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멱살 한번 잡힙시다> 포스터

드라마 <멱살 한번 잡힙시다> 포스터 ⓒ kbs2

 
김남주, 이보영, 김하늘, 이들 세 여배우들은 그들의 대표작을 운운할 필요도 없이 내로라하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들이었다. 또한 저마다 멋진 캐릭터와 패션 등으로 당대 여성들의 '워너비'였던 스타들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들이 엇비슷한 시기에 '스릴러물'을 들고 찾아왔다. 
 
안방 극장 드라마들이 남성들의 역동적인 삶을 주로 다루던 시절에 남자 배우들은 젊은 시절에는 순애보적인 연인의 캐릭터를 맡다, 나이가 들며 차츰 장르물로 연기의 영역을 넓히며 동시에 배우로서의 생명력을 연장시켰다. 그러던 것이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존재로서의 여성의 위치가 보다 향상되어가며 시청자들이 즐겨보던 드라마의 서사가 '남성' 위주에서 '여성'의 주체적인 삶을 다룬 영역으로 확장되어 갔다. 

동시에 연인, 아내, 그리고 어머니로서 여배우들의 역할이 고정되었던 기존의 드라마 속 캐릭터들이 변주되기 시작되었다. 이제 드라마 속 여주인공들은 사랑을 하더라도 더는 사랑만 하지 않는다. 인기리에 종영된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서 보여지듯이 여주인공 강지원은 자신의 직업적 성취와 사랑에 있어 주체적인 모습을 보인 반면, 늘 그녀의 것을 빼앗으려던 그녀의 친구 정수민은 타인을 통해 자신의 결핍을 메꾸려다 파멸로 빠지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더 나아가 <눈물의 여왕>에서 보여지듯 여주인공이 재벌이고, 그녀가 남편을 택하며 '니가 눈물 흘릴 일을 만들지 않을게'라고 말하는 시절이 된 것이다. 그와 함께 젊은 시절 로맨틱한 여주인공 역할을 맡던 여배우들의 캐릭터도 변주된다. 이제 그녀들은 중년의 나이로 접어들며 그 예전 남자 배우들이 그랬듯이 장르물에서 주인공으로 당당하게 사건 해결의 키를 쥐고 활약한다.
 
아내에서 여성으로 
 
 MBC <원더풀 월드>의 한 장면.

MBC <원더풀 월드>의 한 장면. ⓒ MBC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그녀들의 가족 관계 역시 변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원더풀 월드>로 돌아온 김남주의 경우를 들어보자. 

젊은 시절 김남주를 대변할 수 있는 작품은 1997년작 <모델>이다. 이 작품을 통해 김남주는 세련되고 지적인 도시의 여성이라는 그녀의 캐릭터를 확고하게 구축했다. 그러던 그녀가 2009년 <내조의 여왕>을 통해 180도 변신을 한다. 제목처럼 김남주가 맡은 천지애는 억척스런 주부이다. 만년 과장에 심지어 짤릴 위기에 놓인 남편에 보탬이 되고자 솔선수범 나서다 보니 뜻밖에 그녀 자신이 사회적으로 성공하게 되는 주인공이다.

<내조의 여왕>은 도시적 젊은 여성이라는 이미지를 스스로 쇄신시킨 작품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캐릭터는 동시대 주부들의 '워너비'한 인물이 되었다. 이른바 '육아로 인해 사회적 공백'이 여성들의 고민이 되던 시절에 다시 한번 사회적 성공에 사랑까지 쟁취한 천지애를 어찌 응원하지 않겠는가.

김남주 배우는 <내조의 여왕>의 인기를 <역전의 여왕>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했고, 2012년작 <넝쿨째 굴러온 당신>을 통해 공고히 했다. 주말 드라마였던 <넝쿨째 굴러온 당신>은 말 그대로 그 시대 주부들의 로망이다. 전문직인 차윤희는 층층시하 시댁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칠 뿐 아니라, 남편은 그런 그녀의 가장 절대적인 지지자였다. 즉 일과 사랑의 두 마리 토끼를 거뜬하게 낚아챈 주인공에 대중들은 박수를 보냈다. 

그러던 그녀가 3월 1일 <원더풀 월드>를 통해 오랜만에 돌아왔다. 그런데 이제 그녀는 억척스런 주부도 아니고, 시댁과 남편의 지지를 받는 전문직 여성도 아니다. 은수현은 전문직 여성인 전 심리학과 교수이자 작가이지만, 그녀 주변 관계에서 시댁이나 친정의 존재감은 옅어졌다. 드라마는 제로 베이스처럼 그녀가 가장 사랑하던 아이를 잃는 사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를 잃은 은수현은 스스로 아이를 잃게 만든 이에게 복수를 하고 그 대가를 감수한다. 결혼을 했고 남편이 있지만 남편은 그녀가 내린 결정과 실행에 있어 부차적인 존재이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가 진행됨에 따라 드러나고 있는 건 그녀가 그토록 사랑했던 아이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상황에 '남편 강수호(김강우 분)'의 원죄가 드러나게 된다. 남편은 아끼는 후배와 불륜이었으며 그 상황에서 방치된 아이가 교통사고에 희생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진실을 덮는다. 이처럼 드라마 속에서 남편은 그녀의 조력자이거나 지원군이기는 커녕 그녀의 적대적 세력의 일부가 되어간다. 

<원더풀 월드>의 남편 캐릭터는 김남주의 이전 작품 2018년작 <미스티>와 또 다른 결을 지닌다. 물론 <미스티>가 여주인공 고혜란이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되고, 남편이 그녀를 변호하는 딜레마를 주 내용으로 하지만, 극중 강태욱(지진희 분)은 애증의 곡선을 넘으면서도 아내의 곁을 지킨다. 그러던 것이 2024년의 작품에서는 말 그대로 '남의 편'으로 그 캐릭터가 변모한다.
 
남편, 그들이 문제다 
 
 하이드

하이드 ⓒ jtbc

 
김남주의 <원더풀 월드>만이 아니다. 3월 23일 첫선을 보인 이보영 주연의 <하이드> 역시 '남편'이 문제다. 

일찌기 2013년 <너의 목소리가 들려>, 2014년 <신의 선물 - 14일>을 통해 장르물 주인공으로 자신의 연기적 영역을 확장시킨 이보영이 이번에는 하루 아침에 남편을 잃은 여성 변호사 나문영으로 등장한다. 

영국 드라마 < keeping faith >를 리메이크한 <하이드>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감춰진 진실'을 찾는 내용이다. 그런데 여기서 감춰진 진실이 아이러니하게도 남편인 것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고 외롭게 살아온 나문영을 따뜻하게 안아준 사람, 그리고 아무리 바빠도 아이를 챙기는 데 소홀하지 않았던 사람, 그런 그가 하루 아침에 사라지고 주검으로 발견된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의 죽음과 함께 하나씩 드러나는 진실, 세상 좋은 남편에 아버지인 줄 알았던 그가 경제적으로 파산 위기에 몰린 것도 모자라 수상한 커넥션의 주인공이 되었다. 드라마는 그렇게 남편의 죽음을 넘어 그의 진실을 파헤쳐가는 아내의 이야기를 담는다. 

그런가 하면 뉴럭이 작가의 웹소설을 리메이크한 김하늘 주연의 <멱살 한번 잡힙시다>는 살인 사건 용의자가 된 남편 설우재(장승조 분)를 의심하는 아내 서정원(김하늘 분)의 이야기를  다룬다. 

평소 '멱살 한번 잡힙시다'로 대중들의 분노를 산 인물들을 직접 찾아가는 사이다 시사 프로를 만든 서정원이 정작 자신의 남편이 인기 스타 차은새의 죽음에 연관되었다는 의심을 하게 된다. 역시나 어린 시절 외롭게 자란 자신의 유일한 친구이자 응원군이었던 남편인데... 이제 남편의 사건으로 서정원은 자신이 그간 애써 쌓아올린 것조차 무너질 위기에 놓이게 된다. 

흥미롭게도 <하이드>의 나문영도, <멱살 한번 잡힙시다>의 서정원도 그녀들의 남편은 든든한 의지처였다. 하지만, 그 의지처는 하루 아침에 그녀를 벼랑 밖으로 던져버린다. 벼랑에 떨어진 그녀들, 그곳에서 목놓아 우는 대신 벼랑을 홀로 기어오른다. 자신을 그곳으로 던져버린 자, 그게 남편이든 누구든 기꺼이 '전쟁'을 선포한다. 
원더풀월드 하이드 멱살한번잡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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