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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4월 1일, 대한민국 철도, 나아가 한반도의 생활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혁명이 벌어졌습니다. 바로 한국고속철도, KTX가 첫 번째 기적을 울리며 대한민국 전역을 일일 생활권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20번째 생일을 맞이하며 성년이 된 KTX 이야기, 앞으로의 KTX, 그리고 특별한 인터뷰까지 세 편으로 정리했습니다. [기자말]
한국 기술로 개발 및 생산한 첫 번째 고속열차인 KTX-산천의 모습.
 한국 기술로 개발 및 생산한 첫 번째 고속열차인 KTX-산천의 모습.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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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 "'보고싶은 마음'이 20년째 달려가고 있습니다"에서 이어집니다)

2004년 4월 1일 당시 2개 노선에 20개 역을 운행하는 데 그쳤던 KTX는 20년이 지난 현재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2024년 현재 8개 노선에서 69개 역이 운영되는 데다, 제주도·세종을 제외한 모든 시·도에 정차한다. 명실상부 '국토의 동맥'으로 거듭난 셈.

특히 2004년 당시엔 모든 열차가 프랑스 알스톰 사가 만든 TGV 레조 차량을 기반으로 한 차량으로 운행됐지만, 지금은 KTX-산천, KTX-이음, 그리고 오는 5월부터 운행을 시작할 KTX-청룡까지, 절반이 훌쩍 넘는 차량이 대한민국 땅에서 대한민국의 기술력으로 만든 국산 차량이라는 점도 각별하다. 

그런 KTX는 이제 경부축·호남축을 위시한 국토의 대동맥에서 지역 구석구석까지 빠른 속도로 마음을 전하는 '모세혈관'의 역할까지 수행한다. 올해 말 경북 의성·영천·울진 등 교통 음영지역에도 KTX가 운행되기 시작하고, 내년이면 전남 보성·강진 등에서도 KTX를 타고 서울을 오갈 수 있게 될 전망이다.

프랑스산 열차 뜯어보며... 2002년 이미 만든 '자체 개발' 열차

KTX의 국산화는 사실상 한국고속철도의 첫 도입과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이 1990년대 치러진 고속철도 기술 유치전에서 기술 이전 및 라이센스 생산을 가능하게끔 했던 방침을 내보인 프랑스 알스톰의 손을 들어준 덕분이었다. 그에 따라 KTX-1 차량의 4분의 3가량을 한국에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미 1981년부터 고속철도를 운영한 프랑스의 기술 이전과는 별개로 KTX-1 차량을 한국에서 직접 제작할 수 있었던 것은 큰 경험이 되었다. 핵심 기술 이전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기술자들은 KTX-1 차량을 조립하고 다시 차량과 부품을 분해해 보며 핵심 기술을 독학했다.

그런 독학 끝에 2002년 9월, 한국 첫 자체개발 고속열차 HSR-350x가 시험선 위에 올랐다. 프랑스 알스톰 사의 견제 속에서도 한국 전장품을 사용하고 국내 기술진이 조립한 HSR-350x는 그야말로 '맨 땅의 헤딩'과도 같았던 도전이었다. 하지만 이 열차, 2003년 11월 시험운행에서 300km/h를 돌파하며 KTX-1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한국 땅에서 한국 기술로 만든 첫 번째 고속열차 차량인 HSR-350x. 한때 한국에서 가장 빨랐던 고속철도 차량인 HSR-350x는 시험 운행 종료 이후 의왕 왕송호수변에 전시되어 있다.
 한국 땅에서 한국 기술로 만든 첫 번째 고속열차 차량인 HSR-350x. 한때 한국에서 가장 빨랐던 고속철도 차량인 HSR-350x는 시험 운행 종료 이후 의왕 왕송호수변에 전시되어 있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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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겨울에는 목표했던 속도인 시속 350km를 통과하는 기록도 나온다. 12월 17일 벌어진 시운전에서 352.4km/h를 기록하며 대한민국 지상을 가장 빠른 속도로 내달리는 탈것으로 명실상부하게 거듭났다. HSR-350x는 2007년 12월까지 총 20만km의 시운전 기록을 세운 뒤 철로 위에서 내려왔다.

한국 고속철도의 초기 개발사에서 빼놓을 수 HSR-350x는 한국산 모터가 고속철도 위를 내달릴 수 있다는 가장 훌륭한 예시가 되었다. 철로 만들어진 기존 KTX 차량과는 달리 알루미늄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이런 경험을 토대로 다른 국가보다 더욱 나은 고속열차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이 열차는 유산을 남겼다. HSR-350x의 시범운행이 마무리된 후,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열차가 2009년 공개되었다. 한국의 첫 번째 고속열차 차량, 바로 KTX-산천이다. 71개의 편성이 제작된 KTX-산천은 2012 여수 세계박람회·2018 평창 동계올림픽 등 여러 국제행사에서 '한국의 고속철도'를 알리는 얼굴 노릇을 했다.

우리 힘으로 도달한 '421km/h'의 길, '이음'과 '청룡'

KTX-산천의 개발에 이어, 한국이 아직 가본 적 없는 길의 개척도 필요했다. 바로 '동력분산식' 고속열차였다. 한국이 도입한 프랑스의 TGV는 현재도 열차 앞뒤의 기관차 칸이 모든 칸을 끌고 가는 '동력집중식' 열차지만, 한국의 좁은 국토로 인한 좁은 역간거리, 그리고 높은 수송량을 감안하면 동력분산식 열차가 필요했다.

동력분산식 열차의 가장 큰 강점은 기존 KTX-1, 그리고 KTX-산천이 열차 앞뒤에 '기관차 칸'을 운영함으로서 버려야 했던 두 칸을 승객들도 타고 내릴 수 있게 전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간의 승객 칸이 기관차로의 역할도 함께 나누어 수행하는 셈인데, 이 덕분에 가감속 성능 역시 뛰어나다는 강점도 지니고 있다.

2007년부터 뼈대를 만들기 시작한 동력분산식 시험열차가 2010년 모형으로 처음 공개되었다. 이름은 바다의 해무(海霧)를 본딴 'HEMU-400x'. 1:1 크기로 만들어진 모형에서부터 기존 고속열차와의 차별화되는 특징인 운전석부터 객실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되면서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지상에서 시속 400km를 돌파한 열차, 'HEMU-430x'가 시험 운행 도중 광명역에 진입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지상에서 시속 400km를 돌파한 열차, 'HEMU-430x'가 시험 운행 도중 광명역에 진입하고 있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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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열차가 공개됐는데, 실물에 새겨진 이름은 예상과 달랐다. 중간 이름이 바뀐 'HEMU-430x'이 된 것. 본디 시속 400km를 염두에 두고 개발했는데, 개발을 하면서 목표를 시속 430km로 상향했다는 이유가 뒤따랐다. 그런 기대감만큼 열차는 운행 다섯 달 만에 선대 개발차량인 HSR-350x의 속도를 돌파했다.

이어 2013년 03월 31일에는 시속 421.4km를 돌파했다.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한반도의 지상에서 가장 빠른 차로 등극한 것이다. 특히 가장 중요한 가감속 성능의 훌륭함도 입증되었다. KTX는 6분, KTX-산천의 경우 5분 15초가 걸리는 300km/h에서의 0km/h까지의 제동 시간이 HEMU-430x에서는 3분 53초로 줄어들었다. 

국내 고속철도에서는 최초로 시도되는 2층 객차를 시험 운행하기도 하고, LTE 기술을 활용한 통신을 시험하기도 했던 HEMU-430x. 그런 시운전과 기술 개량을 거친 끝에 HEMU-430x가 지닌 기술은 두 후계자로 이어지게 되었다.

첫째는 현재 강릉선을 비롯해 중앙선, 중부내륙선에서 운행하고 있는 250km/h급 준고속열차인 KTX-이음이다. 2021년 중앙선 복선전철화와 함께 운행을 시작한 KTX-이음은 동력분산식의 장점을 살려 더욱 많은 역에 정차할 수 있다. 그 덕에 충북 단양·강원 평창·횡성 등 여러 교통 음영지역에서 KTX를 만날 수 있게 됐다. 

둘째는 5월 1일부터 본격적인 운행을 시작할 KTX-청룡이다. 첫째인 KTX-이음에 더욱 많은 모터를 장착한 KTX-청룡은 영업 최고속도 320km/h에 달하는 속도로 고속선 위를 내달릴 수 있는 데다 가감속 성능도 좋다. 기존 KTX에 비해 시간 절감 효과가 클 것이라는 기대가 모인다. 

더 촘촘해질 KTX의 그물망, 그리고 '370km/h KTX'를 기대해
 
현대로템에서 개발하고 있는 HSEMU-370의 예상도.
 현대로템에서 개발하고 있는 HSEMU-370의 예상도.
ⓒ 현대로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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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MU-430x의 '셋째 후계자'도 곧 등장한다. 2034년이면 퇴역할 KTX-1을 대체할 새로운 열차로 현대로템이 개발하고 있는 HSEMU-370이 그 주인공이다. 이름답게 영업 최고속도 370km/h를 목표로 개발하고 있는 HSEMU-370는 이르면 2025년 기본 설계의 청사진이 잡힐 전망이다.

가까운 중국에서 350km/h급 고속철도가 운행되고 있지만, 시험 운행이 아닌 영업 최고속도를 시속 370km까지 끌어올리는 것은 전세계적으로 없었던 일. HSEMU-370이 계획대로 개통한다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1시간 53분 만에, 용산에서 광주까지는 1시간 17분 만에 도달할 수 있다. '국토의 2시간 생활권'이 머지 않은 것.

점점 빨라지는 KTX 차량의 속도만큼 노선망도 더욱 촘촘해진다. 벌써 올해 10월에는 서화성남양역에서 홍성역을 잇는 서해선 KTX와 충북 충주에서 수안보, 경북 문경을 잇는 중부내륙선 KTX 연장선이 개통한다. 큰 수요처를 서로 잇는 '중량급 노선'은 아니지만, 한국의 고속철도망을 거미줄처럼 탄탄하게 만드는 노선인 셈이다.

특히 경북 의성군·대구 군위군에는 중앙선 KTX의 연장이 예정되어 있고, 강원 동해에서 삼척을 거쳐 경북 울진·영덕을 경유해 포항까지 이어지는 동해선 KTX와 전남 목포·해남·강진·장흥·보성을 잇는 경전선 KTX도 개통을 앞두고 있다. KTX를 넘어, 철도교통, 나아가 도로교통이 빈약했던 지역에 고속철도가 기적을 울린다.

KTX가 20년간 발전을 거둔 만큼 우리 삶도 그만큼 발전했다. 과거에는 '머나먼 길'로 여겨졌던 부산 여행, 강릉 여행도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당일치기로 오갈 수 있게 되었고, KTX는커녕 자차로도 방문하기 어려웠던 지역들도 이젠 KTX로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

이미 20년이 지난 KTX가 그러한데, 30~40년, 그리고 50년이 지난 후의 풍경은 어떻게 변해 있을지 기대된다. 특히 KTX가 꿈꾸는, 레일을 타고 대륙을 넘어 세계로 나아가는 꿈을 언제 이룰 수 있을지 기대된다. 

(* 3편에서는 특별한 인터뷰가 이어집니다.)

태그:#KTX, #한국고속철도, #고속열차, #KTX산천, #KTX청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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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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