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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권리, 작업중지권

산업안전보건법(아래 '산안법') 제52조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노동자는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해 노동자가 믿을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땐 징계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 작업중지가 실제로 발휘된 사례를 찾아보긴 쉽지 않다.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판단하에 작업을 중지하면 회사가 징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오히려 동료 노동자 처벌의 명분으로 작업중지권이 소환되기도 한다. 건설현장에서 사고 사망한 노동자의 동료가 작업중지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제155호(산업안전보건과 작업환경) 협약을 1981년 총회에서 채택했고, 한국도 이 조항을 비준했다. 제155호 제13조는 "급박하고 심각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가 위험 작업을 거부할 경우 부당한 대우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라고 하고 있다. 같은 호 제19조는 "급박하고 심각한 위험이 생겼을 때 사업주가 시정 조치를 취할 때까지 노동자를 작업에 복귀시킬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ILO 협약을 통해서도, 산안법을 통해서도, 한국의 노동자들은 위험 작업을 중단할 근거를 이미 보유하고 있다.

이렇게 산안법에서도, ILO 협약에서도 보장하고 있지만 노동자들의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예방적 권리로써 작업중지권을 보는 건 쉽지 않다. 이번 글에서는 다른 나라들의 규정 및 실제 사례를 살펴보았다. 한국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노동자의 권리로써 작업중지권을 어떻게 확대할 수 있는지 고민해볼 수 있겠다.
 
노동현장의 위험을 거부하는 것은 노동자, 노동조합의 권리다.
 노동현장의 위험을 거부하는 것은 노동자, 노동조합의 권리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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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동료의 위험 중지,뚜렷한 절차를 명시한 캐나다

캐나다에서 작업거부권은 직업건강안전법(Occupational Health and Security legislation)상 권리를 의미하며, 노무 제공자 자신과 다른 사람의 안전보건을 위협하는 경우를 포함한다. 노무 제공자는 작업 거부 사실을 관리자(또는 사용자)에게 설명해야 하고, 사용자는 위험을 제거하는 조치를 해야 하는데, 그 이후에도 여전히 위험이 있다면 노무 제공자는 작업을 계속 거부할 수 있다.1)

사업주는 위험 제거 여부를 노동부에 신고해야 하는데, 이러한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노무 제공자는 작업에 복귀할 의무가 없다. 작업중지 해제 요건을 어떻게든 완화하려 하면서, 사고 현장이 그대로 남아있는데도 작업중지 해제 신청을 남발하는 한국과 대비된다.

집단행동으로써의 위험 작업 대피는 정당하다 – 미국의 경우

개별 노동자가 위험 상황에서 작업을 중지하긴 매우 어렵다. 그런 면에서 금속노조 콘티넨탈지회장이 작업을 중단하고 조합원들을 대피시킨 건 노조 대표로서 응당 해야 할 조치였다. 그러나 회사는 지회장을 징계했다. 게다가 이 사건에 대한 2심 판결은 "작업중지권의 행사 주체는 근로자이며, 노동조합이나 근로자대표가 행사할 수 없"고, 지회장이 "노조 활동의 일환으로 작업중지권을 행사한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작업중지를 인정하지 않았다. 

미국의 경우 전국노동관계법(National
Labor Relations Act)에 따라 사용자는 노동자의 작업중지를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할 수 없고, 해고한 경우 노동자는 부당노동행위구제신청을 할 수 있는데, 이는 집단적인 작업중지권 행사일 경우로 한정한다. 노동조합이 없는 기계 판매 사업장에서, 영하 12도 기온에도 회사가 적당한 난방을 제공하지 않아 노동자 8명 중 7명이 업무를 중단, 이탈했다. 사용자를 이들을 해고했는데, 이 사건에 대해 대표조직이 없던 노동자들이 정당하게 고충을 표현했으므로 부당해고라고 판시한 사례다. 3) 현실적으로 개별 노동자보다 집단적으로, 또 노동조합에서 이런 판단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면에서 한국과 비교되는 사례다. 

1974년 미국의 Whirlpool 공장에서는 6m 높이에 그물망을 쳐두고 노동자들에게 거기 올라가 컨베이어벨트에서 떨어진 물건을 치우게 지시했다. 그러나 노동자 사망 사고가 발생한 그곳에 올라가기를 노동자들이 거부했다. 회사는 노동자들을 징계하고 작업을 거부한 6시간에 대한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연방대법원은 이 노동자들이 안전하지 않은 작업을 "선의(good faith)"로 거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위험 시정 요청에 사용자가 응하지 않았을 것, 다른 개인이 심각성에 동의했을 것, 위험을 시정할 시간이 충분치 않았을 것 등 작업중지권 사용 조건을 제시했다.) 4)

여기서 선의에 대한 해석은 분분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캐나다를 참고할 수 있는데, 캐나다 판례는 "노무 제공자가 작업을 거부해야 하는 불경한 이면의 동기에 기초한 행동인 것으로 믿을 이유가 없다"라고 하며, 그 합리성을 넓게 인정하고 있다. 5)

노동자 스스로 위험 상황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1986년, 프랑스 항소심 법원은 노동자가 '잘못된' 판단으로 작업중지 결정을 할 권리도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또한 1993년, 위험 작업 수행을 중지하는 것은 노동자의 권리이지 의무가 아니라고 명시하기도 했다. 6) 안전한 노동환경 조성은 사업주의 의무임을, 노동자에게 권리임을 밝히는 것이다.

작업중지권을 행사하고 그 정당성을 판단하는 데 있어 기준은 노동자의 몸과 생명이다. 그럴 때 산안법에서 말하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수 있는 급박한 위험"을 폭넓게 상상할 수 있다.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위험을 비롯해 유해 물질, 고객이나 상급자/동료의 폭행 및 폭언, 기후위기로 인한 폭염이나 혹한도 "작업을 거부할 수 있는 위험 요인"으로 포함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대피'를 넘어 '거부'할 수 있는 핵심적인 주체로서 개별 노동자와 노조를 호명해야 한다. 그래야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만들 수 있는 예방적 권리로서의 작업중지권이 실제로 발휘될수 있기 때문이다.

1) 이수연(2020). 캐나다의 직업안전보건법상 작업거부권과 시사점, <사회법연구> 제42호.
3) 권창영(2023). 작업중지권의 법리. <법학평론> 제13권, 9-84.
4) 권오성(2023). 작업중지권 행사를 이유로 한 징계의 정당성, <쓰면 징계, 인쓰면 처벌! 진퇴양난 작업중지권 토론회>
5) 이수연. 위 자료.
6) Sebastian Schulze-Marmeling(2015), 프랑스의 작업중지권: 규제와 현황, <국제노동브리프> 2015년 7월호 p.4~11.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유청희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24년 2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노동자작업중지권, #작업중지권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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