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절의 고종수 선수, 22번을 달았을 때 당신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 수원삼성 블루윙즈
1998년 두 명의 JS가 수원에 있었습니다. 두 JS 모두 축구선수였습니다.

한 명의 JS는 18세라는 어린 나이에 국가대표에 선발되어 98월드컵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쳐 구름관중을 몰고 다니는 축구 스타였습니다. 그 JS 때문에 수원종합운동장이 꽉 찬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종합운동장에서 멀지 않은 수원공고에는 또 다른 JS가 있었습니다. 작은 체구에 순한 얼굴, 누구도 그를 뛰어난 축구선수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3학년 졸업반이었지만 어떤 대학에서도 그를 데려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축구 스타 JS가 당시 최고의 가수였던 HOT보다 팬레터를 더 많이 받으며 영광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동안 고교생 JS는 발이 부르트도록 연습했습니다.

그리고 9년이 지난 지금 두 JS 모두 축구천재라 불리고 있습니다. 한 명은 게으른 축구천재, 또 한명은 부지런한 축구천재.

98년 지독한 연습 벌레였던 부지런한 축구천재 JS, 박지성은 지금 잉글랜드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수원은 물론 아시아를 떠들썩하게 했던 게으른 축구천재 JS는 긴 방황의 세월을 겪고 어렵사리 대전 시티즌에서 선수생활을 이어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 고종수 선수, 당신입니다.

당신 때문에 축구를 사랑했습니다

수원삼성블루윙즈의 22번. 당신의 등장만으로도 가슴 떨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크정면 오른쪽에서 프리킥 찬스가 났을 때 우린 이미 승리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곳에서 당신은 마술 같은 프리킥으로 어김없이 공을 골대 오른쪽 구석으로 정확히 차 넣었습니다.

그곳은 바로 '고종수 존'입니다. 2001년의 '고종수 존'에서는 세계적인 골키퍼 칠라베르트(파라과이)도 꼼짝 못했습니다.

당신의 창조적인 패스에 매료되었고, 왼발에서 뿜어 나오는 당신의 프리킥은 예술이었습니다. 당신 때문에 수원삼성을 좋아하게 되었고 당신 때문에 축구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1996년부터 풋내기 시절의 당신을 지켜봐 온, 신이 내린 당신의 왼발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저는 수원삼성의 서포터즈입니다.

그 시절, 당신은 진정한 '축구 천재'였습니다.

1997년, 경기가 끝나고 버스로 이동하는 당신을 붙잡고 전 무턱대고 사인을 부탁했습니다. 당신은 잠깐 어리둥절해하더니 이내 웃으며 사인을 해주었습니다. 당신의 이름 '고종수'를 투박하게 써주었습니다. 그리고 조그맣게 No.22를 적어주었습니다.

보통 사인을 부탁하면, 상대방의 이름을 물어보며, 그 사람의 이름도 써주곤 하는데, 당신은 그저 자신의 이름만 적어주며, 살짝 미소만 보여주었습니다.

당신의 그 순박한 미소를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미소에는 '나는 축구밖에 모른다'는 그런 순수함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힘차게 버스로 뛰어 올라갔습니다.

투박한 당신의 사인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1997년 당시 고종수 선수의 사인. 투박하고 멋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사인을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 김귀현

시간이 흐른 뒤 당신은 엄청난 스타가 되었습니다. 당신의 사인을 받는다는 건 '하늘의 별따기'라 할 정도였습니다. 경기 끝나고 관중들을 향해 손 흔들며 버스로 이동하면 이내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얼굴조차 보기 힘들었습니다.

친구 중 한 녀석이 당신의 사인을 어렵게 받아왔다고 자랑하였습니다. 그때의 사인은 내가 받은 사인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한껏 멋을 낸 사인에는 친구의 이름도 예쁘게 적혀있었습니다.

사인이 멋지게 바뀐 만큼 당신의 모습도 점점 멋지게 바뀌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라운드보다 TV에서 당신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고, 당신이 그라운드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닥쳐온 부상의 악재. 보는 이를 전율로 이끈 당신의 왼발 프리킥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끊임없는 소문 속에 가십거리의 주인공으로나 가끔 등장하는 당신의 모습을 그저 안타깝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원의 푸른 유니폼이 아니라도 좋으니, 당신의 뛰는 모습을 볼 수 있게만 해달라고 기도한 적도 있습니다. 당신 때문에 축구란 놈을 사랑하게 되었으니 말이죠.

이제 수원의 22번은 아니지만, 대전의 10번으로 다시 한 번 '축구천재'의 활약을 보여주십시오. 당신을 응원하러 대전에도 가겠습니다.

노력하는 천재와 게으른 천재, 더 이상 이런 비교는 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잦았던 TV 출연과 튀는 행동은, 언제 어디에서나 당당했던 당신의 자신감이라 믿겠고, 최근 끝없는 부진은 지독한 부상 때문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축구 밖에 모르던 당신의 모습으로 돌아와 주세요

당신 때문에 축구와 축구장을 처음 사랑했던 팬들이 있습니다. 당신의 프리킥 때문에 축구의 매력에 빠진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당신을 보기 위해 축구장에 운집했던 사람들이 지금의 '붉은 악마' 이며, 현재의 수많은 축구팬들임을 기억해 주세요.

축구밖에 모르던 순수한 청년 '고종수'가 되어 주세요. 그 시절 당신의 투박한 사인이 0%의 마음으로 돌아가려는 당신에게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언젠가 당신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죠?

"연습해서 되는 킥이 있지만, 내 킥은 나만 할 수 있는 킥이다."

당신의 왼발에 아직 그 감각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왼발은 '신이 내린 왼발' 이니까요.

앙팡테리블(무서운 아이), 당신의 왼발을 믿습니다. 다시 한 번 우리를 감동시켜 주세요. 다시 한 번 프리킥 하나로 온몸의 전율을 느낄 수 있게 해주세요. 우리들 마음속의 당신은 영원한 '앙팡테리블'이며 '축구천재'입니다.

골을 넣고, 환하게 웃으며 덤블링 하는 당신의 모습, 다시 볼 수 있겠죠?

고종수 앙팡테리블 축구천재 왼발 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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