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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린 시절 사극을 보며 품었던 활쏘기에 대한 로망을 30대가 되어 이뤘습니다. 대학원생으로 살면서 활쏘기를 통해 많은 위로와 용기를 얻었습니다. 보다 많은 분들이 활쏘기의 매력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으로, 활을 배우며 얻은 소중한 경험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기자말]
국궁(전통활쏘기)과 양궁의 차이는 뭘까?

가장 눈에 띄는 차이로 '쏘는 방식(사법)'을 들 수 있다. 양궁은 검지와 중지로 시위를 당겨 활을 쏜다. 올림픽 경기에 출전한 양궁 선수들의 손 모양을 보면 알 수 있다.
 
2024년 4월 28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2024 양궁 월드컵 1차 대회'에 출전한 임시현 선수의 모습. 우리 국궁과는 다른 사법을 구사하고 있다.
 2024년 4월 28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2024 양궁 월드컵 1차 대회'에 출전한 임시현 선수의 모습. 우리 국궁과는 다른 사법을 구사하고 있다.
ⓒ KBS 뉴스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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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우리의 전통활쏘기는 엄지손가락으로 활 시위를 걸어 당긴다. 이를 위해서는 '깍지'라는 보조도구가 필수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엄지손가락을 이용해 활시위를 당겼다. 이를 위해 엄지손가락의 탈골을 막기 위한 '깍지'라는 도구가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사극에서 깍지가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심지어 영화 <명량>에서는 이순신 장군(최민식 분)이 검지손가락에 깍지를 끼고 나오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연출되었다. 사진은 최형국 무예24기 조선검 한국전통무예연구소장의 전통 사법 시연 모습.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엄지손가락을 이용해 활시위를 당겼다. 이를 위해 엄지손가락의 탈골을 막기 위한 '깍지'라는 도구가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사극에서 깍지가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심지어 영화 <명량>에서는 이순신 장군(최민식 분)이 검지손가락에 깍지를 끼고 나오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연출되었다. 사진은 최형국 무예24기 조선검 한국전통무예연구소장의 전통 사법 시연 모습.
ⓒ 최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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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 속 왜곡된 형태의 활쏘기

그런데 과거 사극을 보면 양궁식 사법으로 활을 쏘는 경우가 많았다. 2004~2005년에 인기리에 방영했던 KBS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 대표적이다.

이미 여러 차례 고백한 바 있지만, 내가 전통활쏘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불멸의 이순신>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때만해도 우리 활쏘기에 대해 무지했던 탓에 사법과는 상관 없이 그저 활을 쏘는 이순신의 이미지에 반했을 뿐이었다.

국궁을 수련하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보면 당시 드라마 속 배우들의 활쏘기는 '도대체 어느 나라 활쏘기냐' 싶을 정도로 엉망진창이다. 지금도 가끔씩 유튜브를 통해 <불멸의 이순신>을 돌려보곤 하는데, 활 쏘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안 본 눈'을 사고 싶을 정도다. 

 
2004~2005년 인기리에 방영된 KBS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한 장면. 이순신 역을 맡은 배우 김명민이 양궁식 사법으로 활쏘기를 하고 있다.
 2004~2005년 인기리에 방영된 KBS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한 장면. 이순신 역을 맡은 배우 김명민이 양궁식 사법으로 활쏘기를 하고 있다.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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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이순신 장군이 양궁식 사법으로 활을 쏘는 모습에, 당시에도 국궁계에서 거센 비판이 쏟아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극의 중반부부터는 사법이 바뀌었다. 그러나 여전히 국궁 사법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었던 탓에, 마지막화까지 이도 저도 아닌 불안한 사법으로 활을 쏘는 모습이 반복해서 연출됐다.
 
KBS <불멸의 이순신> 제작진은 양궁식 사법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극의 중반부부터 바뀐 사법으로 활쏘기를 연출했다. 그러나 여전히 엄지로 시위를 제대로 걸지 못하고 그저 시위와 화살을 꼬집듯이 당기는 잘못된 사법을 보여주었다.
 KBS <불멸의 이순신> 제작진은 양궁식 사법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극의 중반부부터 바뀐 사법으로 활쏘기를 연출했다. 그러나 여전히 엄지로 시위를 제대로 걸지 못하고 그저 시위와 화살을 꼬집듯이 당기는 잘못된 사법을 보여주었다.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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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사극 속 활쏘기에 대한 국궁계의 지적이 잇따르고, 제작진들 역시 보다 엄밀한 고증을 추구하게 되면서 이제는 잘못된 사법으로 활쏘기를 연출하는 빈도가 많이 줄어든 편이다. 최근작이었던 KBS <고려거란전쟁>에서의 양규(지승현)의 활쏘기는 정통 사법을 제법 잘 구현하여 많은 이들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잊을 만하면 가끔씩 잘못된 사법을 구사하는 경우가 왕왕 있어 눈쌀을 찌푸리게 한다. 최근에는 우수한 고증으로 역덕(역사덕후)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았던 국립진주박물관의 '화력조선' 시리즈에서도 양궁식 사법이 등장하는 바람에 크게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국립진주박물관에서 제작한 화력조선 시네마 '정주성' 3부 중 활을 쏘는 장면. 양궁식 사법으로 활을 쏘고 있다.
 국립진주박물관에서 제작한 화력조선 시네마 '정주성' 3부 중 활을 쏘는 장면. 양궁식 사법으로 활을 쏘고 있다.
ⓒ 국립진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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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궁체험' 문제

사극도 사극이지만 일부 '국궁체험' 프로그램의 운영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수원 화성, 아산 현충사를 비롯한 일부 유적지에서는 국궁체험장을 운영하며 관람객을 대상으로 전통활쏘기를 체험해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지역 축제가 열릴 때마다 각 지자체에서는 국내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국궁체험 부스를 운영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런 체험장에서조차 양궁식 사법으로 활을 쏘게끔 지도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실제로 나는 지방에 갈 때마다 국궁체험장이 있으면 한 번씩 들르곤 하는데 그때마다 양궁식 사법으로 활을 쏘도록 안내받곤 했다.

원인은 둘 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한다. 강사가 국궁 사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초보자들 입장에서는 어색하고 불편한 전통 사법 대신 두 손가락으로 당기기만 하면 되는 양궁식 사법으로 지도하는 게 서로 편해서거나.

그러나 아무리 일회성 체험이라고 해도 '전통', '국궁'이라는 이름을 달고 운영한다면 당연히 전통활쏘기의 기본적인 원칙은 준수해야 하는 것 아닐까. 우리 전통활쏘기의 매력을 온전히 느껴보려면, 체험객들로 하여금 양궁과는 다른 우리만의 전통 사법을 제대로 체험해볼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저 국궁용 활과 화살만 쓴다고 전통활쏘기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수원 화성을 찾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역시 외국인 관광객들과 함께 국궁 체험을 하면서 양궁식 사법을 구사한 바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전통문화를 보존·발전시켜야 할 의무가 있는 문체부 장관이 양궁식 사법으로 국궁 체험을 하고, 문체부에서는 "지역 문화를 알린다"며 장관이 잘못된 사법으로 활을 쏘는 사진을 언론에 배포하여 홍보하고 있으니 웃플 따름이었다.

우리 활쏘기에 대해 잘못된 모습이 이렇게 또 퍼져나가고 있다.
 
지난 2월 8일 KTV가 보도한 '첨단기술로 즐기는 화성행차... 로컬100 수원 여행' 보도. 유인촌 문체부장관이 국궁을 쏘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지난 2월 8일 KTV가 보도한 '첨단기술로 즐기는 화성행차... 로컬100 수원 여행' 보도. 유인촌 문체부장관이 국궁을 쏘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 KTV 보도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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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은 활의 민족'이라며 전통 문화로서의 국궁의 우수성과 독자성을 강조하지만, 정작 일반 시민들이 국궁의 그러한 특징을 제대로 체험해 볼 기회는 많지 않은 것 같다.

국궁체험장에서조차 전통과는 거리가 먼 방식으로 활쏘기를 지도한다면, 우리 활쏘기의 독자성을 제대로 알리기는커녕 오히려 왜곡된 형태로 전파하는 꼴 아닐까.

전통을 보전하는 방법? 그리 어렵지 않다. 기본만 잘 지키면 된다.
 
전통 각궁으로 습사를 하는 기자의 모습 (2023.7 / 서울 공항정)
 전통 각궁으로 습사를 하는 기자의 모습 (2023.7 / 서울 공항정)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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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활쏘기, #국궁, #양궁, #활, #공항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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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 (한국사 전공) / 독립로드 대표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 홍보이사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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