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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 청과물 가게(자료사진, 사진은 해당 기사와 연관 없음)
 전통시장 청과물 가게(자료사진, 사진은 해당 기사와 연관 없음)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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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사업으로 점포를 철거당하고도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한 시장 상인에게 재개발조합이 새 점포를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분양계약서가 없고 현재 소유권이 해당 재개발조합에 없는데도 실질적인 합의가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례적으로 원주민의 권리 보장을 인정했다.

서울북부지법 민사10단독(판사 임기환)은 지난 14일 서울 강북구 강북종합시장 상인 권아무개씨(86, 원고)가 그동안 시장 재개발을 진행해 온 A 주식회사(피고)를 상대로 낸 소유권 이전등기 청구소송에서 "A 주식회사는 권씨로부터 주식 양도 절차를 이행받음과 동시에 해당 부동산(새 점포)에 관하여 2011년 권씨와 교환하기로 계약한 소유권 이전등기 절차를 이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오마이뉴스>의 취재와 판결문을 종합하면, 원고 권씨는 40년 넘게 시장 내 외곽부(식당) 점포와 청과부(과일가게) 점포를 운영하며 해당 점포들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 권씨는 지난 2011년 A 주식회사와 점포(주식)교환 계약서를 작성해 당시 본인이 가지고 있던 두 점포 주식의 환산 면적(약 63㎡)에 해당하는 신규 점포를 A 주식회사로부터 무상으로 분양받기로 합의했다.

A 주식회사는 시장 개발사업을 추진해 지하 3층, 지상 15층 규모의 주상복합건물 '칸타빌 수유팰리스'를 완공했고, 지난 2022년 9월 건축주(신탁사) 앞으로 해당 신규 점포에 대한 소유권 보존등기를 마쳤다.

그런데 권씨와 분양계약이 체결되기 전에 신규 점포에 대한 소유권이 A 주식회사에서 신탁사로 넘어가면서 권씨에 대한 보상 문제가 사각지대에 놓이게 됐다. 권씨는 지난 2011년 A 주식회사로부터 약속받은 면적에 해당하는 신규 점포를 아직까지 넘겨받지 못하고 있다.

법원 "계약서 없어도 합의했다면 이전등기 이행 의무 생겨"

권씨 쪽에 따르면 당초 분양받기로 한 신규 점포의 면적(약 51㎡)은 종전 점포의 환산 면적에 미치지 못했고(약 12㎡), 신규 점포 내부에는 면적으로 사용하기 어려운 기둥(6.6㎡)도 존재했다. 권씨는 "주식을 양도받음과 동시에 A 주식회사가 신규 점포에 관한 소유권 이전등기 절차를 마쳐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며 A 주식회사가 면적 부족분(약 12㎡+6.6㎡)에 해당하는 2억 4400만 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A 주식회사는 "권씨와 A 주식회사 또는 신탁사 사이에 별도의 분양계약이 체결돼야 소유권 이전등기가 가능하다"며 자신들에게 사실상 소유권이 없으니 해당 금액을 지급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반드시 별도의 분양계약이 있어야만 A 주식회사의 소유권 이전등기 의무가 발생한다고 볼 수는 없다"며 "A 주식회사는 권씨가 보유하는 주식에 관한 양도 절차를 이행받음과 동시에 권씨의 종전 점포의 환산 면적에 상응하는 점포를 교환하기로 한 합의에 기해 권씨에게 신규 점포에 관한 소유권 이전등기 절차를 이행해 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환산 면적과 실제 면적의 차이에 해당하는 부분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협의가 있었다거나 분양계약이 체결되었다는 점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으므로 권씨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나아가 권씨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기둥의 면적(6.6㎡)으로 신규 점포 면적이 줄어들 만큼 손해가 발생해 A 주식회사가 그 부분의 가액 상당액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 이 부분들은 협의 또는 분양계약 체결을 통해 해결돼야 한다"고 봤다.

상인 쪽 법률대리인 "무리한 이윤 추구의 결과"

노환으로 인터뷰가 어려운 원고를 대신해 27일 <오마이뉴스>와 통화한 권씨 아들은 "철거당한 가게들은 젊은 나이에 시장에 터를 잡고 한평생 장사를 해온 아버지의 고향이자 목숨 같은 곳이었다"며 "세상을 떠나도 자식들에게 가게를 남겨주겠다고 할 정도로 가게를 팔고 싶어 하지 않으셨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철거 당시만 해도 용역반에 험악하게 쫓겨나다시피 나왔는데 이번 재판 결과가 일부 승소로 나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계신다. 그럼에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걱정이다"라며 "곧 항소 기간(2주)이 끝날 텐데 주식회사 쪽에서 항소 없이 새 가게를 지급하고 부족한 부분은 합의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권씨를 대리한 류하경 변호사는 <오마이뉴스>에 "재개발 과정에서 시행사와 건축주가 무리하게 이윤을 추구하다 원주민을 보호하지 않게 되면 이번 사건처럼 원주민의 권리가 극단적으로는 거품처럼 사라질 위기에 몰릴 수 있는 것"이라며 "분양계약서도 없고 해당 주식회사가 현재 소유권자도 아닌 상황에서 재판부가 법 계약 여부가 아닌 실제 문제를 겪는 당사자의 권리에 주목했던 전례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강북종합시장 재개발 사업을 돌이켜보면 철거 과정에서 원주민의 권리를 박탈하고, 보상 과정에서 원주민을 속이고, 완공 이후에도 분양가를 무리하게 책정해서 새 입주민을 착취하다가 결국 실패했다"며 "시장을 어설픈 주상복합건물로 바꾸면서 소비자들은 전부 떠나갔고 기존 상권은 무너졌으며 새로 입주한 상인들도 장사가 되지 않아 문을 닫았다. 이런 식의 재개발은 거위 배를 갈라서 황금알을 꺼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태그:#강북종합시장, #철거, #재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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