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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렬한 화산 활동 후의 여진처럼 '푸바오'에 대한 단편적인 기사들이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중국으로 돌아간 푸바오가 잘 적응할까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뭐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세상에 푸바오의 귀여움만이 나를 위로했다는 사람들의 말처럼, 판다 푸바오는 여타 매체 속 동물들에 대한 사랑들 중에서도 '넘사벽' 인기를 누렸었다.

아마도 그런 관심에는 이제 조만간 푸바오와 '이별'을 해야 한다는 아쉬움의 '정서'가 근저에 깔려있기 때문이었지 않았을까. 어떤 대상에 대해 '감정을 이입'하고 그 감정의 파고에 따라 한바탕 들끓는 우리네 정서에 귀여운 푸바오와의 이별 이벤트만큼 극적인 것이 또 어디 있었겠는가 말이다. 

그렇게 해일처럼 휩쓸고 간 푸바오에 대한 '감정'의 파고를 지켜보며 동물과 우리들과의 관계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런 '생각'에 마중물이 되는 두 권의 그림책이 있다. 바로 김태린 작가의 <펭귄의 모험>과 김선배 작가의 <빠삐용>이다. 
 
펭귄의 모험
 펭귄의 모험
ⓒ 뜨인돌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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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삐용
 빠삐용
ⓒ 호랑이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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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으로 돌아갔지만 쓰촨성 판다보호 기지에서 '보호'를 받고 있는 푸바오와 달리, 두 그림책의 동물들은 자의든, 본의 아닌 우연에 의해서든 '사람'들과 함께 하던 삶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향한다. 

외로웠던 펭귄의 선택 

20년 차 방송 작가로 활약하던 김태린 작가는 극지 연구 30주년을 기념하여 남극에 다녀왔단다. 그 성과로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난 후에도 '남극'의 이야기는 계속 작가의 머릿속을 맴돌았다고 한다.

2020년 뒤늦게 그림을 배우고 난 후 작가의 머릿속 이야기는 <펭귄의 모험>이라는 한 권의 그림책으로 탄생되었고, 이 그림책은 8회 상상만발 책그림전, 2023 우수출판 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에 선정되며 세상에 한 권의 그림책으로 자기 존재를 알리게 되었다. 

그림책 속 펭귄은 '푸바오'와 같은 스타 동물이다. 여전히 사람들이 자신을 '스타'로 여기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푸바오와 달리 펭귄은 스타로서의 존재감을 누린다. 덕분에 제대로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스케줄에 쫓기는 펭귄은 남극 사진 등을 보며 외로움을 달랜다. 그러던 어느 날 큰 결심을 한다. 며칠만 휴가를 내어 남극을 다녀오기로 한 것이다. 

'남극은 어떤 모습일까?', 빨간 머플러에 배낭을 멘 펭귄은 펭귄이지만 남극을 여행온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사람들과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인다. 물론 다른 사람들과 달리 냅다 남극의 바다에 뛰어들어 거대한 고래를 보며 '남극은 경이로운 곳이구나!'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펭귄은 '남극의 타자'이다. 배낭과 목도리를 물범에게 빼앗긴 것을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그 예다.

 
펭귄의 모험
 펭귄의 모험
ⓒ 뜨인돌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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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펭귄은 다른 여행자들처럼 휴식을 위해 남극 기지를 찾는데 그곳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내가 어딜 봐서 야생동물이라는 거야!' 

210㎜ * 210㎜의 아담한 사이즈의 그림책 표지를 열면 두터운 아크릴 물감이 화려한 단청처럼 펼쳐져 있다. 그리고 그 단청의 비밀은 '난 어디로 가야 하지?'라는 그 장면에서 풀린다. 오로라가 광대하게 펼쳐진 남극의 하늘 아래 오뚝하니 서있는 펭귄, 그 아름답다던 남극의 오로라도, 눈 쌓인 하얀 세상도 그저 이방인 펭귄에게는 '외계'일뿐이다. 

배도 고프고 더는 못 가겠다며 지쳐 떨어진 펭귄. 하지만 펭귄이 누군가, 남극의 새 아닌가. 다음날 펭귄은 다른 펭귄들 무리에서 눈을 뜨고, 바닷가로 밀려온 크고 신선한 크릴새우로 아침 식사를 하며 남극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시간에 쫓겨 새우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고 아파트 소파에서 잠을 청하던 펭귄에게 신선한 크릴과 하얀 눈밭의 생활은 어땠을까? 

펭귄의 내레이션을 글밥으로 한 그림책은 마치 남극 여행자처럼 남극의 생활을 그려낸다. '펭귄은 이렇게 살고 있구나'하는 식으로. 하지만 어느 틈에 펭귄은 '무리' 중 하나가 되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잊어버린 줄 알았던 목도리를 찾아 목에 둘러보니, 그 '스타'인 줄 알고 사람들이 찾아온다. 펭귄은 어떤 선택을 할까? 

'안녕, 내가 사랑한 사람들, 펭귄은 이제 남극에서 살래!'

문득 이 말을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싶다.

'안녕, 나를 사랑한 사람들, 푸바오는 이제 판다의 고향에서 살래!'

변덕스러운 정치적 입장에 따라 보내지고 또 이제 와서 귀향된 푸바오지만, 그와의 이별을 이렇게 '쿨'하게 마무리해 보면 어떨까.
 
빠삐용
 빠삐용
ⓒ 호랑이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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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자 곰, 그의 죄목은?

<펭귄의 모험>은 고향으로 돌아간 펭귄의 '귀거래사'* 같은 낭만적인 내용이지만, <빠삐용>은 다르다. 210*280mm의 그림책은 사냥꾼과 사냥개가 노란 불빛을 비추며 산을 오르고 있고, 그 아래 바위틈에 곰으로 보이는 두 눈이 있다.

예전 끊임없이 도망치고, 또 도망치던 스티브 매퀸 주연의 추억의 영화 <빠삐용>에 딱 어울리는 장면이다. 도망의 끝에 빠삐용이 '인생을 낭비한 죄'라는 죄명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지만, 저 곰은 도대체 무슨 죄명으로 저리 쫓겨야 하는 것일까.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라며 뭉게뭉게 몰려오는 먹구름으로부터 시작된 그림책은 호우주의보를 알리는 뉴스 속보와 번개를 맞아 문이 떨어져 나간 곰 사육 농장으로 시작된다. '강렬한 색감과 역동적인 선, 속도감이 느껴지는 구도'라고 출판사는 이 그림책의 그림을 소개하는데, 스텐실과 콜라주를 더한 그림책의 삽화는 거친 폭우 속에 도망자가 된 곰의 이야기를 실감 나게 전한다. 

곰 사육 농장에서 곰 두 마리가 탈출했고, 경찰은 포수와 수색견을 동원에 달아난 곰을 쫓는다는 아나운서의 멘트는 한 마리의 곰이 사살되고 다른 한 마리를 잡지 못해 추적이 계속되는 상황에 맞춰 급박하게 진행된다. 우리가 '방송'이라는 매체를 통해 익숙해진 긴장감이다. 재난 문자를 발송하고 외출을 자제하라고 당부하는 그 위기 상황은 마치 그 반달곰 한 마리가 '킹콩'이라도 되는 듯 불안감을 조장한다. 

그런데, 이 급박한 상황 속에 잡히지 않는다는 곰은 어떨까? '빠삐용'이라는 속표지를 넘겨 쏟아지는 비 속에 방치된 곰, 벼랑에서 사냥개에 쫓기는 곰, 죽은 줄 알았는데 화물 열차 위에 오도카니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는 곰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작가의 말처럼 똑같은 곰인데 곰 사육 농장에서 탈출한 곰은 사살되어야 하고, 지리산에 애써 방사한 KM-53(곰의 관리번호, 복원사업으로 한국에서 53번째 태어난 곰이라는 뜻)은 왜 교통사고를 당해도 수술을 해서 다시 방사되어야 하는 것일까.

<펭귄의 모험>처럼 <빠삐용>도 판타지한 서사를 통해 곰에게 자유를 선사한다. 쫓기던 곰은 어느새 액션 블록버스터의 주인공처럼 벼랑에서 떨어져도 기적처럼 살아내고,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인간이 만든 문명의 이기들을 적절하게 활용해서 자유을 향해 떠난다. 우리가 만든 변덕스런 애증의 잣대는 그렇게 판타지를 통해 구원받는다. 

*귀거래사: 도연명이 13년 간에 걸친 관리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드디어 향리로 돌아가서 이제부터 은자로서의 생활로 들어간다는 선언(宣言)의 의미를 가진 작품이다. 지금까지의 관리 생활은 마음이 형(形, 육체)의 역(役, 노예)으로 있었던 것을 반성하고, 전원에 마음을 돌리고, 자연과 일체가 되는 생활 속에서만이 진정한 인생의 기쁨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빠삐용

김선배 (지은이), 호랑이꿈(2024)


펭귄의 모험

김태린 (지은이), 뜨인돌어린이(2023)


태그:#펭귄의모험, #빠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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