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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2년 독일 카셀대에 설치한 소녀상 곁에 앉은 김운성 작가. 김 작가와 김서경 작가 부부는 부산 일본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도 조각했다.
 지난 2022년 독일 카셀대에 설치한 소녀상 곁에 앉은 김운성 작가. 김 작가와 김서경 작가 부부는 부산 일본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도 조각했다.
ⓒ Muharrem Mung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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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수요시위를 방해하고 피해자분들을 모욕하며 혐오의 발언을 쏟아내더니 급기야 검은 비닐에 테이프로 칭칭 감은 평화의 소녀상 훼손 사태까지 직면하게 됐습니다."

24일 100회차를 맞은 부산수요시위의 발언자 지은주 부산겨레하나 공동대표는 김운성·김서경 작가의 말을 전하며 그들이 법적대응에 나섰단 사실을 알렸다. 최근 '검은 봉지 테러'를 놓고 부산 평화의 소녀상과 강제징용노동자상을 조각한 작가가 직접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전날 고소장을 접수한 건 이날 처음 공개된 사실이다.

일본의 사죄배상을 촉구하기 위해 시민모금으로 세워진 부산 소녀상은 지난 6일 '철거' 글자가 적힌 마스크와 함께 검은 비닐봉지가 씌워지는 수난을 겪었다. 30대 남성 A씨는 소녀상 주변에 있는 노동자상에도 똑같은 짓을 벌였다. 일본영사관 앞을 경비하는 경찰이 이를 제지한 뒤 봉지를 수거했지만, 그 흔적은 인터넷 공간에 고스란히 남았다.

A씨는 극우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 사진과 함께 "소녀상에 비닐 씌우는 게 범죄 아니쥬"라며 조롱하듯 글을 올려 추가 논쟁거리를 만들었다. 이 사건은 결국 소녀상을지키는부산시민행동에 참여하는 시민단체 부산겨레하나의 고발로 확대됐다.(관련기사: 부산시민단체 "소녀상에 '철거' 검은봉지 씌운 남성 고발" https://omn.kr/288ko)
     
그러나 재물손괴, 모욕죄 혐의 제기에도 처벌은 간단치 않은 상황이다. 상징 조형물 자체가 파손되지 않았고,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소녀상에 대한 폄훼는 현재 진행형이다. 한 극우단체는 전국적으로 '위안부상 철거 마스크 씌우기 챌린지'를 펼치고 있다. A씨의 행위는 이같은 움직임 속에 나왔다.

김운성·김서경 작가가 저작권 문제를 제기한 건 경종을 울려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부산의 소녀상은 이전에도 쓰레기가 쌓이거나 자전거로 묶이고, '박정희' 글자가 쓰인 천조각이 놓이는 등 여러 차례 몸살을 앓아왔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두 작가는 "수사기관이 이를 용납해선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오마이뉴스>는 부산수요시위 현장 취재를 마친 이후 바로 김운성·김서경 작가와 전화통화를 나눴다. 다음은 스팟인터뷰를 정리한 내용이다.

"작품 이미지 훼손 의도... 끔찍한 짓이다"
 
지난 6일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에 A씨가 올린 소녀상 관련 글과 사진
 지난 6일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에 A씨가 올린 소녀상 관련 글과 사진
ⓒ 일간베스트저장소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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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에 올라온 소녀상 관련 글.
 지난 6일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에 올라온 소녀상 관련 글.
ⓒ 일간베스트저장소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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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일 오후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어떤 내용인가?

"지난 6일 검은 봉지를 씌운 A씨를 상대로 한 고소장을 23일 오후 부산 동부경찰서에 접수했다. 모든 창작물에는 저작권이 있는데 이는 거의 인격권과 마찬가지라고 본다. 우리 작품을 공격한 건 저작권을 훼손하는 행위다. 저작권을 침해한 이를 처벌해달라는 내용이다.

저작권법은 저작재산권과 저작인격권을 규정하는데 저작인격권에 동일성유지권(작가가 만든 작품의 내용과 형식 등을 그대로 유지할 권리, 이를 변경한다면 저작자에 대한 인격적 침해로 본다-기자 주)이라는 게 있다. 소녀상이라는 작품에 비닐봉지를 덮고, 사진을 찍어 글까지 올렸다면 동일성유지권 침해로 처벌받아야 한다."
     
- 재물손괴나 모욕죄가 아닌 저작권 침해를 제기한 건 처음이다.

"소녀상은 여러 번 이런 수난을 겪었다. 이번엔 검정 비닐로 완전히 뒤집어씌우고 철거라는 목적을 마스크로 적어 알렸다. 이건 우발적이 아닌 철저하게 준비한 거다. 작품의 이미지를 훼손시키려는 의도가 명확하게 드러났다. 따라서 저작권이 훼손됐다고 판단했다."

- 이런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역사부정과 사실왜곡의 선상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과거사를 놓고 논쟁하면 얻어지는 게 없다 보니 마이크를 들고, 촬영하며 점점 이런 행동을 온라인 공간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시위를 방해한 이들도 한 팀이었는데 지금은 여러 팀으로 분화했다. 민주 사회에서 공론의 장에서 역사 토론을 하기보다 방해나 훼손, 조롱으로 목적을 이루려 한다."

- 윤석열 정부의 한일관계 개선 시도 등과도 관련이 있을까?

"대통령이 일본 편에 서 있다 보니 극우단체, 유튜버들의 행위 정도가 물을 만난 듯 심해지고 있다. 이건 정부가 말하는 한일관계 개선이 아니라 악재다. 아무리 부정해도 사실과 진실이 분명하지 않나. 진정 관계를 개선하겠다면 과거사를 인정하고 거기에 따른 공식 사죄, 재발 방지 선언 등이 필요한 거 아닌가.

지난 2019년 아이치 트리인날레(일본 최대의 국제 예술제)에서 공식 초청을 받아 소녀상을 전시할 때 일본 시민들은 줄을 서서 소녀상과 사진을 찍고 미안하다고 말을 많이 했다. 극우 인사가 그때 밖에서 반일 동상이라며 공격하면서 당시 논란이 벌어졌는데(당시 이 사태로 소녀상은 전시 중단 사태를 겪음-기자 주) 이게 한국으로 왔고, 이번 정부에서 더 활개를 치고 있다."

- 고소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 거라고 보나?

"챌린지까지 언급하며 범죄 행위를 조장하고 있다. 용납하기 어렵다. 이를 수사해 재판에 넘기지 않으면 묵인한다는 뜻이다. 수사기관과 사법부가 이를 방조해선 안 된다. 예술을 보호하고, 창작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엄중히 따져야 한다.

이렇게 놔두면 예술가들이 설 자리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제강점기 전쟁범죄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손잡으며 가기보다 이런 식으로 공격하며 목적을 달성하려는 건 끔찍한 짓이다. 여기에 경종을 울리고 싶다."
 
24일 부산시 동구 초량동 일본영사관 앞 100차 부산수요시위에서 평화의소녀상과 함께 선 참가자들.
▲ "소녀상 지켜내야" 24일 부산시 동구 초량동 일본영사관 앞 100차 부산수요시위에서 평화의소녀상과 함께 선 참가자들.
ⓒ 김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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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김서경김운성, #부산소녀상, #테러, #저작권, #극우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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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보성 기자입니다. kimbsv1@gmail.com/ kimbsv1@ohmynews.com 제보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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