복되었는데, 그 괴로움은 결국 '소통하지 못함'에서 오는 결핍이었을 것입니다.

끝내 저는 음악의 힘을 빌리기로 했습니다. <아웃>의 OST를 반복해서 듣기 시작했습니다. 천재의 '커밍아웃 스토리'를, 꼬마의 '아웃사이더 스토리'를, 그리고 초이의 '아웃팅 스토리'를 계속 들었죠. 그 음악들 속에서, 소녀들은 랩으로 외쳐대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우리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고. 우리들의 존재는 잊혀졌다고. 이제 서툴지만 우리들의 이야기를 해보겠다고요.

소녀들의 외침은 제게 용기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직 부족하고 서툴지만, 그래도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당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어졌지요. 기억력이 좋은 머리보다는 무딘 연필이 더 낫다고, 누군가가 말했지요. 무디기 그지없는 제 실력이지만 그래도 써야한다, 써야한다고… 소녀들이 제게 말하는 듯했습니다.

마지막 이틀 밤을 꼬박 새워가며 기사를 다 쓴 이 새벽, 제가 당신들의 이야기를 온전히 풀어냈는지에 대해서 전 자신할 수 없습니다. 온몸으로 상처를 겪어냈던 당신들에 비해 너무도 부족한 기사입니다. 제가 당신들과 유연하게 소통하고 있나에 대해서도 확신하지 못합니다. 제 속에 잠재되어 있는 호모포비아가 언제 날뛸지 그저 두려울 뿐입니다.

하지만 겨우 이렇게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신들을 알기 시작했다고. 당신들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고. 그리고 언젠가 유연하게, 당신들과 소통하기를 원한다고. 비록 지금은 '가짜'이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당신들 같이 당당한 '진짜'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요.

<아웃>의 세 이반 소녀들. 비록 나이는 제가 많지만 당신들은 기사를 쓰는 내내 저를 다그치고 격려해 준 '훌륭한 스승'이었습니다. 당신들에게 죄송하고, 또 감사합니다. 밝은 모습으로 다시 보기를 소망합니다.
2007-07-03 12:38 ⓒ 2007 OhmyNews
아웃 이반검열 취재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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