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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3인 둘째는 꿈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군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가 고양이 행동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가 건축가가 되고 싶다고 한다. 꿈은 자주도 바뀌고, 곧 정해야 하는 일인양 꽤나 진지하기까지 하다.

첫째도 몇 년 전에는 미래에 무엇이 될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나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지만 또 한 편으로는 엄마가 원하는 직업은 어깃장 놓는 식으로 피하고자 하는 느낌도 있었다. 사춘기가 된 요즘은 어디서 들은 것은 있어서 건물주가 되고 싶다느니, 편의점 알바를 하고 싶다느니 이런 소리로 내 속을 뒤집어 놓곤 한다.

학교에서 학기 초가 되면 갱지로 된 인적사항 조사지가 온다. 아이에 대한 인적사항을 쓰면서 꼭 빼놓지 않고 있는 것이 장래희망이다. 아직도 이런 것을 묻나 싶을 정도로 구시대적인 질문 같은 인상을 받지만 첫째 때도, 터울이 꽤 있는 둘째 때도 어김없이 항목에 들어있다.

살짝 웃긴 점은 학생이 원하는 직업을 적는 난이 있고, 학부모가 원하는 직업을 적는 난이 따로 있다. 1980년대 스멜이 난다. 나는 형식적으로나마 현재 아이가 되고 싶어 하는 직업을 쓰고, 아래 학부모가 원하는 직업란에는 '아이가 원하는 직업'이라고 작성한다. 그냥 묻는 가벼운 조사에 내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일 수 있지만 난 그런 항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몇 년 전, 우리 동네에 이효리가 왔다. 집에서 밥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회사에서 이효리 보려고 서둘러 와서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실패. 나중에 TV를 통해 보는데 한 아이와 몇 마디 말을 나누던 메인 진행자가 그 아이에게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덕담을 하니, 대뜸 이효리가 "뭘 훌륭한 사람이 돼? 하고 싶은 대로 그냥 아무나 돼!"라고 하는 것이다. '아무나' 되란다. 난 그 말을 듣는데 뭔가 울컥했다.
 
아이들에게 말해주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생각하라고.
 아이들에게 말해주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생각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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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그럭저럭 사회에 악을 끼치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 성실하게 잘 살고 있는 우리들은 거의 모두 '아무나'이다. 크게 욕심내거나 불만족스러워 하지 않고 소소한 것들에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며 하루하루 사는 우리들이 '아무나'인 것이다.

특별하고 훌륭한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또 그런 사람이 된다고 해서 다 행복하다는 보장도 없고. 우리는 종종 '너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공부를 강요하고, 본인이 어렸었을 땐 하지 못했던 스케줄과 고강도의 학습을 한 풀기 식으로 아이에게 요구하지 않는지 돌아보게 된다. 
 
어렸을 때 나의 꿈은 간호사였다. 그땐 여자들은 간호사나 교사, 남자들은 대통령이나 경찰 이런 느낌이었다. 요즘은 예전에 비해 다양한 직업이 꿈이 되긴 하지만 어른이 된 우리는 안다. 원하는 직업을 가지기 위해 대학 전공을 선택한다고 해서 그 전공을 살리기가 생각보다 힘들다는 것, 또 직업의 세계는 굉장히 다양해서 '이런 직업도 있어?' 하는 것도 셀 수 없이 많다는 것. 가장 중요한 것은 인생은 생각대로 살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생을 결정하는 중요한 부분은 '행운'이 매우 크다라는 것도. 

초등학교 때부터, 아니 많이 봐줘서 고등학교 때부터 가진 장래희망을 지금 이루며 산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혹여나 그 어릴 때의 장래희망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지금의 내 삶이 실패라거나 너무 후회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꿈이 무엇이냐 했을 때 자연스럽게 직업을 떠올리게 된다. 아이들도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아이들에게 말해주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생각하라고. 예를 들어 간호사가 되고 싶다가 아니라 더 광의의 개념으로 누군가를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한다든지, 군인이 되고 싶다고 하기보다는 차라리 힘이 센 사람이 되어 약한 사람을 보호해주고 싶다든지, 꼭 사회에 도움이 되는 꿈이 아니더라도 실제 나의 꿈처럼 조금 더 성숙한 사람이 된다든지.

그러기 위해선 자신을 잘 알아야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는지. 학생의 때는 그것을 깊이 고민하고 경험하며 알아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내 꿈을 정하고 거기에 맞게 활동을 하고 스토리를 만들어 대학 가는데 사용해야 한다는 현실이 슬프지만, 그래도 진짜 나는 어떤 사람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기에도 바쁜 시간이다.

사춘기인 첫째가 작년에 직업을 놓고 고민하기에 아들에게 이야기 해주었다. 우리 사회는 꿈을 강요하는 사회 같다. 꿈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 절대로 가지지 마라. 꿈이 없어도 된다. 그냥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해 살다가 어떠한 사람이 되고 싶다든지, 어떤 직업이 관심이 생기면 그때 생각해도 늦지 않다고.

인생은 생각보다 니 맘대로 되지 않을 것이고, 인생은 생각보다 너의 태도나 방향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고. 어떤 직업을 가지냐 보다 가장 너다운 너가 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아이가 이해했든 하지 못했든 조금은 영향을 미쳤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이야기를 해줬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살고 싶고, 인생 전체는 되는 대로 살고 싶다." 멋진 말이다. 오늘 주어진 하루에 최선을 다하고 나를 사랑하며 살다보면 기회란 오는 것이고 길은 만들어진다. 내가 정답이라 믿었던 길을 만들려고 애를 써도 안 만들어지던 것이 갑자기 엉뚱하게 생겨날 수도 있고, 또 생각지도 못한 다른 길이 생겨나고 그 길이 나에게 더 맞는 길일 수 있다는 것이 인생이지 않나.

아이들에게 장래희망을 굳이 묻지 말자. 본인들이 되고 싶다는 게 있으면 들어주되 강요하지 말자. 되고 싶은 직업보다는 아이가 어떠한 아이인지 발견하는 즐거움을 갖자.

태그:#꿈, #장래희망,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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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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