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 tvN

 
46억 년에 이르는 지구 역사에서 최초의 생명체이자 가장 오래된 존재, 바로 '세균(細菌, Bacteria)'이다. 세균은 생물체 가운데서 가장 미개하고 단순한 단세포 생물체를 의미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은 산소 생성, 자연 정화, 음식발효 등 여러 분야에서 우리 일상에 꼭 필요한 이로운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언제든 인간의 삶과 생명을 초토화시킬 수도 있는 위험한 존재로 돌변하기도 한다. 특히 숙주가 없으면 죽는 바이러스와 달리, 세균은 독립된 하나의 존재로 자생력을 가지며, 이처럼 빠른 증식과 강인한 생명력을 바탕으로 과거부터 현재까지 무수한 감염병을 일으킨 바 있다. 현대 의학에서도 아직까지 무수히 많은 종류의 세균을 모두 정복하지는 못한 상황이다.

2월 27일 방송된 tvN <벌거벗은 세계사> 140회에서는 '세계사를 공포로 물들인 세균 감염병'편이 통하여 인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세균과 펜데믹의 역사를 조명했다. 김응빈 연세대학교 시스템생물학과 교수가 이날의 강연자로 나섰다.
 
전쟁보다 참혹한 세균 감염병의 비극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 tvN

 
2019년 기준 전 세계 사망자의 사망원인 2위는 세균 감염병이라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8명 중 1명꼴로 세균 감염병에 걸려 사망한 것이다. 세균은 내성을 가지고 진화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강력한 항생제에도 죽지 않는 슈퍼 박테리아까지 출현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세균 감염병의 위협에 고통받고 있다.
 
세계사에서 인류는 세균 감염병으로 인하여 전쟁보다도 참혹한 비극을 겪은 경우가 많았다. 의학과 과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과거에는, 치료할 방법이 없었던 끔찍한 전염병을 '신의 형벌'로 여기기도 했다.
 
한센병(Hansen's disease, 나병)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세균 감염병으로 불린다. 한센균(미코박테리움 레프라에,Mycobacterium leprae, 나균)이 호흡기나 피부의 상처난 부위를 통하여 감염되어 피부 질환이 발생하는 한센병은, 얼굴과 손발가락 같은 신체 말단 부위에 손상을 입히는 경우가 많다.

고대부터 이어져온 한센병은 11세기 중반들어 '십자군 전쟁'을 통하여 중동에서 전 유럽으로 확산됐다. 한센병의 원인에 대하여 알지 못했던 중세 시대 유럽인들은 공포에 휩싸였고 교회에서마저 환자들에게 등을 돌리고 죄인 취급하며 배척했다. 종교적 의미에서 죄를 지어 신의 형벌을 받았다고 오해받은 한센병 환자들은, 사회에서 차별과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했고, 심지어 억울하게 대량학살을 당하는 사건들도 있었다.
 
한국에서도 일제강점기에 한센병 환자들을 소록도로 보내어 강제노역을 시키거나 사망 후 시신을 화장하고 해부학실습에 이용했던 아픈 역사가 있었다. 특히 한센병 환자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병 자체보다는 세상의 편견 어린 '사회적 낙인'이었다고 한다.
 
시간이 한참 흘러 1873년이 되어서야 노르웨이의 의학자인 아르마우어 한센(1841~1912)에 의하여 병의 원인균이 발견되었다. 오늘날에 이르러 한센병은 이제 두려움의 대상에서 벗어나 조기 치료와 완치가 가능한 질환으로 바뀌었다.
 
14세기 들어 유럽에서는 페스트(Peste, 흑사병)라는 또다른 치명적인 전염병이 창궐한다. 페스트는 페스트균(Yersinia pestis)이 림프절을 통해 퍼지면서 주요 장기에 출혈을 일으키는 전염병이다. 흑사병이라는 명칭은 증상이 악화되면서 환자의 피부가 실제로 검게 썩어들어가며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데서 유래했다. 제때 치료받지 못한 환자의 60% 이상이 발병 3~5일 만에 사망에 이르는 높은 치사율과 치명적인 감염률로 악명이 높았다.
 
본래 페스트는 중앙아시아의 풍토병이었으나 1340~1350년대 들어 몽골군의 서방 원정을 기점으로 유럽으로 전파됐다. 페스트의 강력한 전염력은 전파된지 약 7년 만에 전 유럽을 뒤덮을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이러한 페스트균이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확산된 이유는, 숙주 없이도 흙에서 자생할 수 있는 특성상 페스트에 걸린 쥐를 쥐벼룩이 물고 다시 사람에게까지 옮겨가서 균을 전파하는 식으로 급격히 퍼진 것이었다. 여기에 비말로도 감염될 수 있어서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기침을 하거나 호흡을 통하여 공기중으로 빠르게 전염되는 경우가 많았다.
 
상상을 초월하는 페스트의 위력은 유럽을 사실상 절멸 일보 직전까지 몰아넣었다. 학계에서는 페스트로 인하여 사망한 이들의 숫자가 2억 명 이상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편으로 페스트는 아이러니하게도 유럽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긍정적인 전환점이 된 측면도 있었다. 근로할 수 있는 인구가 줄어들면서 자연히 노동자들의 지위가 상승했고 봉건제도가 몰락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또한 신과 종교에 대한 의심이 제기되면서 종교개혁과 인본주의(Humanism)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불씨가 됐다. 중세시대는 사실상 페스트로 인하여 막을 내리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콜레라 확산 가져온 '제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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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 tvN

 
매독(梅毒, Syphilis)은 성병의 일종으로 '인간의 욕망이 만든 재앙'으로 꼽힌다. 페스트만큼은 아니지만, 15세기 유럽을 강타한 매독으로 인하여 500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매독의 유래를 놓고는 신대륙 기원설과 유럽 내재설로 나뉜다. 전자에 따르면 당시 유럽은 '대항해시대'를 맞이하여 아메리카 대륙에서 매독이 유럽으로 전파되었고, 반대로 유럽의 천연두가 아메리카로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주장이다. 대륙 발견과 문명의 교류가 동시에 질병 교환의 통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장면이다.
 
많은 유명인들도 매독을 피하지 못했다. 당시 교황 율리우스 2세가 매독에 감염된 것은 종교와 교황의 권위에 큰 오점을 남겼다. 19세기 프랑스의 유명 작가이자 문란한 사생활로도 유명했던 기 드 모파상이 정신착란 증세를 일으킨 이유도 매독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밖에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에두아르 마네 등도 매독을 앓은 것으로 유명하다.

심지어 매독은 아시아로도 퍼졌다. 1495년경 유럽에 상륙한 매독은 불과 30년도 안된 1521년에 중국을 거쳐 조선에까지 닿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 조선에서는 중국에서 유래한 병이라고 하여 당창이나 당옴, 광둥창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놀랍게도 최근 들어 10년 사이에 매독이 다시 급격하게 확산되고 있다는 놀라운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과거에 비하여 데이트앱이나 SNS를 통하여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불특정 다수와의 만남이 광범위하게 증가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성(性)이라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에 편승하여 나타난 매독의 특성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콜레라(Cholerae)는 오염된 물이나 음식을 통하여 인체에 유입된 콜레라균이 지독한 설사와 구토를 유발하면서 인체에서 대량의 수분을 배출하도록 자극하는 질병이다. 증상이 심하면 하루에 20리터의 수분을 배출하게 하고, 대변량이 환자의 몸무게를 능가하는 경우도 있다.
 
콜레라 확산을 초래한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제국주의(帝國主義, Imperialism)'가 꼽힌다. 콜레라는 본래 인도의 풍토병이었다. 그런데 19세기 들어 인도를 점령한 영국도 군인들을 중심으로 대거 콜레라에 감염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던 영국은 제국주의를 앞세워 전 세계에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었다. 인도에서 시작된 콜레라도 영국을 통하여 전 세계로 확산됐다. 1831년 이집트에서는 카이로 인구의 13%가 콜레라로 사망했고, 헝가리에서도 10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왔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영국 본국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산업혁명 시대의 영국은 열악한 주거환경과 화장실 문제 등로 인하여 도시의 위생 관리 상태가 매우 나빴다. 1832년 영국은 수도 런던에서만 2만여 명이 콜레라로 사망했다고 한다. 이후로도 콜레라는 주기적으로 유행을 거듭하며 무려 일곱 번에 이르는 팬데믹을 초래했다.
 
본래 런던의 마취과 의사였던 존 스노우는 1854년 런던 소호에서 창궐한 콜레라가 오염된 물과 펌프 손잡이를 통해서 퍼졌다는 것을 연구를 통해 밝혀내며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살려냈다. 이 사건 이후로 영국에서는 '위생관념'이라는 개념이 부각되고, 식수와 하수를 구분하고 상하수도 설비사업이 추진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스노우의 업적은 인류 최초의 '역학(Epidemiology) 조사'를 통하여 질병을 극복한 사례로 불리우며, 전염병의 전파경로를 체계적으로 추격하여 대처하는 예방의학의 발전에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데 큰 의미를 지닌다.
 
또한 유럽 전역을 휩쓴 콜레라로 인하여 국제적 공조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1892년에는 국제보건헌장이 만들어지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세계보건기구(W.H.O)의 전신이다. 이전까지 인류가 대규모 질병에 속수무책으로 끌려가는 양상이었다면, 콜레라 사태를 계기로 질병에 체계적으로 맞서보자는 인식이 자리잡게 된다.
 
'산업혁명이 부른 하얀 페스트' 결핵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 tvN

 
산업혁명 시대에 인류의 욕망이 낳은 또 하나의 감염병이 결핵(結核, Tuberculosis)이다. 결핵균은 한센균과 더불어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세균으로 꼽힌다. 피를 토하며 죽음에 이르는 모습은 결핵 환자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다. 결핵균은 공기중 비말에 의하여 전파되며 기침, 가래, 오한, 각혈 등을 유발한다. 사람을 극도로 소모시켜서 극한의 쇠약한 상태로 몰아간다고 하여 19세기 유럽에서는 소모병으로 불리기도 했다.
 
결핵은 '가난한 자들의 질병'으로도 불렸다. 강도 높은 노동과 부족한 영양, 열악한 주거환경에 시달리던 서민과 노동자들이 대거 결핵의 희생양이 되었다. 19세기 초에는 유럽 인구의 7분의 1이 결핵으로 사망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이로 인하여 결핵은 '산업혁명이 부른 하얀 페스트'로 통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낭만주의 시대의 유럽에서는 이러한 결핵 환자들의 이미지가 미화되기도 했다. 살이 빠지고 핏기가 사라져 창백한 외모가 당대 여성들에게는 낭만주의 시대의 이상적 미인상과 맞아떨어졌다. 또한 결핵에 걸려 서서히 죽어가면서도 창작에 몰두하는 아티스트들의 모습은 '천재 예술가'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폭풍의 언덕>을 집필한 에밀리 브론테는 결핵을 앓고 있는 동생의 모습에 오히려 감탄하며 "내 생각에 결핵은 아름다운 질병"이라는 황당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우습게도 브론테 본인도 결국 결핵에 걸려 사망한다. 이밖에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지킬박사와 하이드), 작곡가 프레드릭 쇼팽 등도 결핵으로 요절한 유명인들이다.
 
이로 인하여 당시 유럽에서는 창백한 화장, 야윈 몸 등 결핵 환자의 모습을 따라하는 문화가 유행처럼 번졌다. 또한 결핵 환자들의 핏기없는 모습이 마치 뱀파이어(흡혈귀)와 닮았다고 비교되기도 했다. 이러한 결핵 환자에 대한 어긋난 미화는, 아름다워지고 싶은 인간의 욕망 때문에 진실마저 왜곡해버린 씁쓸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결핵은 아직도 인류에게 완전히 정복되지 않은 질병이다. 2021년 WHO의 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의 결핵 환자 인구는 아직도 무려 1060만에 이르며, 한국은 OECD 가입 국가 중 결핵 발병률 1위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세웠다.
 
오랜 시간 원인도 모른 채 감염병들로 고통받던 인류는, '세균'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면서 비로소 질병에 맞설 수 있는 지혜를 찾기 시작한다. '세균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독일의 의사 겸 생물학자 로베르트 코흐(1843-1910)는 최초로 감염병의 원인이 세균이라는 사실을 밝혀낸 인물이다. 코흐는 1876년 탄저병의 원인이 된 탄저균을 비롯하여, 몇 년 뒤에는 결핵균과 콜라레균의 존재를 규명해내면서 의학의 역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1905년에는 노벨의학상까지 수상한다.
 
또한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으로 불리우는 항생제 페니실린(Penicillin)의 등장은, 인류가 세균 감염병의 위협에 본격적으로 맞설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영국의 의사 겸 미생물학자인 알렉산더 플레밍(1881-1955)은 1차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군인들이 전투가 아닌 감염병으로 죽어가는 안타까운 모습에 자극을 받아 세균 감염 치료법 연구에 매진했다. 플레밍은 우연히 푸른곰팡이(페니실륨)에서 세균을 죽이는 물질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 이름을 따서 인류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을 개발하여 현대 의학사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했다.
 
하지만 인류의 어긋난 욕망은 세균학의 발전을 다른 방식으로 악용하기도 했다. 인류는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세균의 위력을 활용한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연구했다. 2차대전 당시 영국은 이른바 작전명 '채식주의자' 프로젝트를 통하여 탄저균
(炭疽, Anthrax)을 이용한 폭탄을 실험하기도 했다.
 
탄저균은 흙으로 돌아가도 100년간 생존이 가능하며, 사람과 동물 모두를 감염시킬수 있는 인수공통감염병을 유발하여 적은 양에도 엄청난 살상력을 지닌 것으로 유명하다. 다행히 연합군이 전쟁에서 승리하며 영국의 탄저균 무기가 실전에서 사용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당시 탄저균 연구가 진행된 그뤼나도 섬은 여전히 사람이 살지 못 하는 지역으로 남아있다.

세계대전 이후 세균무기의 위험성을 비로소 깨달은 인류는 1972년부터 '생물무기 금지협약(BWC)'을 맺고 세균 및 독소무기의 개발과 사용을 자제하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2001년 미국에서 벌어진 '탄저균 테러' 사건에서 보듯, 세균무기의 악용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또한 이외에도 천연두, 페스트, 야토병 등 수십종의 생물무기들이 세계 각지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언제든 인류 전체를 위협할 수 있는 치명적인 위험요소로 간주되고 있다.

"자연계에서 한없이 작은 것들의 역할은 한없이 크다." 루이 파스퇴르의 격언이다. 세균은 인류에서 위협적인 존재이자 역사를 완전히 바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세균은 인류에게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경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화를 추구하는 균형감각을 통하여, 세균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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