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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대첩비 구비와 재건비를 한 프레임에 넣었다 ⓒ 오창환

이번 고양 월요 드로잉 '고양 월드'는 행주산성에서 진행했다. 행주산성은 매주 월요일은 휴관인데 어떻게 거기 모여서 그림을 그렸을까?

5월 초, 고양시청 관광과에서 연락이 와서 관계자를 만났다. 관광과에서는 오마이뉴스 기사를 보고 '어반스케쳐스 고양'이 생긴다는 것(관련 기사 : 휘날리는 벚꽃 아래... '어반스케쳐스 고양' 출범했습니다)을 알게 됐고, 그래서 연락을 했다고 한다. 어반스케쳐스 활동에 대해서는 안내해드렸고, 지역사회에서 같이 할 수 있는 일을 협조해서 하기로 했다. 그중 첫 번째가 행주산성 휴무일인 지난 16일에 어반스케쳐를 위해 행주산성을 개방하고 이를 그리기로 한 것이다.

특별한 행사인 만큼 많은 스케쳐들이 모였다. 고양시 스케쳐들 뿐만 아니라 인천, 파주, 의왕, 성남, 서울 등 멀리서도 많이 오셨다. 행주산성은 덕양산에 위치하는데 이 산은 해발 125m에 불과하지만 한강을 끼고 있고, 주변이 평야지대라서 예로부터 군사적 요충지이며, 한양 4외산(外山)에 속한다. 덕양산에는 원래 토성이 있었다고 알려졌는데 최근에 산 정상 부근에서 석성이 발견되기도 했다.

행주산성은 1593년(선조 26년) 권율 장군이 행주대첩을 이룬 곳이다. 장군은 왜군에게 빼앗긴 서울을 되찾기 위해 군사 2300명을 거느리고 행주산성에 진을 친 후 일본군 3만여 명과 치열하게 격전을 벌여 압도적 승리를 이끈다. 행주대첩은 임진왜란 삼대대첩 중의 하나로 꼽는다. 서울에 있던 일본군이 삼남 지방으로 내려가고, 수세에 몰렸던 우리 군이 공세로 전환하는 결정적 전기가 됐다.
 
오른쪽 대첩비각 안에 구비가 있고 왼쪽이 재건비 ⓒ 오창환

장군께서 돌아가신 1년 후인 1602년 장군의 부하들이 산 정상 부분에 행주대첩비를 세운다. 이를 새로 만들어진 비와 구별하기 위해서 구비(舊碑)라고 하는데 비문은 최립이 짓고 글씨는 당대 최고 명필 한석봉이 썼으며 끝의 추기는 사위인 이항복이 지었다. 지금의 정상부 기념비는 1963년에 세운 것으로 재건비라고 칭한다. 1970년에 권율 장군의 사당인 충장사(忠莊祠)를 건립하였고 무너진 재건비를 다시 세웠다. 그리고 충의정, 덕양정, 진강정 등과 정문인 대첩문도 함께 세우는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했다.

행주산성 들어가 각자만의 그림을... 행주치마 퍼포먼스도

행주산성이 가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주 오지 못했는데, 오늘 좋은 기회가 왔다. 다른 스케쳐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첩문에 들어서니 가파른 언덕길이 이어진다. 생각해보니 여기는 산이 아닌가. 올라가다가 중간쯤에 권율 장군님 사당인 충장사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가는 길에 보이는 방화대교나 행주대교 전경도 좋고 주변 경관도 그릴만 하지만 처음부터 행주대첩비를 그리려고 마음을 먹었다. 거의 정상 부근에 전망이 좋은 덕양정이 있고 최정상에는 행주대첩비 재건비가 있고 그 옆에 구비가 있다.

재건비는 오벨리스크처럼 우뚝 솟아있어서 시선을 끈다. 큰 글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썼고 비문은 서희환 선생님의 글씨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예술적 재능이 출중해서 붓글씨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렸다고 한다.

비문을 쓴 서희환 선생님은 소전(素荃) 손재형에게 사사했으며 독특한 한글 서체를 개발하여 1960~198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한글 서예가였다. 그는 세종대 교수를 역임하고 각종 미술전의 심사위원도 했으며 특히 비문과 비석 현판을 많이 썼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글서예가 중 한 분이다. 독보적인 경지를 이루어 낸 서희환 선생님 이후에는 신영복 선생님의 글씨가 멋있다. 

서희환님은 비문뿐 아니라 대첩문, 덕양정, 대첩비각 등 산성 안에 있는 현판은 모두 쓰셨다. 그런데 구비의 보호각인 대첩비각 안에 조그만 현판이 걸려 있는데 행주산성을 보수할 때 참여한 공무원이라든지 참여헙체 사장 이름 등이 적혀있었다. 요즘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서희환님 글씨는 여러 글자가 어우러져야 멋있는데 현판 글자는 고작 서너 자에 불과하니 그의 멋진 글씨가 돋보이질 않는다. 내 눈에는 힘을 빼고 쓴 비각 안의 글씨가 가장 멋있으니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재미있는 사실은 박정희 전 대통령도 손재형에게 서예를 사사했는데 선생님을 직접 청와대로 초청하면서까지 서예를 배웠다고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서희환도 같은 스승을 모시고 있었다.

산성 정상 부분을 몇 바퀴를 돌았다. 그런데 구비와 재건비를 한 프레임에 넣고 그릴 수 있는 자리에는 그늘이 없다. 좋은 작품을 그리기 위해 예술혼을 불태우며 땡볕에 앉았다. 행주산성은 굵은 나무도 많고 좋은 그늘도 많지만 여기는 정상 부분이라 햇빛 아래서 그리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조금 그리다 보니 그늘에서 그리는 스케쳐들이 부러워진다. 그래도 나는 신구 대첩비가 한 프레임에 들어간 이 구도가 마음에 든다.

2시 반에 충장사 앞에서 포토타임을 가졌는데, 우리 스케쳐들은 참으로 다양한 시선으로 행주산성을 그렸다. 워낙 의미 있는 곳이고 그릴 곳도 많아서 다시 와서 그려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주산성 스케치에 맞춰서 광목으로 행주치마를 몇 벌 만들어온 분이 있었다. 다들 돌아가며 행주치마를 입고 사진을 찍는 즐거운 퍼포먼스를 했다.
 
그날 그린 그림을 감상하고 사진을 찍는다. 계단이 있어서 전시하기 좋았다. ⓒ 오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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