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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식구가 점심을 간단하게 먹으려고 달걀 네 개를 풀었다. 큼직한 당근 1/3를 썰어넣고, 파 한 줌을 넣는다. 이제 소금을 챡챡 뿌리기만 하면 된다. 마치 마법 가루인 것처럼.

요리 할 때는 마법사가 된 기분이다. 프라이팬에 올리고 나면, 달걀말이가 익는 것은 시간 문제다. 달걀은 얼마나 민감한 성격인지, 불의 세기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진다.

조심조심 살피는 동안, 달걀은 기름을 적당히 머금은 채 노릇노릇 익어 간다. 가장자리부터 불투명한 노란색으로 바뀌기 시작하면 뒤집개를 아래로 샥 넣는다. 그리고는 접어 올린다. 불을 조금씩 조절해 가며 돌돌 말아준다. 전이 김밥이 되도록. 넓적했던 동그라미가 둥글통통한 덩어리가 되도록.

아무리 간단한 음식이라도 요리는 창조적인 행위다. 최근에는 집밥을 자주 해 먹어야겠다고 결심한 터였다. 달걀말이를 다섯 번쯤 해 먹었는데, 묘하게 다 맛이 달랐다. 당근은 크게 썰면 덜 익은 당근을 씹는 것 같다. 그래서 작게 썬다. 달걀의 폭신함과 당근의 단단함 사이, 묘한 식감의 어울림을 찾는다.

파를 넣으면 매울 것 같지만, 의외로 크게 썰어도 부드럽고 풍미가 있다. 네 살짜리 아이도 "으음~" 추임새를 넣어 가며 잘 먹는다. 파랑 하이파이브를 치고 싶은 기분이다.

지난주 집들이 때는 애호박과 당근과 파를 넣은 달걀말이를 했고, 어제는 햄과 당근과 치즈를 넣은 달걀말이를 했다. 오늘은 이것저것 귀찮아서 당근과 파만 썰어 넣고 만든 달걀말이를 상 위에 올렸다.
 
당근이 쌓여 있다.
▲ 밭에서 캐낸 당근. 당근이 쌓여 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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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색'은 당근을 따라한 색일 것이다. 주황색의 원조 같다. 땅에 묻혀 있던 당근이어서, 마트에서 사서 오면 당연히 흙이 묻어 있다. 공장에서 기른 당근이 아니다. 하늘과 땅이 기른 당근이, 내 손을 거쳐서, 우리 가족의 밥상 위로 올라간다.

기대하지 않고 시작한 요리였는데. 당근의 존재에서 올라오는 충만함에, 탁탁탁 써는 것만으로 배가 부르다. 한참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냄새를 맡는다. 나는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느긋해진다. 기름을 충분히 두르고 잘 익어 가는 달걀말이를 보면 아침에 세수도 못한 얼굴의 기름기가 담백하게 씻겨 나가는 기분이다.

당근에 파만 썰어낸 달걀말이. 소금으로만 간한 요리가, 웬걸. 너무 맛있다. 잠깐 한눈을 팔면 남편과 아이가 집어 먹어서 두세 개씩 사라져 있었다. 결국 알록달록 달걀말이가 하나만 남았을 때, 우리는 모두 젓가락질을 멈추었다.

달걀말이를 예쁘게 완성하고서도 '요리샷'을 남기지 않았던 무심한 주부다. 그런 내가 약간 지저분한 그릇을 남겨둔 이유가 있다. 단 하나 남은 달걀말이가 특별해 보여서다.  
서로를 위해서 남겨 놓았다.
▲ 딱 하나 남은 달걀말이. 서로를 위해서 남겨 놓았다.
ⓒ 서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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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걀말이의 사정은 이렇다. 남편은 나를 먹으라고 남겨 놓고, 나는 아이를 먹으라고 남겨 놓았다. 그러나 4살 아이는 부모의 기대보다 많이 먹지 못했다. 결국 달걀말이가 딱 하나 남은 채로 우리의 식사가 끝났다.

남편은 다시 업무를 하러 들어가 버렸고, 아이는 후식으로 준 사과에 벌써 눈이 돌아갔다. 나는 깻잎과 김치로 밥을 비웠더니 배가 불렀다. "결국 이 달걀말이 하나를 어쩌지?"

아차, 배달음식이었더라면, 하나 남은 달걀말이의 사정 따위야 안중에도 없었을 것이다. 배달료까지 이만 원, 삼만 원을 내고 맞바꾼 달걀말이는 별 고민 없이 쓰레기통으로 직행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억해낸 것이다. 그것은 밭에서 길러진 당근이었다. 누군가 손수 뽑은 파였다. 닭이 낳은 달걀이었다. 돈으로 맞바꾼 음식이 아니라, 손수 만들어낸 음식 하나에 재료의 출신까지 살피는 사람이 되다니!

그래서 요리를 하면 건강해지나 보다. 완성된 한 그릇을 배달받는 것이 아니라, 제일 처음부터 시작한다. 재료를 만나고, 인사하고, 사용하는 일이다. 이 예쁜 당근을 기른 사람은 누구일까 상상하게 된다. 비를 맞고 흙 속에 파묻혀 깜깜한 곳에서 몸집을 키우던 당근. 당근의 살결을 만지며, 그 흙을 털어낸다.

우리 가족을 행복하게 만든 당근은, 고작 1/3의 당근이었다. 나는 쉽게도 행복해지는 것이다. 남은 2/3의 당근으로 무엇을 만들지를 생각하면.

태그:#당근, #가족, #행복, #달걀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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