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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중학교 때는 핸드폰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집전화'라는 것이 있었다. 그것을 통해서 연락을 했다.

각 집마다 전화번호부가 있었다. 친구 이름이 적힌 작은 수첩 같은 개인 전화번호부도 있었다. 그것을 보고 모스 부호 때리듯 번호를 눌러가며 전화를 걸어서 연락을 하곤 했다.

내가 주로 친구네 집에 전화를 거는 경우는 한 가지였는데, 축구를 하자고 할 때였다. 축구를 하려면 대략 22명 이상의 인원이 필요한데, 당시 나는 그 많은 친구들 집 전화번호를 거의 다 외우고 있었다. 우리 동네는 '842' 혹은 '843'으로 시작되었는데 일일이 다 전화를 돌려서 축구할 수 있냐고 묻고 인원을 체크하고 결국에는 축구를 해내고야 말았다.

친구네 집에 전화를 걸면 일종의 공식과 같은 말이 필요했다.

"여보세요(인트로)."
"안녕하세요(인사)."
"저 ㅁㅁ 친구 ㅁㅁ인데요(자기소개 + 관계성 입증)."
"혹시 (조심스러운 추임새, 이것을 사용하면 예의 바른 것 같은 이미지 +2) ㅁㅁ 있나요?(용건)"


대부분의 전화는 친구들보다는 부모님이 받으시기에 이런 말들은 언제나 필요했다. 고등학교 친구 중에 '강정주'라는 녀석이 있었는데, 별생각 없이 걔네 집에 전화를 걸었는데 그만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안녕하세요, 저 정주 친구 정주인데 정주 있나요?"

강정주네 어머니가 장난 전화하지 말라고 화를 내시면서 끊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이 말은 이 세계 속에서, 이 세대 안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린 말인 것 같다. 어디서 말할 필요도, 어디서 들을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문득 그 말이 그리웠다.

그 시절 어떻게 그 많은 전화번호들을 외울 수 있었을까, 핸드폰이 없었는데도 어떻게 그 수많은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던 걸까. 사진기도 페이스북도 인스타그램도, 쓰레드도 없었는데 왜 그 시절은 세월이 갈수록 선명해져만 가고, 좋아요가 없어도 눈부시게 빛나는 걸까.

하루 종일 그 말이 생각났다. 멸종되어버린 것과 같은 그 말속에는 그 시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어딘가에 전화를 걸어 그 말을 다시 살려주고 싶을 정도로 그리웠다.

지금 쥐고 있는 핸드폰 속에는 수백 개의 전화번호가 저장되어있다. 언제든 그 사람과 개인적인 통화를 할 수 있고, 메시지를, 카톡을 보낼 수도 있다. 무한한 소통의 장이 열려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런 무한의 소통의 장의 열림이야말로, 존재와 존재 사이에 커다란 벽이 된 건 아닐까. 소통의 장이 유한했던 시절에 존재했던 소중함이 점점 희미해져 가는 듯하다. 서로에게 연결되고 싶다는, 서로에게 닿고 싶다는, 그 간절함과 아련함들은 점점 찾기 어려워지는 듯하다.

내가 써봤던 폰 중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최신형 스마트 폰이 아닌, 군대에서 집으로 첫 전화를 걸었던 공중전화기이다. 익숙했던 것들에서 완전히 차단되었던 그 고통 속에서 몇 주 만에 들었던 어머니의 "여보세요", 존재와 존재 사이의 연결됨의 아름다움이란 아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지금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 말들이 또 있지는 않을까 추억해본다. 그토록 소중했던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모두 잊고 사는 건 아닌지. 너에게 닿기를, 너에게 닿았으므로 그저 감사했던 나날들을, 이런 기계 없이도 그저 사랑하며 살았기에 행복했던 나날들을.
 
공중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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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공중전화, #전화, #추억, #사랑,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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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당연스럽게 '내'가 주체가 되어 글을 쓰지만, 어떤 순간에는 글이 '나'를 쓰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마치 나도 '생명체'이지만, 글 역시 동족인 것 같아서, 꿈틀 거리며 살아있어 나를 통해서 이 세상에 나가고 싶다는 느낌적 느낌이 든다. 그렇게 쓰여지는 나를, 그렇게 써지는 글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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